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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 건축물이 새들의 무덤이 됐다. 계곡을 연상케 하는 생김새와 거대한 거울 절벽이 유명한 이화여대의 건물 ECC(Ewha Campus Complex) 이야기다. 한 해 100마리 이상의 새가 이 절벽에 머리를 박고 죽는다. 태양광이나 채광 등 친환경적 요소로 2008년 서울시 건축대상을 수상한 이곳은 새들이 넘지 못하는 벽이 됐다.

이대 교내 조류충돌을 추적하고 기록하는 소모임 '이화여대 윈도우스트라이크 모니터링팀'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52종 313개체의 피해를 확인했다. 그들은 "조류충돌 대책 마련을 위해 학교 측과 수차례 논의해 일부 건물에 저감조치가 시공됐지만, 여전히 피해는 발생한다"고 말한다.
 
해마다 100여마리의 조류가 이곳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 이화여대 ECC 해마다 100여마리의 조류가 이곳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다.
ⓒ 이화여대 홈페이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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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C 10번 출구ㅡ지상 사이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 쥐발귀개개비 ECC 10번 출구ㅡ지상 사이에서 사체로 발견되었다.
ⓒ 이화여대 윈도우스트라이크 모니터링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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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류충돌 문제는 이화여대만의 일이 아니다. 국립생태원의 2017~2018년 조류충돌 실태 조사에 따르면, 국내에서 한 해 약 800만 마리가 유리창과 투명 방음벽에 충돌해 죽는다. 대부분의 조류는 눈이 머리 양옆에 있어 정면을 보는 거리감이 떨어진다. 유리창을 개방된 공간으로 인식하다 보니 충돌하게 된다. 새의 골격은 비행을 위해 속이 비어 있어 충격에 약하다. 평균 36~72km/h에 달하는 비행 속도로 유리창에 부딪힌 새는 장기 파열 등으로 죽는다.
   
조류 충돌 방지 대책, 실효성 없는 경우 많아

조류충돌 사고를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은 유리창에 조류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거나 새가 알아볼 수 있는 문양을 새기는 것이다. 문제는 효과 없는 일부 스티커들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널리 알려졌다는 것이다. 맹금류 스티커가 대표적인 예다. 새들이 포식자인 맹금류를 회피하기 위해 주변에 오지 않는다는 미신이 잘못 알려졌다.
  
국립생태원 동물복지부 진세림 계장은 "새는 맹금류 스티커가 있는 부분만 장애물이라고 인식한다"며 "조사를 하다보면 맹금류 스티커 바로 옆에 충돌해 죽은 새들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스티커의 모양이 아니라 패턴의 촘촘함이다. 대부분의 조류는 높이가 5cm, 폭이 10cm 미만일 경우 그 사이를 통과하려 시도하지 않는다.

진 계장은 "유리 구조물에 촘촘한 패턴의 저감 방지 스티커 부착 후 충돌 저감 효과가 약 94%이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맹금류스티커 주변에 조류가 충돌해 죽어있다.
▲ 맹금류스티커 맹금류스티커 주변에 조류가 충돌해 죽어있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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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x10보다 촘촘한 패턴 스티커
▲ 올바른 저감 시공 5x10보다 촘촘한 패턴 스티커
ⓒ 생태지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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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짜리 법, 시민들의 기록과 참여로 보완될 수 있어

올해 6월 11일,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8조 2항'이 시행됐다. 법률에 따르면 환경부장관은 야생동물충돌 피해가 심각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공공기관에 한해 야생동물충돌 피해 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개정법 상으로는 민간 인공구조물에 실태조사 및 저감조치를 강제할 수 없다. 약 700만 동에 달하는 민간 건물은 여전히 충돌방지 대책이 부족하다.

이화여대 윈도우스트라이크 모니터링팀은 "법이 관리 대상을 공공건축물에 한정해, 사립대학 등 민간 건물 문제 해결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관리 범위를 민간 건물까지 확장한 법안은 발의만 돼있는 상황이다. 활동가들은 이 법안이 효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속적인 기록과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온라인 기반 자연활동 공유 플랫폼인 '네이처링'에는 시민들이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라는 미션을 개설해 각지의 충돌 실태를 기록하고 있다. 2018년 7월부터 시작된 기록 활동은 2023년 현재까지 총 4만4474건의 충돌 사례로 모였다.
 
네이처링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에서 전국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실태를 기록했다
▲ 네이처링 미션 네이처링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 조사' 미션에서 전국에서 발생한 조류충돌 실태를 기록했다
ⓒ 네이처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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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 계장은 "우리가 사는 지역에서 조류충돌이 얼마나 일어나는지 조사하여 근거자료를 남기는 것이 문제 해결에 도움된다"고 말했다. 근거자료가 모여 조례가 제정되고, 법령이 개정되었기 때문. 각 지역의 충돌사고가 많이 기록된 방음벽에는 조류 충돌 저감 캠페인(스티커 부착 등)이 열리기도 한다. 관심 있는 시민은 이에 직접 참여할 수도 있다.

기록되지 않은 죽음은 소리 없이 사라지지만, 기록된 죽음은 이후의 죽음을 막을 수 있는 힘이 된다. 활동가들은 "구조물 관리주체가 조류충돌 문제를 인식하고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기록 활동과 민원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달라"고 부탁한다.

태그:#조류충돌, #야생조류, #환경보호, #네이처링, #이화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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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주간지 이코노믹리뷰에서 산업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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