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 판타지 사극 <구미호뎐 1938>에 나오는 요괴들의 모습은 아주 흉칙하지는 않다.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일본 요괴들도 마찬가지다. 총독부 경무국장인 가토 류헤이(하도권 분)로 변신한 일본 요괴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인들이 떠올리는 요괴의 모습은 이 드라마보다 훨씬 괴기스럽다. 2004년에 <민속학연구> 제15호에 실린 김종대 국립민속박물관 민속연구과장의 논문 '한국 도깨비와 일본 요괴의 비교 연구에 관한 시론'은 일본의 대표적 요괴인 오니를 이렇게 묘사한다.
 
'일본의 오니는 통상적으로 뿔이 두 개나 하나가 달려 있고 어금니가 튀어나온 얼굴 형상을 하고 있는데, 보통 사람들의 2배 크기로 거구에 해당한다. 온 몸에는 털이 많이 나 있고, 상반신과 하반신은 원시인처럼 도롱이로 만든 옷을 입고 있다. 때로는 손에 망치나 도끼를 들기도 하는데, 현재는 철퇴로 통일된 상태이다. 이러한 오니의 형상은 강호시대에 들어와 정착된 것으로 몸의 색깔도 빨강이나 파랑 등으로 그려진다.'
 
일본판 무신정권인 도쿠가와 막부는 지금의 도쿄인 에도(江戶)에 거점이 있었다. 이 에도시대(1603~1869)에 위와 같은 괴이한 오니의 형상이 일본 사회에 정착했다.
 
2020년 11월에 발행된 <한국민족문화>에 실린 이행선 마쓰야마대학 강사의 논문에도 일본 요괴의 괴기한 모습이 정리돼 있다. 제목이 '일본의 요괴 설화와 한국의 도깨비 설화 비교를 통한 한국문화 교육방안 연구'인 이 논문에 이런 대목들이 있다.
 
'갓파는 물속에 사는 요괴로서 물갈퀴에 거북이 등껍질이 있는 아이의 형상을 띤다.'
 
'텐구는 빨간 얼굴이 까마귀를 닮고 등에 날개가 있으며'

 
일본 요괴가 그런 모습들을 한 데 반해, 한국 도깨비의 모습은 분명치 않다. 이 논문은 한국 도깨비의 형상과 관련해서는 "원래 한국에서 도깨비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존재로서 이들의 형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없다"고 설명한다. 다른 논문들도 비슷하게 기술한다.
 
'형상을 보여주는 자료가 없다'는 표현을 쓴 것은 도깨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자료가 전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도깨비는 이렇게 생겼다'라고 통일적으로 설명해주는 자료가 없다는 의미다. 이 논문은 한국 설화들에 나오는 도깨비들의 여러 이미지를 이렇게 정리한다.
 
"한국의 도깨비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는데, 특히 오래된 집안 물건이 도깨비로 변한 것과 인간의 모습을 닮은 형태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오래된 집안 물건이 도깨비로 변한 경우나, 도깨비가 인간의 모습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도깨비가 옛날 한국인들에게 아주 낯선 이미지로 다가가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인식 속에서 도깨비가 그런 모습만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주 흉칙한 형상으로 인식될 때도 없지 않다. 위 논문은 "한국의 전래동화책이나 애니메이션에서는 뿔과 사나운 이빨을 가진 형상"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한다.
 
'전래동화 책에 뿔과 사나운 이빨을 가진 도깨비가 등장한다'는 표현은 한국의 옛날이야기에 그런 도깨비가 등장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20세기 들어 전래동화책이란 이름으로 배포된 옛날 이야기 책들 속에서 그런 이미지가 많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한국인들은 귀신과 관련해서는 비교적 명확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KBS 픽션 사극 <전설의 고향>에도 많이 나타났듯이, 특히 여자 귀신의 경우에는 머리를 풀어 헤친 젊은 여성이 하얀 소복을 입은 이미지로 많이 기억되고 있다. 이런 귀신들은 얼굴에 피를 묻힌 경우도 많다.
 
반면, 도깨비의 경우에는 확실한 이미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도깨비 같은 소리', '도깨비 장난 같다'는 관용구들에도 나타나듯이 뭔가 허황되거나 갑작스러운 일을 설명할 때 도깨비란 표현을 쓰기는 하지만, 도깨비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는 한국인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인식 한켠에는 오니와 비슷한 도깨비의 흉칙한 모습이 존재한다. 이는 한국인의 도깨비 이미지에 오니의 형상이 부분적으로 결합됐기 때문이다.
 
일본 문화가 한국에 전파된 결과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학술적 설명은 1980년대부터 나왔다. 1996년에 <일본어문학> 제2집에 실린 김용의 오사카외국어대학 강사의 논문 '한·일 요괴설화 비교 연구의 과제'는 1988년 최길성의 연구와 1994년 김종대의 연구를 근거로 "오늘날의 우리들이 머릿속에 떠올리는 도깨비상은 일본 오니의 영향에 의한 것이라는 지적이 연구자들 사이에 있어왔다"라며 이렇게 설명한다.
 
"머리에 뿔이 달린 모습이 인쇄되기도 하였지만 그것은 오니의 영향에서 생긴 것이고 한국 도깨비의 원모습이 아니라는 것으로, 특히 일제 식민지 시대의 교육정책으로 보급된 소학교 교과서에 삽입된 오니의 모습이 도깨비에 반영되었다고 한다."
 

위의 김종대 민속연구과장은 중앙대 민속학과 교수로 재직하던 2007년에 <구비문학연구> 제25집에 이 주제에 관한 또 다른 논문을 기고했다. 제목이 '전래동화로 포장된 옛날이야기에 대한 일고찰'인 논문은 "도깨비가 오니의 모습으로 그려지기 시작한 것은 1923년판 <보통학교 조선어독본> 권2부터"라고 설명한다. 일제강점의 결과로 한국 도깨비가 일본 오니의 모습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이는 일본이 물러간 뒤에도 한국 도깨비의 이미지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줬다. 위 논문은 "현재 우리에게 낯익은 내용이 실상 일본의 대표적인 캐릭터일 수 있다"라며 "도깨비 관련 동화책의 삽화에 그려진 대부분의 도깨비 모습이 일본의 오니라는 점은 좋은 예"라고 말한다. 도깨비의 이미지가 한국인들에게 확실하게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중에도 일본 오니 비슷한 도깨비의 이미지가 부분적인 영향력을 발휘한 것은 일제 식민교육의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100년간 한국인들의 의식 속에 파고든 도깨비 이미지의 상당부분은 일제 교육의 흔적이다. 일제 식민지배가 한국인들에게 미친 영향이 이만저만 크지 않다는 느낌을 새삼스레 갖게 된다.
구미호뎐 1938 일본 요괴 한국 도깨비 오니 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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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일제청산연구소 연구위원,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패권쟁탈의 한국사,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조선노비들,왕의여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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