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엄마

나쁜 엄마 ⓒ JTBC

 
드라마 <나쁜 엄마>가 12.1%로 유종의 미를 거두며 14부작을 마무리했다. '나쁜 엄마' 라미란, 나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아들 이도현을 비롯하여 역시나 나쁜 놈에는 명불허전 최무성, 정웅인에 조우리 사람들, 그리고 결정적 키맨이 된 소실장(최순진 분), 차대리(박천 분)에 트롯백(백현진 분)까지 등장인물 그 누구하나 빠지지 않는 호연의 잔치로 14회의 시간이 즐거웠다. 

물론 즐겁기만 한 건 아니었다. 본인의 말대로 어려서 부모를 잃고, 남편도 하루 아침에 죽고, 죽을 힘을 다해 키운 아들마저 생사의 기로를 오가는가 싶더니 검사에서 하루 아침에 7살 아이가 되어버리고, 애써 키운 돼지 농장은 구제역에, 화재까지 한 사람의 인생이 이럴 수 있을까 싶은 일들만 겪던 진영순(라미란 분)씨는 아들이 불러주는 '두 사람'을 들으며 눈을 감고 말았다. 

그녀의 마지막 말처럼 참 고단한 인생 길이었다. 하지만 동네 사람들과 함께 한 마지막 생일 잔치에서 그녀는 말한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남편의 핸드폰 벨소리를 그대로 자신의 벨소리로 했던 진영순씨의 핸드폰에서는 늘 '나는 행복합니다'가 울렸다. 그녀의 삶이 구렁텅이에 빠져들 때마다 울려퍼지던 그 '나는 행복합니다', 그래서 더 그녀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걸 절실히 느끼게 만들었는데, 그런데 진영순씨는 행복했단다. 

영순 씨의 행복론
 
 나쁜 엄마

나쁜 엄마 ⓒ JTBC

 
그녀는 말한다. 일찌기 부모를 잃어 남편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고, 남편이 일찍 죽자 자식 소중하다는 걸 깨닫고 살아왔다고. 의지가지 없이 조우리에 들어와 35년, 곡괭이를 들고 돼지 농장은 안 된다고 쫓아온 사람들이 아들 강호를 받아주었듯이, 그렇게 아들과 함께 홀로 고군분투하던 자신에게 동반자가 되어주었다고.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서 자신의 곁을 지켜준 '사랑하는 이'의 의미를 되새기게 해준 <인생은 아름다워>의 배세영 작가답게 역설적인 행복론을 펼치며 드라마는 마무리되었다. 검사가 되어야 한다고 아들이 먹던 밥을 빼앗던 나쁜 엄마였던 진영순씨를 떠올리면 일취월장한 행복론이었다. 

행복하다 했지만 진영순씨가 걸어온 여정은 쉽지 않았다. 자신이 싸준 김밥을 가지고 소풍을 가던 가족들을 하루 아침에 사고로 잃고 사고무친이 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 '돼지'를 앞세운 수줍은 총각이 나타나 결혼을 하잖다. 그와 함께 일구어 가던 농장, 그런데 개발을 앞세운 송우벽이 나타나 그 모든 '행복'을 앗아갔다. 그녀가 싸준 김밥을 들고 나간 남편은 돌아오지 않았다. 

뱃속의 아이와 함께 돼지 농장을 할 자리를 찾아 조우리로 들어온 진영순씨, 아이를 출산하고 다시 돼지 농장을 일군 그녀는 자신과 남편이 당한 그 설움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아들 강호를 검사를 만들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검사가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먹던 밥도 빼앗는 '나쁜 엄마'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아들마저 잃을까 그녀는 김밥을 싸야 하는 소풍조차 보내지 않았다. 

극중에서는 '나쁜 엄마'라는 캐릭터로 명명되었지만 진영순씨의 모습은 흡사 '불도저'같았다. 자신이 목적한 바가 있으면 뒤도 옆도 돌아보지 않고 밀어붙이는, 그런 그녀의 성정이랄지, 뚝심이랄지 하는 그런 모습이 검사가 된 아들 강호가 하루 아침에 반신불수가 되어 병상에 누웠을 때 다시 발현되었고, 그가 7살 지능이 되었을 때 또 다시 발현되었다. 어디 그뿐인가, 애써 키우던 돼지를 묻었을 때도, 농장이 불탔을 때도 그녀는 의연하게 일어섰다. 그 모든 시련을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받아낸 그녀에게 '암'이라는 병증이 찾아온 게 필연적이라 느껴질 만큼. 

하지만 암에 걸려서도 그녀는 자신의 병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입원을 하고 치료를 하라는 의사에게 아직 할 일이 남았다고 단호하게 거절한 진영순씨는 7살 지능의 아들이 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불철주야 고심한다. 심지어 아들이 혼자 힘들까봐 결혼까지 서두른다. 거기에 우벽과 오태수의 농간이 진영순 부자의 삶을 여전히 흔드니 마음 놓을 여력이 없다. 오죽하면 그녀의 죽음이 고단하게 달려왔던 인생이라는 전력질주의 '쉼'처럼 느껴질까. 
 
 나쁜 엄마

나쁜 엄마 ⓒ JTBC

 
검사가 되었다던 아들이 결혼하겠다는 여자와 함께 와서 어머니에게 우벽의 아들이 될 터이니 절연하겠다고 선포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비록 그게 복수를 위한 페이크였다고 하더라도 7살의 지능이 되어 함께 나누지 못했던 모자의 정을 한껏 나누던 그 시간이 영순씨에게는 행복한 시절처럼 보였다. 

그런데 돌아보면 영순씨 뿐일까. 시어머니에 춤바람 난 남편을 거두고, 이제 밤늦게 찾아와 딸 미주가 맡기고 간 손주, 손녀까지 키우는 정씨 아주머니(강말금 분)하며, '도둑' 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철렁하다고 하면서도 아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번번이 당하면서도 두 말없이 또 주머니를 푸는 방앗간집 부부라고 다를까. 자식에 울고 웃고 사는 그네들의 인생이, 정도가 다를뿐 진영순씨와 같은 행복론의 맥락에 놓여있는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건 우리네 부모 세대의 삶이고 행복론일 것이다. 그래서 또 아쉽기도 하다. 냉혹한 검사에서 7살이지만 품안의 자식으로 돌아온 강호가 다시 검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진영순씨는 예전과 다르게 쌍수를 들고 반대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이 다그쳐 검사가 된 아들이 아버지의 복수를 하겠다고 목숨을 내던지며 싸우려 했기 때문이었다. 엄마는 말한다. 검사고 뭐고 다 필요없다고. 니 목숨 지키고, 너가 행복하게 살면 된다고.

아들에게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검사가 되라고 했던 엄마가 그렇게 바뀌었다. 그런 면에서 엄마 진영순씨의 삶도 조금 더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다. 평생을 자식을 지키기 위해, 심지어 죽음의 앞에서조차 자식 홀로 살아갈 걱정에 '결혼 해프닝'까지 벌이던 불도저같던 나쁜 엄마는 아름답지만, '엄마' 말고, 진영순이라는 사람, 그 자체로 행복을 느낄 수 있던 시간이 안타까운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엄마가 비로소 조우리 사람들을 찾는다. 오랫동안 가족같던 사람들, 하지만 자기 앞의 생이 무거워 함께 할 여유조차 낼 수 없던 이웃, 그들과 비로소 어울린다. 같이 술 한 잔도 걸치고, 노래도 부르고, 음식도 해먹고....... 흑싸리, 빨간 싸리 구분도 못하는 진영순씨가 뭘 내야 할지 모르겠다며 화툿장을 옆 사람에게 보이는 장면은 웃기지만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남편, 아들 그런 삶의 숙제로 자유로운 진영순씨의 시간에 대한 아쉬움이다. 아마도 진영순씨를 죽여야했냐는 시청자들의 볼멘소리는 그런 유한한 삶의 시간에 대한 안타까움을 드러낸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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