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항저우'입니다. 9월 23일부터 10월 8일까지, 5년 만에 아시안게임이 열리는 장소입니다. 기다림 자체가 길었던 탓인지 선수들에게는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어떤 때보다도 많이 중요한 자리입니다. 그런 항저우 아시안게임의 현장을 더욱 깊고 진중하게 여러분께 전해드립니다.[편집자말]
 26일 항저우사범대학 창첸 캠퍼스 부설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7인제 럭비 결승이 끝난 뒤 만난 정연식 선수.

26일 항저우사범대학 창첸 캠퍼스 부설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7인제 럭비 결승이 끝난 뒤 만난 정연식 선수. ⓒ 박장식

 
베테랑의 마지막 메달 색깔을 바꾸기 위해, 한국 럭비의 한을 풀기 위해, 한국 럭비를 위해 나섰던 태극전사들이 사흘간 펼친 도전은 지난 26일 17년 만의 은메달 탈환으로 마무리되었지만, 선수들은 다음 도전을 바라보았다.

26일 경기가 끝난 후 만난 럭비 대표팀 선수들은 아시안게임 도전을 마무리한 데 대해 시원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특히 결승전에 도달하기까지 단 한 번의 패배도 없었기에 아쉽다가도, 아시안게임을 '예방주사' 삼아 올림픽에 진출하는 버팀목이 되기를 바라기도 했다. 정연식, 박완용 그리고 한건규 선수를 만났다.

"결승전 일본 염두 아쉬워... 다시 맞붙으면 홍콩 이길 것"

지난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때 동메달을 땄던 정연식 선수는 아시안게임 두 번째 메달을 받아든 소감을 어떻게 이야기할까. 정연식 선수는 "목표는 금메달이었지만, 그래도 값진 은메달을 따내서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사실 누구보다도 금메달을 꼭 가져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불발된 점이 아쉽다"며 소감을 전했다.

특히 정연식 선수는 은퇴 선언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힘이 되어주었던 박완용 선수에게 "정말 롤 모델인 형이다. 함께 뚫어주고, 먼저 솔선수범하는 선배다. 완용이 형처럼 되고 싶은데, 마흔 살까지는 선수 생활을 못 할 것 같다"며, "완용이 형이랑 한 게임 한 게임 마지막으로 생각하자고 했었는데 형의 은퇴 선물로 금메달을 가져오지 못해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결과적으로 조금 아쉽다. 특히 준비 과정에서 이렇게 잘 준비했던 대회가 없었다"라고 말한 정연식 선수. 특히 결승전 후반 한국 공격의 맥을 끊은 아쉬운 판정에는 "판정도 경기의 일부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정연식 선수는 "우리가 사실 결승전을 일본에 염두를 두고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아쉽다"면서, "이것도 우리의 불찰 아니겠냐. 올림픽 예선에서 다시 홍콩과 맞붙는다면 잘 준비해서 이번 시즌 마무리로 꼭 올림픽 진출권을 가져오고 싶다"라고 의연하게 각오했다.

"이젠 정말 그만 해야... 후배들이 내 자리 채워주길"

믹스드 존에서 마주치자마자 박완용 플레잉코치는 다른 말 대신 "죄송합니다"며 울상을 지었다. 은퇴까지 번복하고 대표팀에 다시 합류했던 박완용 플레잉코치(관련 기사: 불혹의 '캡틴' 박완용, 다시 아시안게임 피치 밟았다)는 "내가 제대로 못 해줘 미안하다. 경기 끝나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아쉬움을 크게 드러냈다.

은퇴식까지 치렀다가 한국의 새 역사를 위해 다시 돌아온 피치였다. 박완용은 "행복했다. 너무 행복했다. 다시 뛴다는 것 자체가 너무 행복했다. 노력한 것만큼 결과가 좋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참 아쉬웠다"며 사흘의 여정을 돌아보았다. 이어 "선수들과 열심히 훈련했으니만큼, 후배들이 다시 정비만 한다면 앞으로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다"고 말했다.
 
 26일 항저우사범대학 창첸 캠퍼스 부설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7인제 럭비 결승이 끝난 뒤 만난 한건규(왼쪽), 박완용(오른쪽) 선수가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26일 항저우사범대학 창첸 캠퍼스 부설경기장에서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7인제 럭비 결승이 끝난 뒤 만난 한건규(왼쪽), 박완용(오른쪽) 선수가 금메달을 들어보이고 있다. ⓒ 박장식

 
이어 박완용 플레잉코치는 "이제 정말 그만 선수로 나서는 것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박완용은 이어 "나에게 의지하다보면 후배 선수들이 그대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후배들이 의지한 만큼 못 해줘서 너무 미안하지만, 이제 나는 이번이 마지막 차출이 되었으면 한다. 후배들에게 정말 힘을 주고 싶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하지만 박완용은 11월 열릴 올림픽 최종 예선을 준비하는 24인의 준비 명단에 포함되어 있다. 박완용 플레잉코치는 "선수들이 보완해야 할 점을 보완하고, 선수들 마음도 다잡고 해서 최종예선 준비하고 싶다. 후배 선수들에게 충분히 가능성이 있으니까, 좀 더 준비를 해서 잘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울먹인 거구의 베테랑... "응원만큼 세 배 네 배 준비하겠다"

거구의 베테랑 한건규는 믹스드 존에서 울먹였다. 한건규는 "너무 아쉽다. 속상하고 많이 응원해주신 가족 분들과 팬 분들께 정말 감사하고 또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그러며 "아픈 와중에서도 주사 맞으면서 뛴 장용흥 선수, 은퇴했다가 팀을 위해 다시 돌아온 최고참 박완용 선수에게 너무나도 감사하다"며 동료 선수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한건규는 "내가 아시안게임 동메달만 세 개째라 금메달로 마무리하고 싶었다. 결승만 올라가면 무조건 이기자는 하나된 마음으로 준비했다"며, "은메달도 큰 성과이지만, 올림픽 예선 때 홍콩을 꺾고 올림픽에 나갔던 것을 생각하면서 경기를 뛰었는데 얄궃다. 우승 못 한 것이 아쉽다"며 아쉬워했다. 

이어 한건규는 심판진의 아쉬운 판정을 비판했다. 

"우리가 볼 땐 아쉬움이 많다. 심판의 판정이 럭비의 일부이긴 하지만, 앞서 상대의 반칙으로 득점이 제지될 때 '센터 트라이'라고 해서 우리의 득점이 인정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의아하다. 우리가 홈 어드밴티지를 받지는 못하겠지만, 이런 상황까지 나오니 선수들이 심리적으로 흔들렸을 테다."

그럼에도 선수들에게는 고마움을 표했다. 한건규 선수는 "선수들 연령대가 어려졌는데, 도리어 하고자 하는 의지가 커졌다"며, "홍콩에게 여기서 졌지만 올림픽 예선에서는 1등을 해서 나가겠다는 각오를 단단하게 하고 있다. 홍콩을 만난다면 두 배로 갚아주기 위해 세 배 네 배로 준비할테니,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고 각오했다.

끝으로 한건규 선수는 "최윤 회장님이 오시면서 럭비가 여러 미디어에도 노출되고, 홍보도 많이 되면서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시는 등 과분한 사랑을 받고 있다"며, "응원해주시면 우리가 열심히 준비해서 팬분들께 보답하겠다"라고 인터뷰를 마쳤다.

사흘간의 여정을 마친 럭비 대표팀은 소속팀 복귀를 위해 27일 오후 6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다. 귀국길에는 선수단을 환영하고, 메달에 따른 포상금을 수여하는 행사가 이어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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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 기사를 쓰는 '자칭 교통 칼럼니스트', 그러면서 컬링 같은 종목의 스포츠 기사도 쓰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도 쓰는 사람. 그리고 '라디오 고정 게스트'로 나서고 싶은 시민기자. - 부동산 개발을 위해 글 쓰는 사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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