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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전문가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은행들이 다양한 사회적 공헌 활동을 하고 금융소외계층을 향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금리 상승으로 거둬 들인) 수천억, 수조원 단위 이자수익의 5~10%도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2월 23일 오전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상생금융 확대를 위한 금융소비자·전문가 현장 간담회'에 참석해 "은행들이 다양한 사회적 공헌 활동을 하고 금융소외계층을 향한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했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금리 상승으로 거둬 들인) 수천억, 수조원 단위 이자수익의 5~10%도 소비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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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시중은행의 금리가 금융 당국 책임자 '입'에 따라 오르내렸다면 올해는 금감원장의 '발'이 금리를 좌우하고 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은 지난 2월 23일 현장 간담회를 위해 하나은행 본점을 찾았다. 같은 날 하나은행은 돌연 취급하고 있던 서민금융상품, '새희망홀씨대출'의 신규 취급 금리를 최대 1%포인트 내렸다.

지난 3월 9일 이 원장이 KB국민은행을 찾았을 때도, 국민은행은 즉시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신용대출 등 전체 대출금리 인하 계획을 발표했다.

선불보따리 풀어놓는 시중은행들 

시중은행들은 이 원장의 발길이 닿을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선물보따리를 풀어놓고 있다. 이 원장이 각 은행과 관련한 '덕담'을 건네면 은행들이 대출 금리를 인하하거나 상생 금융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호응한 것.

금융 당국자의 말이나 행보에 따라 금리가 오르내리는 이같은 현상은, 고금리 시기에 금융 소비자의 부담을 더는 순기능을 했다고 볼 수 있지만, 기준금리를 통해 통화량을 조절하는 한국은행의 정책 기능을 사실상 무력화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 박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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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지난 2월 17일까지 "은행이 약탈적이라고 볼 수 있는 방식의 영업을 하고 있다"며 은행 업계를 향해 칼날을 정조준하던 이 원장은 2월 말 들어 본격적으로 4대 시중은행과 지역은행을 순회하는 등 현장 행보에 나섰다. 

가장 먼저 방문한 하나은행에서 이 원장은 "은행들이 과점적 구도에 안주하는 등 손쉬운 이자 이익에 집중해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모습과 그 이익을 과도한 성과급 등으로 분배하는 모습이 국민들에게 실망과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나은행의 차주 우대 대출상품을 언급하며 "(해당 상품 같이) 서민과 상생할 수 있는 금융상품 및 서비스 등이 은행권 전반에 널리 확산되어야 한다"고 치켜세웠다.

이날 하나은행은 대출 금리 인하 계획에 더해 중소기업·소상공인 대상 '안심 고정금리 특판대출'의 출시를 발표했다.

이 원장은 3월 8일엔 부산은행 본점을 찾아 "지역경제에 기반하는 지방은행이 지역 사회와의 동행을 통해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같은 날 부산은행은 3월 중으로 모든 대출 상품의 신규 대출 금리를 최대 0.85%p 인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원장의 발길로 서민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대출금리는 최대 1%포인트까지 내려갔다. 

하루 다음날인 3월 9일엔 KB국민은행을 찾아 상생금융 확대방안을 격려했다. 특히 KB국민은행은 간담회 직전 전 상품에 걸쳐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등 내용이 담긴 6600억원 상당의 상생금융 방안을 공개했다. 그러자 이 원장은 "시의적절했다"고 평가하며 "은행권 전반으로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격려했다.

이밖에도 이 원장이 각각 3월 24일과 30일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을 찾았을 때 두 은행 모두 대출금리 인하 행렬에 동참했다. 신한은행은 주택담보·신용대출 금리를 0.4%p 인하하는 등 1623억원 상당의 이자 비용을 지원하겠다고 밝혔고, 우리은행은 대출금리를 최대 0.7%p 인하해 소비자들에 2050억원 가량의 혜택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원장의 '발길'에 따른 대출금리 인하 행렬은 지난 달 초까지도 이어졌다. 지난 4월 3일 이 원장이 대구은행을 찾아 '햇살론'의 운영 실적을 격려한 날, 대구은행은 역대 은행 가운데 최대치인 1조 6000억원 가량의 거금을 들여 서민금융 종합지원에 나서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은행들의 상생 계획 발표는 곧 이 원장의 '실적'이 됐다. 금감원은 지난달 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은행권에 의한 '상생 금융' 지원 방안에 따라 연간 3000억원 이상의 대출이자 감면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놨다. 금감원은 또 상반기 중 시장금리 하락에 따른 대출금리 하락을 금융 소비자들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한은이 기준금리 높여도 시장금리가 완전히 따로 논다"

이같이 금융 수장의 입과 발이 은행의 여수신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는 현상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한은의 통화정책 결정권 침해' 요소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복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금리는 원칙적으로 한국은행의 소관이다. 한은과 갈등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가는 "전형적인 '관치'이자 은행의 가격 결정권 침해"라면서 "한은에 대한 통화정책 결정권을 무력화하는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플레이션과 미 연준 금리인상에 맞춰 한은이 금리를 올려야 하는데, 한은이 아무리 기준금리를 높여도 금융 당국에서 압박을 주니 시장금리가 완전히 따로 논다"며 "현재 기준금리가 3.5%인데 예금금리가 그보다도 낮다.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사실상 한은의 독립성이 깡그리 무시되고 있는 것"이라며 "급기야 현재는 한은조차 윤석열 정부의 눈치를 보느라 여럿 핑계를 대며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로 인해 서민들은 더 오래 인플레이션을 견뎌야 하는 처지"라고 진단했다. 

그는 "물론 윤석열 정권이 대출금리를 억누르면서 대출자들이 혜택을 봤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위기의 순간 망했어야 하는데 망하지 않았던 금융 회사"라며 "지난해 유동성 위기가 왔을 때 금융 당국에서 움직여 시장금리를 억누르는 바람에 저축은행이나 캐피탈사들이 대거 살아 남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이 오래 유지될수록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진다. 금융당국이 서민들 호주머니에서 돈을 걷어 망할 금융회사를 살려낸 꼴"이라고 지적했다.

반면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권이 시장에 금리 관련 신호를 주는 건 선진국에서도 사용된다. 그 자체를 뭐라고 하긴 어렵다"며 "거꾸로 보면 윤석열 정부가 미국이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조절하는 등의 흐름을 빨리 파악해 잘 활용한 측면도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거친 부분이 없지 않다. 미래가 여전히 불투명한데도 시장에 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를 과도하게 확산시킨 측면은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태그:#기준금리, #은행금리, #이복현,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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