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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조합원이 치료중이던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사망한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살인 정권 규탄! 건설노조 탄압 중단!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앞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건설노조 송찬흡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분신한 건설노조 강원지부 조합원이 치료중이던 서울 영등포구 한강성심병원에서 사망한 가운데 2일 오후 서울 중구 민주노총에서 ‘윤석열 살인 정권 규탄! 건설노조 탄압 중단! 긴급 기자회견’이 열렸다. 기자회견에 앞서 민주노총 양경수 위원장, 건설노조 송찬흡 부위원장 등 참석자들이 묵념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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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이다. 2일, 민주노총 건설노조 조합원 강원건설지부 양회동 지대장이 운명했다는 소식에 참담함과 무기력감이 몰려와 견디기 힘들다. 그 사이 벌써 '시체팔이하지 말라'고, '민주노총 건설노조 해체하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우리나라 건설 관련 노동자가 2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 중 100만 명 이상이 막노동을 하는, 하루 한 명씩 죽어나간다는 건설노동자다(2020년 기준, 한 해 숨진 건설노동자는 모두 458명, 하루 평균 1.3명). 

건설노동자는 대표적인 비정규직 직종이며 일정한 직장에 근무하는 것이 아니라 한 현장이 끝나면 다음 현장을 찾아 옮겨다녀야 한다. 일을 찾아 전국을 돌아다닌다. 돈을 찾아 떠도는 불나방처럼.

그런 건설노동자들이 건설노조로 뭉쳐, 지역 노동자 우선고용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다소나마 안정된 가정생활을 꿈꿀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노조와는 달리 고정된 직장이 없어, 바뀌는 현장마다 다른 자본가를 상대하기 때문에 항상 불안정하고 취약한 조직일 수밖에 없다. 

최근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와 전쟁을 선언하면서 치사하고 치졸한 방식을 택했다. 가장 취약하고 불안정한 노조인 건설노조를 공격한 것이다. 노동자 중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해 노동자 전체와의 전쟁에서 쉽게 승기를 잡으려는 포석일 것이다.

그렇게 취약한 존재이기에 공권력의 칼부림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목숨을 버리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분신을 단지 한 사람의 우발적 시도라고 치부할 수 없는 이유이며, 그 억울함과 절망감을 건설노동자 모두가 느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 정부는 취약한 노동자들을 '약탈집단'이라 규정하고, 대단한 권력과 횡포를 부리는 강자로 묘사한다. 건설자본가들은 고통받는 약자코스프레를 하고 있다. 많은 건설노동자들이 건설자본가들에게 하대를 당하는 경험을 해왔는데, 저들이 약자라니. 게다가 정부는 '노동현장의 약자들'을 보호하겠다며, 건설노조가 아닌 건설노동자들과 노조에 속한 건설노동자들을 이간질하기까지 하고 있다. 

장담컨대, 건설현장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임금을 끌어올린 덕에 일반 건설노동자들의 임금도 10년 전보다 큰 폭으로 올랐다.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건설현장에서 사라진다면 10년 후 지금보다 더 임금이 오를 것이라 아무도 말할 수 없다. '노동현장의 약자'는 노동자들만이, 노동조합만이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조 활동이 '업무방해 및 공갈'? 이게 공정과 상식인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월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관련 현장 방문에서 발언하고 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2월 8일 오후 경기도 수원시의 한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열린 건설 현장 불법행위 관련 현장 방문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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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던 분신한 동지의 유서에는 "집시법 위반이 아니라 업무방해 및 공갈이랍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네요"라는 내용이 담겨있었다고 한다. 

이 정부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교섭행위를 형사법으로 다루려고 한다. 대한민국 노동조합법 81조 제3호는 "사용자가 '노동조합의 대표자 또는 노동조합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자와의 단체협약 체결 기타의 단체교섭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거나 해태하는 행위'를 부당노동행위로 금지"하고 있고 위반시 "2년이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물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건설현장에서 노동조합의 교섭에 흔쾌히 응하는 건설사는 거의 없고,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고 징역가거나 벌금을 물었다는 이야기는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다.

노동조합이 자본가에게 교섭을 요구하는 행위를 "업무방해 및 공갈"로 보고 처벌하겠다는 것이 국토부장관 원희룡과 대통령 윤석열의 "공정과 상식"인가. 윤 대통령의 '공정'이란, 노동자들이 '교섭' 등을 요구하며 자본가들에게 대들지 못하게 해서, 자본가들이 걱정할 필요 없이 '공정'하게 경쟁할 권리를 보장해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간 정부와 언론은 건설노조를 이렇게 탄압해왔다. 

첫째, 언론은 일부의 문제를 전체의 문제로 뒤집어 씌웠다. 예를 들어, 지난 3월 경찰은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공동공갈) 혐의로 A 노조 간부 유아무개(37)씨를 구속했다. 유씨는 건설사들을 협박하며 전임비 등을 갈취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경찰의 관리대상에 올라 있는 현직 조폭이었다고 한다. 또 그가 속했던 A노조는 과거 양대 노총 소속이었지만, 이미 제명 조치를 당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일부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진짜' 조폭이 한 행위를 마치 건설노조 전체의 행위인 것처럼 여겨지도록 '건폭'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자가 구속됐는데, 건설노조 전체의 문제처럼 읽히도록 한 것이다. 

둘째, 정부는 민주노총을 부패한 집단으로 몰아갔다. 윤석열 정부는 회계 투명성 제고와 정부지원금을 받았다는 점 등을 명분으로 내세워 노조에 회계자료 제출을 요구하며 그것에 불응하는 민주노총을 부패한 집단으로 몰아갔다. 

민주노총은 이에 "민주노총은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운영 결과와 사업 예산, 회계감사 결과를 모두 공표하고 대회 진행을 인터넷으로 공개했다"며 "민주노총과 소속 노조의 노조법 위반을 문제 삼으려면 불법증거부터 제시하라"고 반박한 바 있다. 

만약 노동조합 회계를 정부에서 관리한다면 그건 노동조합이 아니라 정부 산하기관이나 다름없는 게 아닌가? 범법행위의 증거가 드러나 조합원들이 검찰에 고발하고 조사를 요구했다면 모를까, 법 전공자인 검사 대통령은 초법적 권리 행사를 해도 되는 것인가? 윤석열 대통령은 자본가들의 대통령일 뿐, 노동자의 대통령이라 할 수 있겠는가?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만 해도, 5개월째 일자리가 없어 실업상태다. 건설자본가들이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고용하지 않겠다고 하며 교섭 자체를 해태하고, 대신 값싼 외국인 노동자를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관련 기사 : 노조 때리기에 발맞춘 건설업체들 "조합원 고용 안 해").

심지어 일부 언론은 '주택업계'의 의견을 인용해, 아파트 분양가가 건설노동자들의 임금 때문에 올라간다고 주장하며 건설노동자들과 일반 시민들을 이간질하는 보도를 내놓기도 한다. 그런데 2021년 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2017~2020년 사이 (분양가에 반영된) 30평 아파트 건축비가 2억 5천만 원 상승했지만, 인건비는 300만 원 상승하여 무려 83배 차이"가 났다고 한다. 

당시 경실련은 "건설 현장에서는 값싼 중국산 철강과 외국인 노동자 채용으로 재료비와 인건비를 절감하고 있다"며 "때문에 건축비는 재료비나 인건비 변동보다 정부 정책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곧 분양가 상승원인은 다른 데 있지 인건비에 있는 것이 아니란 얘기다. 

인건비가 문제되는 업체는 원청건설사가 아닌 '단종사'(현장에서는 원청건설사의 하청을 받는 도급업체인 전문건설업체를 흔히 단종사라 부른다)다. 즉 원청에서 도급을 받아 실제 시공하는 업체들은 정해진 입찰가로, 정해진 공기에 공사를 마치고 이윤까지 남겨야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문제가 된다.

그런데 이런 단종사들이 현 정부와 뜻을 같이 해 건설노조 말살에 앞장서는 건 어리석은 짓이라고 생각한다. 현장 경험으로는, 건설노조와 전문업체가 매일 공정회의를 하면서 호흡을 맞추고 소통이 잘 되는 경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서 예정보다 공사기간을 줄이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단종사가 원청에 강하게 요구해야 할 일이 있는 경우에는 노조의 협조를 얻을 때 훨씬 효과적이다.

하지만 애초에 노조에 선입견을 갖고 노조를 적대시하는 단종사들은 임금을 제때 주지 않거나, 노동자들을 강압적으로 대해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때로는 일부 노조팀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있다. 특히 노조원이 제대로 없는 일부 '가짜노조'들이 현장업무를 방해하는 경우도 있다. 이는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자리 잡기 전부터 있었던 고질적 문제다.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말살시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노조와 함께 조직적 해결방안을 찾아가야 한다. 

약화시킬 순 있지만 결코 말살시킬 수는 없다 
 
건설노동자의 모습.
 건설노동자의 모습.
ⓒ 전국건설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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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자본가들의 맹목적인 이윤 추구 때문에 얼마나 많은 피해가 있는지 기억해야 한다. 삼풍백화점 참사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크고 작은 사고들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최근에도 광주학동 붕괴사고, 현대산업개발 아파트 붕괴사고 등이 있었다. 건설노동자들은 하루 한 명 꼴로 죽어가고 있다. 이런 참혹한 결과를 지금도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건설노동자들은 노동자가 혼자일 때 얼마나 무기력한지 온 삶을 통해 배워왔고, 노동조합으로 뭉쳐야 제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가 더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다. 지금 정부의 탄압으로 노동조합을 일시적으로 약화시킬 수는 있을지 모르나, 결코 말살시킬 수는 없다.

태그:#건설노동자분신, #건설노동자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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