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1984년 업계 꼴찌를 벗어나지 못하던 나이키. 브랜드의 간판이 되어줄 새로운 모델을 찾는다. 나이키의 스카우터인 소니는 스포츠 스타를 물색하던 중, 마이클 조던의 경기 영상을 보고 마음을 굳힌다. 여러 명의 선수들과 광고 계약을 하는 오랜 관례를 깨고, 모든 예산을 조던에게 쏟아붓기로 한 것이다. 당시 신인에 불과한 그에게 거액을 투자하고, 그의 이름을 딴 농구화를 만들겠다는 결정은 도박에 가까운 일이었다.
   
영화는 당시 유행했던 패션과 음악들로, 1980년대 미국의 시대상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영화 <에어>에는 CG도 방대한 세계관도 없다. 하지만 80년대 회사원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신선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사무실 배경과 소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리고 그보단 평범해 보이는 인물들이 열정을 재점화하는 방식이 흥미롭다. 매너리즘에 빠진 나이키 창업자 필, 이혼 후에도 계속해서 아이를 만나기 위해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한 롭, 그리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자신의 직감을 믿고 도전하는 소니까지.

조던은 계약할 회사를 고르기 위해 가족과 함께 미팅 자리에 나선다. 아이다스를 비롯한 거물급 대형 회사가 말했다. "뛰어난 선수들은 모두 저희 같은 업계 1위의 신발을 신죠." 하지만 소니는 이렇게 말한다. "전 조던의 가능성을 믿습니다." 당시의 나이키는 힙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삼류 브랜드였다. 조던은 꺼려하고, 그의 부모는 망설였다. 심지어 나이키의 사장과 직원들 역시 조던과의 단독 계약을 만류했다. 모두의 반대에도 조던의 잠재력을 본 소니는 끝까지 밀어붙인다. "신발은 그냥 신발일 뿐이죠. 누군가 신기 전까진." 이 말은 도전을 망설이는 모두가 자신의 가능성을 시험해 보기 위해, 달팽이 껍데기를 벗어두고 밖으로 나오게 만든다.

나이키에게 마음이 기운 조던의 어머니는 마지막 조건을 내건다. 바로 에어 조던 제품 수익의 일부를 조던에게 분배해 줄 것. 소니는 꼬불거리는 회사 전화기 선을 꽉 붙잡고 망연자실한다. 광고 모델이 계약금 이외의 퍼센트를 받는 건 업계에서 전무후무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 요구를 들어줬다간 동종 업계에서 비난 받는 건 물론이고, 애초에 회사에서 허락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잠시 후 소니는 대표 필에게 계약이 불발됐다고 전한다. 자초지종을 들은 필은 소니에게 말한다. "가서 마이클 데려와. 규칙을 깨야 기억에 남지."
   
기적은 이렇게 일어난다. 서로를 향한 믿음의 굴레가 돌고 돌아서, 모두가 각자의 꿈을 이뤄간다. 어쩐지 근래 본 영화 중 가장 판타지스러운 이야기다. 농구와 나이키에 별 관심이 없고, 에어 조던이 왜 유명한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 영화 속 조던을 보면 그의 성공은 타고난 능력과 지독한 노력에 더해, 그를 믿어준 사람들의 지지로 완성된 것 같다.

모두가 아는 결말의 내용을 이야기하려면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영화 <클라우스>라는 영화를 봤을 때와 같은 느낌을 받았다. 6살 조카가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줄 아는 것 처럼, 나는 산타클로스가 어디선가 마법같이 나타난 할아버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미처 궁금해하지 않았던 그의 인생을 들여다보자 산타클로스라는 이름은 새롭게 다가왔다.

나이키의 성공은 운동화를 신는 지구인이라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숨겨진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전혀 새로운 이야기로 재탄생한다.

한줄평: 나이키 성공 신화인 줄 알았던, 믿음에 관한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