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상화 현진건 80주기 추념식에서 김미경 월간 <빼앗긴 고향> 편집위원장이 "현진건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
 이상화 현진건 80주기 추념식에서 김미경 월간 <빼앗긴 고향> 편집위원장이 "현진건의 삶과 문학"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모습.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현진건과 이상화는 대구가 낳은 대표 문인이다. 현진건과 이상화는 일곱 달 간격으로 1900년 9월 2일과 1901년 4월 5일에 각각 태어났는데, 같은 날인 1943년 4월 25일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4월 25일 오후 4시 상화기념관·이장가문화관, 구구단, 대구역사탐방단, 현진건학교가 준비한 '이상화 현진건 선생 80주기 추념식'이 열렸다. 행사가 진행된 상화기념관에는 120여 명이 참석해 두 분의 걸출한 민족문학가를 추념했다.

손주희 소프라노 '대구 행진곡(이상화 작시)' 독창

식전 행사는 손주희 소프라노의 '대구 행진곡(이상화 작시)'과 '춘향가' 등 독창, 배정옥 <월간 빼앗긴 고향> 편집위원의 이상화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전문 낭송, 김창호 구구단 회원의 현진건 단편소설 '고향' 일부 낭독으로 구성되었다.
 
[현진건 단편소설 '고향'의 끝 부분]

"그는 한숨을 쉬며, 그때의 광경을 눈앞에 그리는 듯이 멀거니 먼 산을 보다가 내가 따라 준 술을 꿀꺽 들이켜고,

"참! 가슴이 터지더마, 가슴이 터져!"

하자마자 굵직한 눈물 둬 방울이 뚝뚝 떨어진다. ​나는 그 눈물 가운데 음산하고 비참한 조선의 얼굴을 똑똑히 본 듯싶었다.그는 취흥에 겨워서 우리가 어릴 때 멋모르고 부르던 노래를 읊조리었다.

볏섬이나 나는 전토는
신작로가 되고요―
말마디나 하는 친구는
감옥소로 가고요 ―
담뱃대나 떠는 노인은
공동묘지 가고요 ―
인물이나 좋은 계집은
유곽으로 가고요 ―"

이어서 추념식 본행사가 속개되었다. 이원호 이장가문화관 관장의 내빈 소개 후 차우미 대구역사탐방단 (전)단장의 축문 낭독, 그리고 이태훈 달서구청장, 김해철 달서구의회 의장, 이상배 달서경찰서장, 김창제 죽순문학회 회장, 이상윤 대구경북익재공종회 회장, 현정주 연주현씨대종회 부회장 등의 추념사가 이어졌다.

이상화와 현진건의 삶과 문학에 대한 강연도

이상화와 현진건 80주기 추념식인 만큼 두 민족문학가에 대한 강연이 준비된 것은 당연했다. 이재원 이장가문화관 고문이 이상화 시인의 부인 서순애 여사에게 업혀지낸 유년기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문의 숨은 일화들을 소개해 참가자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현진건에 대해서는 김미경 <월간 빼앗긴 고향> 편집위원장이 '현진건의 삶과 문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연했다. 현진건을 "우리나라 근현대문학 초창기의 위대한 개척자이자 1936년 일장기 말소 의거로 일본제국주의에 맞섰던 독립유공자"로 소개한 김 편집위원장은 "일제로부터 투옥과 고문, 동아일보 강제 사직, 장편소설 '흑치상지' 신문 연재 강제 중단, 창작집 <조선의 얼굴> 판매 금지 등을 당한 현진건은  병고와 울화, 극심한 가난에 짓눌려 43세 젊은 나이로 타계했다"라고 설명했다.

행사 개최 소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오규찬 대구역사탐방단 단장은 "두 분을 함께 모시는 추념식을 3년째 하고 있는데, 나날이 참가자의 수도 늘어가고 언론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어 다행"이라면서 "이상화와 현진건을 나란히 기리는 기념관이 건립되어 이 행사를 그곳에서 열 수 있는 날이 어서 왔으면 하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고 밝혔다.
 
이상화 현진건 80주기 추념식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이상화 현진건 80주기 추념식 참석자들이 묵념을 하고 있다.
ⓒ 정만진

관련사진보기


태그:#이상화, #현진건, #김미경, #이장가문화관, #현진건학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