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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5일 기후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있는 수련회 참가한 조합원들
 4월 15일 기후파업에 동참하기 위해 피켓을 들고 있는 수련회 참가한 조합원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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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할 수 있는 남은 기간에는 정규직으로 일했으면. 정규직이 되면 노동조합에 가입할 텐데.'

마음 속에 항상 갖고있는 바람이다. 20대부터 활동가로 살았던 나는 '정규직', '노동조합'이라는 말과는 거리가 멀었다. 40대부터 현재까지 계약직을 전전하며 일하고 있다. 취업할 나이를 놓치니 정규직으로 일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 연말이면 계약이 종료되고, 연초엔 일자리를 찾느라 분주하다. 거기다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으니 더더욱 정규직 진입이 어려웠다.

계약직으로 전전하다가 더 이상 노동하지 못 할 때가 오면 쥐꼬리만한 기초노령연금을 받으며 살고 있겠지. 그때를 생각하면 벌써부터 우울하다. 황혼의 아름다움은 고사하고 황혼의 비루함이 먼저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이 엄습한다. 나중 일은 나중에 걱정하자는 게 나의 신조지만 총알처럼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을 수 없으니 마음은 급하다.

퇴직자를 환영하는 노동조합이라니

내가 기대하는 노후는 생계걱정 안 하고, 외롭지 않고, 고독사 하지 않고, 마음 맞는 사람들과 소소한 취미 활동을 하면서 사는 것이다. 돈 걱정 하느라 가고 싶은 곳에 못 가는 노후 생활은 생각만 해도 비참하다. 가끔은 여가를 즐기고 친구들에게 술 한 잔을 살 수 있고,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나누면서 사는 노후 생활이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노후 걱정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슨 일부터 해야 할까? 잘못된 정책을 비판하고 바꾸기 위한 행동도 해야겠지. 틈틈이 노후 자금을 모아야겠고, 버는 돈은 뻔하니 재테크는 꿈도 못 꾼다. 돈 걱정 안 하는 노후, 나이 들어도 품위를 유지하면서 함께 즐기고 함께 책임지는 노후 조직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음나눔유니온'과 함께 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음나눔은 퇴직자 및 퇴직을 앞둔 사람이 만든 공제유니온입니다.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퇴직자가 쏟아져 나오고, 퇴직자가 다시 힘겨운 일자리를 찾아 들어갑니다. 한국은 OECD 국가중 노인빈곤율 1위입니다. 고령자 취업률 세계 최고라는 불명예도 안고 있습니다. 유럽에는 독일금속노조보다 더 큰 유럽 최대의 직능조직이 있습니다. 이탈리아 은퇴자 노조입니다. 조합원 250만 명의 이탈리아 은퇴자 노조를 모델로 한 '이음나눔유니온'은 연금과 복지만으로 일상을 즐기고 자존감을 지키며 살아가는 외국의 은퇴자처럼 한국에도 그런 은퇴자 노동조합을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다." 

노후에 대한 고민으로 우울하던 차에 위와 같은 제안을 지인의 페이스북에서 보았다. 마치 누군가 나의 고민을 듣고 답을 해준 듯하다. 퇴직자를 중심으로 만든 노동조합이지만, 예비 퇴직자도 환영한단다.

'이음나눔유니온'은 '공제로 상호부조하는 삶, 유니온으로 조직하고 실천하는 삶, 단절이 아닌 사회를 연결하는 이음의 삶, 선배 시민으로 자신의 경험을 사회와 나누는 삶, 퇴직 후 인간의 존엄과 자존감이 유지되는 삶'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있다.

사회가 만든 기준으로 나의 퇴직 나이는 아직 10년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이와 같은 기조의 노동조합이라면 미리 가입해서 나쁠 것도 없겠다. 경험 많은 선배 노동자들의 삶을 잘 보고 배워 퇴직자 노동조합 운동으로 활약한다면 얼마나 멋진 일인가. 망설임 없이 가입하기로 했다.

"대 환영입니다. 미리 가입해서 나쁠 것 없어요. 힘든 일 안 시킬 테니까 함께 합시다."

2022년 8월에 '이음나눔유니온' 발기인 가입서를 썼다. 내 인생 최초로 노동조합을 만드는 일에 동참한 것이다. 2022년 12월 16일에는 창립총회를 했다.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다.

한번도 정규직으로 일해보지 않았고(못했고), 한 번도 노동조합 활동을 해보지 않은 나는 53세에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다. 어찌 기쁘지 않을 쏘냐. 2021년에 단행본을 내고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다. 2023년에는 노동조합의 조합원이 되었다. 죽어도 여한이 없는 일을 한 가지 더 이루었다.

마음만은 대학 새내기들의 노조 수련회
 
수련회 장소 뒤편을 둘러보고 있는 조합원들
 수련회 장소 뒤편을 둘러보고 있는 조합원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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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채취한 나물로 부침개 부치고 있는 남성 조합원들
 산에서 채취한 나물로 부침개 부치고 있는 남성 조합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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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4월 14일~15일)에는 경북 문경 희양산 동막골의 '사람과공간'으로 첫 수련회를 다녀왔다. '수련회'라는 단어만 들어도 설렌다. 생애 처음으로 가입한 노동조합에서 떠나는 수련회라니 전날 밤, 잠을 설쳤다.

'이음나눔유니온' 김억(민주노총 전 사회연대 위원장) 상임위원장은 수련회를 시작하는 인사말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음나눔유니온'이 출발할 때 이탈리아노동총동맹(CGIL)을 모델로 삼은 건 잘 알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이음나눔유니온'은 퇴직자들이 마을로 돌아가서 자신이 사는 곳에서 활동하고 연대하는 삶을 살기를 바라며 만들었습니다. 거기에는 '제2전태일 운동'과 '기후정의 운동'이 포함됩니다. 그렇게 '사회연대 유니온'을 만드는 것이 '이음나눔유니온'의 목표입니다. '퇴직자', '노인'이라는 말 속에 담긴 무기력을 털어내고 자존감 있는 제2의 청춘시대를 열어가려 합니다. 걸으면 길이 되고, 함께 걸으면 역사가 됩니다. '공제유니온 이음과나눔'과 함께 걸어갑시다."

김억 상임위원장님의 힘 있는 인사말을 듣고 나니, 어깨가 으쓱했다. 10년 후 퇴직할 나이가 되어도 내 뒤에는 이렇게 든든한 노동조합이 있으니 두려울 게 하나도 없다. 우울한 노후 생활이 올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술 마시고 싶을 때 전화 한 통이면 '오케이' 할 친구도 노동조합에서 만나면 된다.

상임위원장의 인사말에 이어 '노농협약식'이 이어졌다. 노농협약은 도시 노동자와 문경에 귀농한 농업 노동자의 연대로 상호협력하는 관계를 맺는 일이다. 귀농한 마을 주민 5명과 '이음나눔유니온' 공동대표인 김억, 이경옥님이 협약식에 서명했다.
 
노농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노농협약식 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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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약식이 끝나자 30여 명의 수련회 참가자들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나물을 뜯으러 산으로 올라갔다. 뜯어온 산나물을 깨끗이 씻어서 장아찌를 만들고 부침개를 부쳐 먹었다. 수련회 장소 '사람과공간'은 생각보다 꽤 넓었다. 여러 사람의 정성 어린 손길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수련회의 백미는 뒤풀이다. 술이 한 순배 돌고, 문경 주민, 귀농한 주민, 수련회 참가자들의 장기자랑이 시작되었다. 머리에는 서리가 내리고 얼굴엔 주름살이 늘었지만, 마음은 대학 새내기다. 열정이 넘쳤다. 타임머신을 타고 30년 전으로 돌아간 듯 했다. 다음날 아침엔 '4. 14 기후정의 파업'에 참여하지 못한 것을 대체하자면서 각자 쓴 손 피켓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수련회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 올해 환갑을 맞은 선배가 뒤풀이에서 한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눈물이 핑 돌았다. 

"우리 사회를 이만큼 만드느라 고생 많았습니다. 그렇게 고생했는데 말년에 외로우면 안 됩니다."
 
1박 2일의 수련회를 마치면서 이음나눔유니온의 활약을 다짐하며 어깨걸고 인사하는 조합원들
 1박 2일의 수련회를 마치면서 이음나눔유니온의 활약을 다짐하며 어깨걸고 인사하는 조합원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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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에도 싣습니다.


태그:#노후생활, #퇴직자노동조합, #이음나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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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받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관심이 있다. 인터뷰집,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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