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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 여자중학교를 졸업했다. 집 근처에 남녀공학 중학교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이 내린 결정에 의해 나는 여자중학교를 1지망으로 쓰게 되었다.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중학교에는 아이들의 살짝 비틀린 성욕들이 군데군데 묻어있었고 누군가는 같은 성별의 아이돌이 서로를 감금하고 헐뜯는 방식으로 탐닉하는 이야기를 썼다. 그 대상은 학교의 남자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엄연한 성희롱이었다.  

<항구의 사랑>은 작가의 어린시절이자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오르게 하는 소설이다. 여자중학교 내에서 '남자친구'가 할 법한 행동을 하고 다니는 짧은 머리 소녀들이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남자가 하는 짧은 머리'가 여학생들의 자기 표현일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어렸을 때는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문제였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기분이다.

동성애를 금지하고자 하는 학교의 모습
 
항구의 사랑, 김세희,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 항구의 사랑, 김세희 항구의 사랑, 김세희,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 민음사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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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사랑, 김세희,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 항구의 사랑, 김세희 항구의 사랑, 김세희,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 민음사 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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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준희는 학창시절 여고를 다녔다. 학교에서 '팬픽', '이반'이라는 단어들이 유행하고 학교에서는 팬픽 소지와 팬픽 읽기를 금지한다. 교사들은 여자 아이들이 너무 친밀하게 붙어 다니거나 벤치에 껴안고 앉아 있는 것, 누워있는 것 등을 금지하고 싶어 한다. 
 
교사들은 '누워 있는 행위'와 '팬픽 읽는 행위'를 금지했지만 사실 그들이 금지하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지금은 그게 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동성애'를 금지한다고 쓰고 싶었을 것이다.(중략) 그들은 어디까지가 동성애이고, 어디서부터 아닌지 가려낼 능력이 없었다. 그 점 때문에 그들은 혼란을 겪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팬픽을 읽고 서로 붙어다니며 껴안고 누워 있는다. 교사들은 그것이 '보기 좋지 않다'며 지적한다. 교사들은 지속적으로 '동성애'라는 말을 입밖으로 꺼내는 것을 꺼려한다.

차별과 억압이 '정의(定義)'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것을 규정하여 규제하는 노력도 있지만 아예 사회에서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도 있다. 교사들은 아이들의 애정과 친밀함을 정의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사회에 의해 자기표현이 좌절되는 인물

주인공 준희가 어렸을 때 친했던 친구 인희는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변했다. 짧은 머리를 하고 다녔고, 여학생들은 인희같은 친구들을 보며 '이반'이라는 은어를 사용한다. 준희는 인희가 레즈비언이라는 소문과 줄곧 여자친구들과 연애해 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준희는 인희와 거리를 둔다.

인희와 키스할 뻔한 해프닝이 지나고, 인희가 준희의 대학에 찾아오지만 준희는 거리를 두고 싶어한다. 사람들은 인희의 '남자같은' 옷차림을 힐끗힐끗 쳐다본다.
 
인희를 떼어 버린 것이 다행스러웠고, 앞으로는 연락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연락이 온다 해도 다시는 만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 끔찍한 머리 모양과 힙합 바지, 워커. 생각도 하기 싫었다.
 
하지만 준희는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인희의 옷차림이나 말투, 행동들이 여고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 '남자를 따라한 행동'이 아니라, 인희 그 자체의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때 나는 그것이 그 애 자신의 표현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생각지 못했다. 나는 그 사실을 오랜 시간이 흘러서야, 아주 최근에 들어서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그때 난 짧은 머리와 힙합 바지를 자동적으로 남성에 대한 모방이라고 여겼다.(중략)이른바 남성적이라고 말해지는 특성들이 당연히 남성들에게 속하는 거라고 여겼던 것이다. 여자들도 짧은 머리를 원할 수 있고, 그것이 그녀 자신의 표현일 수 있음을 깨닫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준희는 학창 시절 인희가 싫었다. 인희를 멀리했다. 하지만 인희의 자기표현이 사회에서 사람들에 의해 잘못 읽혔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단지 인희는 짧은 머리를 선호했을 수 있다. 단지 남자 아이들을 따라한 것이 아니었다.
 
"난 남자를 너무 좋아해서 안 될 거야."라고 말하는 여자조차 한 여자에게 가장 커다란 사랑을 품을 수 있다는 사실은 그 새로운 세상에 맞지 않았다. 그래도 가끔 그때 일을 떠올리면 이상한 기분이 되었다. (중략)
6년간 본 것들을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다. 그 엄청났던, 소녀들의 사랑하려는 욕구.

준희는 고등학교 시절 민선이라는 동성의 선배를 좋아했던 일을 떠올린다. 대학생이 되고 이성친구들과의 술자리, 미팅 등에 노출되며 여성으로서 갖춰야 할 것들을 학습하는 준희는 불편한 하이힐도 신고 열심히 화장도 한다. 준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때 자신이 민선을 좋아했던 마음이 철모르던 나이의 놀이가 아니라 진정성있는 사랑이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제 서른이 넘은 나는 그 모래사장에서 처음으로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때 그녀가 말한 사랑이란 어떤 것이었을까.

준희는 오랜 시간이 지나 해변에서 민선이 준희에게 썼던 '사랑해!!'에 대해 생각한다. 자신에게 외쳤던 민선의 사랑은 자신과 달랐다. 하지만 민선에게 느꼈던 자신의 사랑은 분명한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사회가 외면하는 것이었지만 자신에게만은 진정성 있는 것이었다고 준희는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개인은 사회에 의해 쉽게 오해된다

사람들은 타인의 감정과 타인의 표현에 대해 그들 나름대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 남성이 한 귀걸이, 핑크색 옷 등을 동성애자의 상징처럼 말한다. 사실은 핑크색 옷을 좋아해서 입고, 짧은 머리를 하고 싶어서 한 것일 수도 있는데 말이다. 또 어떤 사랑은 가짜처럼 폄하되기도 한다.

작가는 사회의 기준이 다양화 되기를 원하는 것 같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사회에 적합하고 그른지를 가려내기보다는, 다양한 개인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가치와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사회로부터 좌절되는 순간 우리의 가치도 획일화 된다. 이것은 상당히 위험하다.

중학교 시절 짧은 머리를 하고 교복 바지를 입고 다니던 그 친구가 떠오른다. 여자 친구들의 사랑을 받기도 하고 질투와 시샘을 받기도 했던 그 친구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 아이의 선명한 자기표현을 철 없었던 우리 모두가 부스럼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우리 자신은 쉽게 오해 받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다른 사람은 쉽게 오해하고 쉽게 규정해버리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다음 블로그에도 게재됩니다.


항구의 사랑

김세희 (지은이), 민음사(2019)


태그:#책동네, #장편소설, #성소수자, #자기표현,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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