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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각에서는 언제나 기상 통제 같은 논란이 큰 주제에 대해 검토하는 것을 꺼리는 움직임이 있기 마련이지만, 이 분야에서 얻을 수 있는 엄청난 군사적 능력을 무시하고 있다가는 우리가 심각한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개빈 프레터피니의 책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에서 작가인 개빈이 어떤 보고서에서 인용한 문장이다. 해당 보고서는, 1996년 미 공군 참모총장 앞으로 제출된 '군사력 증강 인자로서의 기상: 2025년 기상 장악 Weather as a Force Multiplier: Owning the Weather in 2015)'이라는 제목의 연구보고서다.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표지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표지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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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보고서는 구름이나 안개로 병력과 군 장비의 이동을 숨기고, 강수를 유도해서 적군의 병참선을 물에 잠기게 하며, 원하는 목표물을 향해 번개를 꽂을 수도 있다고 기술한다.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지만 실제로 이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 정부가 매년 수천만 달러를 투자했다고 하니, 연구에 진심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루에 수십 번씩 구름을 보기 위해 하늘을 쳐다보는 구름 애호가인 내가 구름감상협회(cloud appreciation society) 회장인 개빈 프레터피니의 책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를 펼쳐 든 건, 단순히 지금보다 더 구름을 잘 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12장-비행운'에서 인류가 만들어낸 구름인 비행운이 지구 온난화에 한몫하고 있다는 사실과 수많은 국가가 전쟁에 이기기 위해 기상을 통제하려 했다는 사실을 읽으니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저 지긋지긋한 과학 만능주의라니!

기상을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환경과 인류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만 따지는 것은 최근 설악산 케이블카 설치를 두고 벌어지는 일들을 떠올리게 한다.

오색케이블카 설치를 통해서 돈을 벌고 지역 경제에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그 때문에 훼손하게 될 자연의 가치에 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눈앞의 작은 이익이 언젠가 있을 미래의 큰 소실을 눌러 버린다.

구름에 관하여 쓸 수 있는 모든 이야기를 담은 책

이야기가 옆으로 샜지만 <구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이보다 더는 완벽한 구름 책은 나올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구름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갖춘 책이다. 책은 기본적으로, 구름의 발생 위치와 겉모습에 따른 분류법에 따라 적운, 권운, 고적운 등의 10가지 속을 각각의 장으로 분류하여 설명한다.

하지만 이 책의 묘미는 각 구름의 설명과 별개로 작가가 쏟아내는 잡학 다식한 이야기에 있다. 뉴스 속 일기예보에 쓰이는 뭉게구름의 디자인은 누구에 의해 만들어졌는지, 구름이 등장하는 최고 오래된 그림은 무엇이며, 신화에서 구름은 어떤 의미인지, 층적운을 왜 구름계의 셰어(미국 팝가수 겸 영화배우 Cher)로 부를 수 있는지 저자의 화려한 필력으로 펼쳐진다.

특히 개빈 프레터피니를 빼어난 글쟁이로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하층운 중 하나인 적란운을 소개하는 장에서 소환한 미 해병대 소속의 전투기 조종사 윌리엄 중령의 이야기다.

1959년 여름, 버지니아주 상공에서 에베레스트산 높이의 적란운을 만난 중령은 갑자기 전투기 엔진이 꺼지는 사고를 만나 탈출을 시도한다. 적란운은 지상 600미터 높이에서 시작해 꼭대기는 1만 8000미터 높이까지 치솟아 그 안에 들어 있는 에너지의 크기만 히로시마 원자폭탄 10개와 맞먹는, 그래서 구름의 왕이라는 별명이 아깝지 않은 구름이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던 중령은 적란운의 심장부를 가르며 떨어졌고 10여 분의 자유낙하를 포함해 40분이 넘는 시간을 구름 속에서 우박처럼 떠다니다가 겨우겨우 소나무숲에 착륙해 살아남는다.

개빈은 이 영화 같은 이야기를 단순히 시간의 순서대로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적재적소에 적란운의 생성 원리, 구름 명명법의 역사, 우박의 생성 원리를 배치해 독자가 자연스럽게 구름의 경이로운 세계에 빠져들게 한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라. 그 덧없는 아름다움에 경탄하라. 그리고 구름 위에 머리를 두고 사는 듯, 공상을 즐기며 인생을 살라." -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11p 
 

위 인용구는 '구름감상협회 선언문'의 마지막 문장이다. 하늘과 구름을 자연으로 바꿔서 생각해 보자. 덧없는 아름다움을 경탄할 일이지, 장악하려 하지 말자. 인간들도 결국 구름처럼 잠시 생겨났다 소멸할 뿐이니 아름답게 존재하다 덧없이 사라지자.

구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 신기하고 매혹적인 구름의 세계

개빈 프레터피니 (지은이), 김성훈 (옮긴이), 김영사(2023)


태그:#환경, #구름, #구름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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