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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국무회의 발언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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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제조산업별노동조합인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지난 1월 중앙집행위원회를 열었다. 이 회의에서 금속노조는 지부의 단체협약 중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당성이 인정된 산재 사망자의 가족 채용 우대 조항을 제외한 '정년퇴직 자나 장기근속자 가족 우선 채용 조항'을 수정하기로 결의했다.

수십 년 전 대기업 노사는 산재 사망자나 생산직 노동자들의 자녀 우선 채용에 합의했다. 장기근속을 유도하고 장기근속자의 공로에 대해 보상한다는 취지다. 금속노조에 속한 기아자동차도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산재 사망 조합원 가족이나 장기근속자 자녀에 대한 우선 채용 조항을 합의했다. 기아차뿐만 아니라, 현대중공업, 한국지엠 등 주로 자동차, 정유, 조선업 직종의 대기업에서 이러한 합의가 이뤄졌다.

그러나 1997년 IMF 구제금융으로 인한 경제위기 이후 우리 사회경제 상황은 더는 이러한 합의를 용인하기 어렵게 되었다. 만성적인 저성장과 비정규직의 확대로 노동시장의 이중화가 심화하였기 때문이다. 잘나가는 일부 대기업의 근로조건과 대다수 중소기업의 근로조건의 차이는 극대화 됐다.

2022년 기아자동차의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기아차 노동자의 평균연봉은 1억 천만 원이며 평균 근속은 22.4년이다. 이는 2021년 중장년층의 소득 중앙값(소득을 일렬로 세웠을 때 가운데 값) 2515만 원의 4배에 가까운 수준이다. 생산직 노동자 초임 역시 각종 언론 보도에 따르면 2021년 기준 5600만 원 이상으로 통계청의 2021년 임금 근로 일자리 소득 중 20대의 평균 소득 연간 3000만 원보다 2배 가까이 높다.

금수저, 흙수저 논란에서 보여지듯 경제활동의 시작이 되는 노동시장의 진입에서부터 우리 사회 '기회의 공정성'과 '평등'은 구조적으로 훼손됐다. 계층 상승의 사다리가 실종된 상황 속에서 이를 바로 잡아야 할 노조가 '조합원 찬스'로 자녀에게 일자리 대물림을 요구하는 것은 국민에게 과도한 욕심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지난 2011년 현대자동차 노사의 조합원 자녀 우대 단체협상 논란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현대차 노사는 정년 퇴직자와 25년 이상 장기근속자의 자녀에 대해 신규인력 채용 때 우대 하기로 약속했다. 이에 현대차 하도급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물론 노동계에 우호적인 울산지역의 시민사회 내부에서도 현대차 노조가 "연대와 평등의 가치를 훼손했다"라며 비판에 가세했다.

윤석열 정부의 불순한 노조 때리기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장기근속 조합원의 자녀에 대한 채용 우대 조항은 윤석열 정부의 노조 때리기의 좋은 소재가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8일 국무회의 때 국내 일부 기업의 직원 자녀 우선 채용 조항을 '고용세습'이라 규정했다. '고용세습'은 헌법에 위배 되며 부당한 기득권 세습으로 미래세대의 기회를 박탈하는 행위라 비판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난해 고용노동부는 기아차 노조를 비롯해 1057개 노사 단체협약을 전수 조사해 채용 때 직원 자녀에 우대 조항을 둔 63개의 노사 단체협약이 위법하다고 해석하고 시정 명령을 내렸다.

현행 노조법 제21조 제1항은 "행정관청은 노동조합의 규약이 노동관계 법령을 위반하면 노동위원회의 의결을 얻어 그 시정을 명할 수 있다"라고 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노사관계 법제과는 장기근속자 채용 우대 조항이 '헌법'상 평등권과 취업 기회의 균등한 보장을 규정하고 있는 '고용정책기본법'에 위배된다 지적했다.

이러한 해석에 따라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은 지난 2월 금속노조 기아차 노사를 상대로 단체협약의 시정을 명령했다. 노조법 제93조의 2는 앞서 노조법 제21조의 제1항에 따라 행정관청의 단협시정 명령을 거부한 노사당사자에 대해 5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부과해 형사처벌 할 수 있다. 노동부는 2개월의 시정 기간이 지났음에도 기아차 노사가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 우대 조항을 시정하지 않았다며 최근 기아차 노사와 금속노조 위원장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기아자동차 광명 공장.
 기아자동차 광명 공장.
ⓒ 최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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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노사는 장기근속자 자녀에 관한 우대 조항으로 채용된 사례가 지난 10년간 한차례도 없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기아차 노조는 노동부의 시정 명령에 대해 단협안 변경을 위한 노조 내부의 논의와 사측과의 교섭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시간이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했다.

그런데도 정부가 이를 문제 삼는 이유는 자명하다. 경제난과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국민에게 경제적 위기의 책임이 노조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여 반노조 정서를 확대하기 위함이다. 상급 단체가 올해 초 스스로 관련 단체협약 내용의 개선을 결의했음에도 노동부가 금속노조 위원장을 조사하고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할 것이라 협박하고 있다. 부당한 노조 회계장부 공개 요구에 이은 노조 망신 주기일 뿐이다.

기아차 노조가 속한 금속노조는 17일 성명을 통해 "윤석열 정부와 고용노동부가 노사 단체협약 교섭과 갱신 절차, 유효 기간을 깡그리 무시한 채 사문화된 조항을 가지고 노조 때리기에 혈안"이 되었다고 비판했다.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 우대가 지닌 여전한 위험

윤석열 정부의 불순한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되었지만, 노동시장에서의 낡은 관행은 노조 스스로 시급히 개선해야 한다. 현대판 음서제로 조롱당하며 기회의 평등을 무너뜨리는 존재로 노조가 인식되어서는 노조가 '부모 찬스'로부터 소외된 미래 청년세대의 일자리와 근로조건을 대변할 수 없을 것이다.

25년 이상 장기근속자 비중이 높고 퇴직자가 증가하는 상황 속에서 대기업 노조 스스로 해당 내용의 폐지를 이뤄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기아차의 경우 2016년 3분기 사업보고서 기준 국내 30여 개 대기업 중 직원 수는 삼성전자와 현대차, LG전자에 이어 4위로 약 3만 4천 명이고 근속연수는 가장 높은 약 20.1년이었다.

장기재직자 자녀에 대한 신규 채용 우대 조항의 요건이 근속 25년 이상임을 고려하면 상당수의 조합원이 이 요건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노조 집행부는 단협의 장기근속자 자녀 채용 우대 조항이 사문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이에 대한 법적 다툼이 아직 벌어지지 않았을 뿐 법적 분쟁의 소지는 남아 있다. 실제 2021년 10년 만의 기아차 신규 채용 과정에서 노조는 소식지를 통해 회사에 장기근속자나 정년 퇴직자 자녀 신규 채용의 시 우대 조항에 근거한 인력 충원 계획 마련을 요구한 바 있다.

노조가 아닌 개별 조합원이 노조의 통제를 벗어나 회사를 상대로 채용 응낙을 청구할 경우도 문제다. 기아차를 상대로 산재 사망자의 유족이 청구한 사건에 대한 2020년 8월 대법원 판결 내용과 사회적 분위기를 고려하면 기존 노조의 단협이 100% 정당하다고 인정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

당시 기아차 노사의 단협에 근거한 채용 청구 소송에서 대법원 전원합의체 다수의견은 산재 사망자의 직계 유족 1인을 우선 채용하는 단협 조항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것이었지만, 하급심을 비롯해 대법관 일부는 산재 사망자의 직계 가족 1인의 채용 합의조차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산재 사망 노동자의 공로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가족을 우선 채용하기로 정한 단체협약의 약속이 "구직희망자들을 합리적 이유 없이 차별하여 공정한 채용에 관한 정의 관념과 법질서에 어긋난다"라는 취지의 해석이다.

노조가 장기근속으로 자녀 우선 채용을 요구할 요건이 된 조합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우물쭈물하는 사이에 법원에서 장기근속자나 퇴직자 자녀 채용 우대 단협 조항에 대해 정당성이 부인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노동계가 스스로 통 크게 낡은 관행의 개선에 나서야 한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부천노동교육상담소에서 일합니다.


태그:#기아차 채용, #윤석열, #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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