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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편집자말]
하와이에서 홀로 사는 유학생 친구 집에 놀러 갔다. 무리해서 논 탓일까. 콧물이 주르륵 나왔다. 영 힘이 없다. 마침 전자레인지 구석에 있는 레토르트 죽이 눈에 띈다. 난 아무 생각 없이 친구에게 말했다. "나 이거 먹어도 돼?" 친구는 머뭇거렸다. "하나밖에 없는 건데…." 난 천진난만하게 답했다. "내가 한국 가서 10개 보내 줄게."

나중에 이 얘기를 들은 다른 친구가 기겁했다. "야. 미국에서 한국 죽 구하기가 얼마나 번거로운데. 홀라당 먹어버리냐. 비상 식량이었을 걸."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땐 몰랐다. 한국의 소화제, 레토르트 죽 등 우리에겐 사소한 것들이 타국에 사는 1인 가구에게는 비상식량이자 비상키트라는 것을. 

혼자 아프면 서럽다. 다른 나라면 더 서럽다. 해외의 1인 가구들은 어떻게 질병을 이겨낼까. 사는 나라에 따라 차이가 있진 않을까. 그들의 얘기를 들어본다.

캐나다, 일본에 사는 1인 가구들
 
패밀리닥터를 충원하라는 시위대
 패밀리닥터를 충원하라는 시위대
ⓒ Darren St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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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캐나다에서 공부 중인 20대 친구에게 물었다. 캐나다 의료체계는 한국과 완전히 다르다. 가정마다 패밀리닥터가 지정되어 있다. 닥터가 증상을 보고 판단해서 심각한 것이면 한 단계 위 닥터에게 보낸다. 하지만 패밀리닥터를 보는 것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한인 의사일 확률이 매우 낮아 아시안 식습관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내가 먹은 것이 무엇인지 한참 설명해야 할 때도 있다고 한다. 비용도 턱없이 비싸다. 유학생들에겐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한 유학생은 수액을 맞았다가 무려 백 만 원이나 냈다. 

그 때문에 대부분의 해외 1인 가구들은 드럭스토어에서 약을 사 먹는다. 서로 의약품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친구가 캐나다에 간 뒤로 약 박사, 영양제 박사가 되어 의아했는데 그 뒤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가와사키시 산죠병원, 로드뷰 촬영
 가와사키시 산죠병원, 로드뷰 촬영
ⓒ 정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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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상황은 또 달랐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오고, 직장까지 다닌 자취생 친구에게 물었다. 그는 특이하게도 '병원 형태'의 차이점을 말했다. 우리나라의 병원은 대부분 단독 건물이나 상가에 입점한 경우가 많다. 그런데 일본은 개인주택에 병원이 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본 주택가를 걷다 보면 전봇대에 병원 스티커가 크게 붙어있다. 'OO 의원', 'OO 클리닉'이라는 이름으로 되어있는 이 병원들은 1층에 들어서 있고, 2층엔 가정집이 있다. 좋은 점은 일단 병원이 바로 옆에 있으니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건물엔 노인들이 사는 경우가 꽤 있다.

좀 더 조사해봤다. 정말로 도쿄 주택가 한복판에는 요양병원도 있다. 이름이 재밌다. '집으로 돌아가자(おうちにかえろう。)' 병원이다. 환자가 최대한 빨리 원상태로 회복해서 가정과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이 이곳의 모토다.

이곳에선 입원복도 되도록 입지 않는다. 환자가 되었다는 기분만으로 컨디션이 저조해지기 때문이다. 집에서 입던 잠옷을 그대로 가져와도 된다. 식사량과 약 복용 여부는 간호사가 체크하지만, 그 외에 식사 준비 및 정리는 스스로 한다. 약 달력도 직접 써야 한다. 때로는 병원 인근 마켓에 들러 스스로 식자재를 사는 과제를 준다.

도심 한복판에 있어 창문 밖으로 공원의 떠들썩한 아이들 목소리가 들린다. 장을 보는 주민들의 활력도 느낀다. 퇴원 후에도 환자가 일상에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게 지역 케어 매니저, 방문 간호사가 서포트한다.

병원의 목적은 '요양'인가, '독립'인가. 일본의 위 사례들은 '환자와 병원의 거리감은 어느 정도가 적당한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병원 쇼핑, 럭셔리 요양 등이 '부의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아프면 답 없다' 그래서 필요한 것
 
대부분의 해외 1인 가구들은 드럭스토어에서 약을 사 먹는다.
 대부분의 해외 1인 가구들은 드럭스토어에서 약을 사 먹는다.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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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미국, 호주 등 다양한 나라에서 사는 1인 가구들에 같은 질문을 던졌다. "아플 때 어떻게 대처했는가." 모두 자기 에피소드를 말하기 바쁘다.

발가락 쪽이 몇 달 동안 저렸는데 우리나라였다면 한의원이든 정형외과든 가서 이유를 물었겠지만, 그럴 수 없어서 참고 지나갔다는 친구. 배가 너무 아파 데굴데굴 구르다가 아무 약이나 입에 욱여넣었다는 친구. 비행기를 타기 전 여권보다 약 봉투를 더 소중히 대했다는 친구. 그들은 자기 몸을 대회 나가기 전 운동선수처럼 신중하게 대했다. 그들은 모두 '나가서 아프면 답 없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들은 각자 사는 나라의 특성을 파악했다. 어릴 적 즐겨봤던 'OOO에서 살아남기' 만화책 시리즈처럼 말이다. 이 과정에서 가장 잘 알게 되는 것은 놀랍게도 '나 자신'이다.

"난 잔병이 많은 스타일이라 상비약을 꼭 든든히 챙겨."
"온도 변화에 민감해서 에어컨을 직접적으로 쐬지 않아."
"아픈 데 연락까지 안 되면 불안해져서 항상 응급 전화번호를 저장해 놔."


1인 가구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결국 '정보'다. 난 사실 영양제도 잘 챙겨 먹지 않는데 최근 소아청소년과 이슈처럼 특정과 의사들이 줄어들고, 의료공백이 생기게 된다면 최소한 내 몸에 어떤 약이 좋은지는 스스로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여러 가지 이유로 1인 가구가 되었지만, 결국 '내 몸'이라는 가장 변덕스러운 동거인과 평생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성장통에 홀로 대처하는 우리들은 이렇게 어른이 된다.

1인 가구 여성들이 혼자 살면서 알게 되는, 또 새롭게 깨닫고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들에 대해 씁니다.
태그:#해외독립, #의료공백, #해외요양, #호주병원, #캐나다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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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정누리입니다. snflsnfl8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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