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가 역사상 최고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손익분기점은 커녕, 100만 관객을 모으는 영화도 찾아보기가 어려운 실정입니다. 관객들은 티켓값을 내려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극장가와 영화계의 입장은 각기 다릅니다. 표류하고 있는 한국 영화의 현재를 짚어봅니다. [편집자말]
한국 영화의 침체기가 길어지고 있다. 

지난 2023년 1분기(1월부터 3월) 동안 개봉한 한국영화는 단 한 편도 손익분기점을 넘기지 못했다. 황정민, 현빈의 만남으로 기대를 모았던 <교섭>은 약 150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했으나 관객 172만 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손익분기점 350만 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셈이다.

그러나 올 1분기에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교섭>이 가장 나은 성적표를 받았다. 지난 1월 개봉한 <유령>은 66만 명, 3월 개봉한 <대외비>는 75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카운트> <웅남이> <소울메이트> <멍뭉이> <리바운드> 등 개봉작의 대부분은 50만 명도 채 채우지 못했다. 영화계 관계자들이 "사상 최악의 위기"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이유다. 

한국 영화의 부진이 곧 극장가의 부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한국 영화의 빈 자리를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들이 메웠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개봉한 애니메이션 영화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원작 만화 <슬램덩크>의 오랜 팬들은 물론 젊은 층까지 사로잡으며 누적 관객수 438만 명을 끌어모았다.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을 통해 한국에서도 마니아 층을 탄탄하게 확보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 <스즈메의 문단속> 역시 378만 명의 관객을 기록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한국 영화의 부진 이유
 
 국내외 주요 OTT 업체들의 로고.

국내외 주요 OTT 업체들의 로고. ⓒ 웨이브, 왓챠, CJ ENM, 넷플릭스, 애플

 
이러한 현상에 대한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일본 애니메이션 열풍이라기 보단, 한국 영화의 부진이라고 보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고정 팬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관객 동원력이 보장되는 반면, 일반 관객들이 한국 영화를 외면하면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 

한국 영화의 부진에 티켓값 상승이 한 몫하고 있다는 비판도 많다. 코로나 19로 인해 타격을 입었던 극장가는 지난 3년 동안 3차례에 걸쳐 티켓 가격을 인상했다. 현재 주말에 영화를 관람하기 위해서는 1인 기준 1만 5천 원을 내야 한다. 3D 또는 IMAX 등 특별관을 이용하려면 가격은 2만 7천 원까지 뛴다.

영화 티켓값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만 2천 원(2018년 주말 프라임존 기준)에서 2020년 1만 3천 원, 2021년 1만 4천 원, 2022년 1만 5천원으로 매년 1천 원씩 세 차례에 걸쳐 총 25%나 인상되었다. 코로나의 영향으로 전 세계에서 물류 대란이 벌어지면서 최근 3년여 간 물가가 어느 때보다 치솟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티켓값은 물가 상승률 평균에 비교하더라도 상승 폭이 매우 가파른 편이다. 

단적으로 극장의 가장 큰 대체재로 꼽히는 OTT 넷플릭스의 구독료와 비교해 봐도 그렇다. 2016년 한국에서 스탠다드 요금제 기준 월 1만2천 원에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는 지난 2021년 5년 만에 처음으로 가격을 1만 3500원으로 인상했다. 영화 티켓값 상승 폭의 절반인 12.5% 인상에 불과하다.

한국의 또 다른 인기 엔터테인먼트 산업인 야구 티켓값은 어떨까. 코로나 직전인 2019년 기준 서울 잠실야구장의 네이비석에서 주말 경기를 관람하려면 1만 4천 원이 필요했지만, 2020년 시즌 대부분의 경기를 무관중으로 치른 이후 2021년 1만 5천 원으로 가격을 인상했다. 영화관 못지 않은 타격을 입었지만 인상률은 7% 남짓이다. 영화 티켓의 급격한 가격 인상은 '영화나 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극장을 찾을 수 있는 관객이 감소하는 현상을 불러왔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지에서 "가격을 낮춰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는 까닭이다.

넷플릭스 등 OTT 강세 현상이 영화계에 미친 영향

같은 기간 넷플릭스 등 OTT 콘텐츠들이 강세를 보인 것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는 1명만 이용할 수 있는 베이직 요금제 기준 9500원이다. 만약 4명이 이용할 수 있는 프리미엄 요금제를 사용하며 나누어 부담한다면 1인당 부담금은 4250원까지 줄어든다. 극장에서 영화 한 편을 보는 가격으로 약 4개월 동안 넷플릭스의 수많은 콘텐츠를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더 합리적인 선택에 가깝다.

관객들이 극장 대신 집에서 OTT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현상에 따라, 영화 시나리오 역시 극장 대신 OTT로 몰리고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매달 발간하는 웹매거진 <한국영화> 4월호에 따르면 "감독, 프로듀서, 제작사 등 창작진들이 시리즈나 드라마로 제작을 선회"하고 있으며 "2025년 한국영화 (극장 개봉) 라인업은 없다고 보면 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3일 오후 황진미 평론가 역시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사람들은 한국 영화를 '굳이 극장에 가서 돈을 들여서 볼 정도인가'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OTT 이미 다 설치했고 매번 괜찮은 작품이 나오고 있고 볼 게 많다. 굳이 영화관까지 가서 OTT와 차별화 된다고 보기 어려운 콘텐츠를 봐야 하나. 티켓 가격도 비싼데. 집에서 <길복순>을 보나, 극장에서 다른 영화를 보나 콘텐츠 차별화가 안 된다는 점이 제일 큰 문제"라고 짚었다.

이에 대해 CGV 커뮤니케이션 황재현 실장은 최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코로나 19를 거치면서 극장보다는 OTT로 넘어간 작품들이 실제로 많고 이후 OTT로 더욱 몰리는 현상이 체감되는 게 사실"이라면서도 "감독님이나 배우, 제작사도 내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길 바라는 마음은 여전히 크다고 생각한다. 다만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다는 통로가 생겼다는 점은 새로운 희망이라 (OTT를) 원하는 분들도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만 결국 영화의 가치, 영화가 관객들에게 줄 수 있는 경험을 가장 잘 구현할 수 있는 플랫폼은 여전히 극장이다. 제작사, 배우, 감독들이 극장을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 있어"
 
 영화 '범죄도시2'가 '기생충'(2019년) 이후 한국영화로는 3년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영화 '범죄도시2'가 '기생충'(2019년) 이후 한국영화로는 3년 만에 1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 연합뉴스

 
그러나 CGV 황재현 실장은 "가격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고 항변했다. 그는 "예를 들어 <탑건: 매버릭>의 경우, 4DX와 스크린X 등 일반 관람 대비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는 특별관 관람이 큰 인기를 끌었다. 높아진 관객들의 눈높이를 충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라면 여전히 많은 관객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할 의향이 있다는 게 저희가 <범죄도시2>와 <탑건>을 보며 느낀 가능성"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황 실장은 티켓 가격 상승에 대해서는 극장 수익 보다는 한국 영화의 위기를 극복하고 개봉을 도모하는 차원이었다고 밝혔다.

"티켓 가격은 기본적으로 극장사와 투자 제작 배급사가 50대 50으로 나눈다.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던 건 코로나 19로 인해 개봉을 못하고 있으니까, 가격 상승을 통해 손익분기점을 낮춰보겠다는 시도였다. 가격을 인상하면 배급사, 투자사, 제작사로 나뉘는 몫도 많아져서 손익분기점이 낮아지고 그러면 개봉을 꺼려했던 영화들도 개봉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1천 원 인상이 바로 (극장) 수익으로 직결되는 것도 아니다.

두 번째 이유는 인건비 등 고정비 부담이다. 인건비, 임대료, 관리비 등이 해마다 오르고 있고 그 부담이 굉장히 크다. 극장은 고정비가 워낙 많이 들어가는 구조이고 관객이 적게 들어온다고 해서 고정비가 줄어들 수도 없는 플랫폼 사업으로서의 특성이 있다. 가격 인상으로 아직 이익을 내지는 못했고 지난 3년간 CGV의 영업손실이 7천억 원이 넘는다. 가격 인상으로 7천 억을 만회할 수 있었냐면 그렇지 않다. 아마 10년 동안은 이익을 내야 할 것이다. 현재 정상화되는 과정 중에 있는데 아마 서서히 회복이 될 것 같다. 더구나 단기 순이익 면에서는 손실 규모가 컸으니까 돈을 빌려와야 했다. 빌려온 돈에 대한 이자를 갚아야 하는 어려움 등이 있다."(CGV 황재현 실장)


이어 가격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도 "가격을 만약 인하한다면 어느 정도로 관객이 더 많이 들어와서 줄어든 가격 만큼 이익이 이를 초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배급사, 제작사와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현재로서는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가격 보다 홀드백 기간 없어진 탓 커"
 
 영화 관람료 인상한 CGV(2022.3.25, 자료사진).

영화 관람료 인상한 CGV(2022.3.25, 자료사진). ⓒ 장지혜

 
그러나 영화를 직접 만드는 감독의 입장은 또 달랐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영화 감독은 24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스태프 인건비가 너무 많이 올랐다. 예전에는 예산 30억으로 찍을 수 있었던 영화를 지금 70억으로 찍어야 한다. 질적으로 같은 수준이어도 그렇다"며 "홍보 예산도 너무 많이 올랐다. 유튜브 채널에 영화를 홍보하러 나가기 위해서도 억 단위의 비용을 써야 한다"고 호소했다. 전반적인 영화 제작 비용이 상승하면서 그만큼 손익분기점을 채우기도 어려워졌다는 것. 그러면서도 티켓 가격에 부정적인 여론에 대해서는 오히려 "홀드백(극장 상영 뒤 OTT 등 다른 플랫폼에서 상영되기까지의 기간)이 없어진 탓이 크다"고 짚었다.

"외국 영화는 극장에서 보는데 왜 한국영화는 안 볼까? 한국 영화는 조금 뒤에 바로 VOD로 나오는데 굳이 극장에서 볼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러니까 1만5천원이 아까운 것이라 생각한다. 20대 친구들에게 물어봐도 그러더라. 한국 영화 볼 바에 <스즈메>를 한 번 더 보겠다고. 그건 극장에서 밖에 못 본다고 하더라. <존윅>은 벌써 100만 (관객)이 넘었다. 한국영화 만드는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그렇지만 저희가 자초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는 문제다." 

'볼만한 한국 영화가 없어서 영화관에 가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이 감독은 "저도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영화는 비효율적이다.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돈을 써서 영화를 만드는데, 우리가 경쟁하는 건 20분짜리 유튜브 콘텐츠다. (유튜브를) 무시하는 게 아니라, 효율성 면에서 (경쟁력이) 떨어진다. 그만큼 관객들에게 재미있는 콘텐츠를 못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영화 산업이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다소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젊은 감독들이 치고 올라오면서 좀 더 다양한 한국 영화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런 기회를 주지 않은 것 같다. 우리나라 영화는 스릴러, 신파 공식 이런 식으로 딱 나뉘어 있다 보니, 관객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했다. 그러니까 굳이 (극장에서) 영화적 경험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꼭 극장에서 볼 영화만 보고 나머지는 OTT로 봐도 된다고 생각하겠지. 저는 (한국영화 산업이) 돌아올 것 같지가 않다. 물론 5월에 개봉하는 <범죄도시3>는 보겠지. 그 후로도 한국영화가 살아날까? 나는 모르겠다. 굉장히 부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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