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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나영 상담가가 '부모가 궁금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안녕하세요. 열세 살 자람이 (가명)엄마입니다. 새학기가 시작한 지도 벌써 두 달이 다 되어 갑니다. 오늘도 열세 살 아이는 작년 같은 반 아이들과 줌으로 모임입니다. 이 찬란한 봄에, 밖이 아닌 제 방에서, 그것도 대낮에요.

처음 두 명으로 시작한 줌 모임에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이 하나 둘 더 등장합니다. 아이들은 수다도 떨고 게임도 해요. 제 핸드폰에 다운로드 되어 있지 않는 게임을 친구가 하는 것도 볼 수도 있습니다. 화면을 공유하면 되거든요.

코로나 시국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니 줌으로라도 놀기를 바랐어요. 친구들과 만나지도 못하는데 얼굴 보고 이야기 할 수 있으면 그게 어딘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보고 있자니 속이 터집니다. 밖에서 놀 수 있는데 왜 집에서만 노는지 모르겠습니다.

밖에서 보는 건 안 되는(!) 아이들이 줌에서는 모여서 노는 건 된다는 게 제 입장에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핑계 같기도 하고요. 주말에도 낮밤을 가리지 않고 두 시간 정도를 줌에서 놉니다. 나가 놀라고 해도 요지부동이고요. 계속 이렇게 줌으로 놀게 둬도 될까요? 
 
요즘 십대 아이들에게 여가 시간에 무얼 하느냐고 물으면 열명 중 아홉은 방에서 핸드폰을 보며 쉬거나, 게임을 한다는 답을 듣습니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며 자란 요즘 아이들은, 화상 채팅으로 얼굴을 본다거나, 온라인 게임으로 친목을 다지는 것에 매우 익숙합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의 일상이나 정보, 그들의 노래나 연기도 핸드폰을 열기만 하면 너무 많이 쏟아져 나오는 세상입니다. 드라마나 영화도 방영 시간을 기다릴 필요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볼 필요도 없이 유튜브를 열면 10분짜리 요약본으로 중요한 장면만 다 훑어볼 수 있습니다. 온라인의 세상은 정말 너무 다양하고 많은 경험이 가능한 것은 사실이죠.

한 번도 만난 적 없지만 온라인 상의 인연으로 연애를 하고 있다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종종 듣게 됩니다. 비밀을 다 나누고, 내 마음을 다 이해해주는 비대면 여친과의 연애로 설렌다네요. 만난 적 없는 여친과 싸우기도 하고, 질투도 하고, 헤어지면 상처도 받습니다. 그렇게 요즘 아이들은 온라인 상에서 관계와 감정, 문화·정서적 체험을 강하게 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이 가능한 온라인 세상
 
ⓒ elements.enva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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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인터넷 밖 공간은 어떤가요? 인터넷 안에서는 그렇게나 다양한 경험이 존재하는데 아이들이 즐기고, 놀 만한 현실에서의 공간은 점점 줄어들거나 없습니다. 밖에서 친구들을 만난다고 해도 노래방이나 쇼핑몰을 가고, 포토부스에서 사진을 찍는 것 말고는 별다른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게 요즘 아이들의 삶이지요. 청소년이 갈만한 공간이나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을 찾기가 좀처럼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이 듭니다.

채팅과 메신저로 바로바로 대화가 가능한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오프라인 만남이라는 건 많은 노력과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입니다. 어찌 생각해보면, 관계에서 대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꽤 높은데 그런 대화 정도는 온라인으로도 넘치게 할 수 있는 시대를 살고 있으니 굳이 만남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고 이게 현실이고 요즘 아이들의 문화라고 해서 그냥 내버려둘 수만 있을까요?

코로나의 시대를 거치며 아이들은 직접 대면해서 만나는 일의 기쁨과 즐거움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어른들이 느끼는 3년여의 시간과, 아이들이 경험하는 시간은 차원이 다릅니다. 성장과 변화의 시기마다 경험해야 할 적절한 사회적 자극과 인간관계가 단절된 채로 온라인 수업을 하고, 마스크를 끼고 비대면 시대를 건너왔으니까요. 특히 지금의 초등학교 4학년과 고등학생 1학년들이 그렇습니다. 이 아이들은 초등학교 입학 3년, 중학교 시절 3년을 비대면으로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오프라인의 경험을 싫어한다는 말은 옳지 않습니다. 살을 부대끼며 만나서 이야기하고, 손을 잡고 신나게 놀고, 땀 흘리며 몸으로 경험하는 일들 자체에 대한 경험이 부족하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잘 모르기 때문에' 낯설어하고 좀 더 익숙하고 편한 것을 찾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현실 세계 속의 경험으로 이끌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리 온라인 게임이 재미있다고 해도 야구장에 직접 가서 야구 경기를 관람하면, 그 생동감과 흥분감에 매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 체육대회나 운동회에서 경험하는 경쟁과 환호의 열기는 평생 잊지 못할 느낌을 선물해주기도 합니다.

힘들어하는 친구에게 메신저로 조언의 말을 건네줄 수는 있지만, 손을 꼭 잡아주거나 어깨를 두드리며 해주는 위안, 눈을 마주보며 진심을 확인하는 순간의 깊이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도, 직접 경험해보면 당연히 알 수 있습니다. 다만 우리 아이들이 너무나 오랫동안 그런 경험에 익숙하지 않아서, 인터넷 세상 속 교류의 편리함에 익숙해진 것뿐입니다.

온라인만큼 재밌는 게 많은 세상이라면

아이들을 밖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어른들의 노력과 관심이, 당연히 필요합니다. 자연 속에서 뒹구는 경험, 넓은 세상을 경험하게 해주는 여행, 눈을 마주보고 대화하는 즐거움 같은 것들을 아이들에게 느끼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부모님들도 손에서 핸드폰을 내려놓지 못하고 아이들과 대화다운 대화를 한다거나 함께 몸을 부대끼며 경험하는 활동을 많이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 상담실에 오는 아이들과 지점토로 화분을 만들거나, 석고붕대로 손모형을 만들거나, 꽃과 흙을 직접 만지는 작업을 자주 합니다. 무언가 촉감을 느끼는 활동을 하다보면 마음이 이완되고 편안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별 것 아닌 작업들임도 신기해하고 집중하는 아이들을 만납니다. 어릴 때 해보고 오랜만이라고 하는 친구들도 있고, 이런 작업 자체가 처음이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낯선 경험의 어색함을 견디고 나면, 몰입도가 높아지고 진지하게 작업을 하며 즐거워합니다.

온라인 속 세상에서 아무리 신기하고 재미있는 것을 많이 본 아이들이어도 실재로 만지고 창조하는 작업 속에서 느끼는 희열은 조금 남다르기 때문이죠.

아이들이 마법처럼 뚝딱,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친구들은 무조건 밖에서 만나라고 강요 한다거나, 인터넷을 끊거나 휴대폰 사용을 무조건 막는 것이 정답은 아닙니다. 요즘의 트렌드와 문화는 어느 정도 인정해주는 것은 필요합니다.

온라인 상의 세계가 편하고 즐거운 것도 맞지만 그 이상의 즐거움과 깊이가 오프라인 세상에도 존재한다는 걸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도록 부모님들이 도와주세요.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청소년 아이들이 즐기고 모일 수 있는 공간과 체험할 수 있는 놀이문화를 좀 적극적으로 만들어주는 분위기가 조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부모가 궁금한 이야기가 있으면 쪽지를 보내주세요. 기사에 담아보겠습니다.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


태그:#청소년, #요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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