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거머 쥔 양자경의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 연기력 자체만을 두고 보자면 <타르>의 케이트 블란쳇과 막중지세였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양자경이 분한 영화 속 캐릭터는 기존 우리 사회가 전통적으로 천착해 왔던 모성성이라는 면의 딜레마와 성숙을 멀티유니버스라는 세계관을 바탕으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수상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의 존재론이 그 확장을 거듭하고 있는 이 시대에, 늘 '모성'은 여성이, 그리고 사회가 새로이 정립해야 할 숙제와도 같은 것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는 미국에 이민 온 동양인 에블린이란 여주인공을 중심에 놓고, 그녀가 여전히 가지고 있는 전통의 가족과, 그리고 이민 온 엄마로서의 딜레마와, 그 극복을 화두로 삼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 딜레마의 해결을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성장과 성숙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거기에 양자경의 현란한 무술은 화룡점정이 되었다. 
 
 길복순

길복순 ⓒ 넷플릭스

 
지난 3월 31일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길복순>을 보며 우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원스>의 양자경이 떠올랐다. 환갑의 양자경이 그녀가 가장 잘하는 무공을 앞세워 아카데미를 거머쥐었는데 우리의 전도연이라고. 이미 <일타 스캔들>때부터 전직 운동선수라는 캐릭터가 무람없이 어울렸던 전도연이 첫 신에서 짧은 메이드 옷이 번거로워 쭉 찢어 내며 그녀의 단단한 다리 근육을 아낌없이 드러내었을 때 언젠가 그녀 특유의 들뜬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시상식장을 떠올랐다. 자신에게 좋은 작품이 올 그날을 위해 와신상담했다는 그녀라면 기대해 볼만 하지 않을까.

여성 킬러의 변주, <길복순>

작품 자체만으로 보면 <길복순>은 작위적인 면이 강한 영화이다. 그걸 다른 말로 스타일리시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즉 보기에 따라 변성현 감독만의 분위기가 한껏 드러난 영화일 수도 있고, 그게 아니라 익숙한 클리셰를 남발하며 폼만 잔뜩 잡다 끝난 영화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영화적 만듦새를 차치하고, 여성 킬러 영화 <길복순>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조직에 의해 길러진 여성 킬러의 계보를 따지자면 외국 영화로 치면 <킬빌>이 떠오를 수 있고, 우리 영화로 보자면 <악녀>, <마녀>들이 떠오른다. 이들 영화들은 모두 여성이라는 딜레마에 봉착한 여성 킬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렇다면 <길복순>은 여성 킬러 영화로서 어떤 한 걸음을 내딛었을까. 

복순은 학대당하는 아이였다. 아직 고등학생이 담배를 피웠다는 이유로 아버지는 '참교육'을 시킨다. 아버지의 참교육은 피투성이가 되도록 패고 담배를 씹어 삼키게 하는 것이다. 그런 아버지를 킬러 민규(설경구 분)가 제거한다. 아니 제거의 조건을 제시한 것이다. 아직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버지의 세계 안에서 '복종'하던 복순에게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준 사람이 민규였다.
 
 길복순

길복순 ⓒ 넷플릭스

 
그런데, 그 민규는 복순을 mk소속 킬러로 키웠다. 그 자신이 킬러였고, 복순 역시 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영화 속 상황 설정에서도 나오지만 민규가 가장 아끼는, 그래서 재계약를 하려하는 킬러가 복순이다. 여기서 민규는 복순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가진, 그에게 또 다른 미묘한 감정을 가진 여동생 차민희(이솜 분)가 늘 불만이듯 늘 봐주는 관계로 드러난다.

하지만 드러난 그뿐일까. 영화의 절정에서 복순이 딸에게 무언가를 보내는, 즉 복순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는 민규의 결정을 놓고 봤을 때 묘하게도 오래전 복순 아버지의 '참교육'이  떠오르지 않는가. 희성이 계속 복순이라면 민규를  mk를 넘어설 것이라고 했을 때도 꿋꿋이 '의리'의 범주 안에 자신을 넣으려던 복순은 아버지에 이은 또 다른 '보호자' 민규의 세계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복순, 엄마로 거듭나다

그런데 그 세계의 균열은 복순 자신으로 부터 빚어진다. 바로 복순이 엄마가 된 것이다. 원래 킬러가 아이를 가지면 안되지만, 회사 일에 지장을 주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고 아이를 낳아 키운 복순, 그런데 늘 자신을 쫓아다니며 쫑알거리던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방문을 꽝 닫고 들어가며 자신과 벽을 쌓는다. 그런 아이가 견딜 수 없다. 그런 복순에게 민규는 좀 놔두라 하지만 복순은 말한다. '엄마는 생물학적으로 그럴 수 없다'고.

여기서 '생물학적인 엄마'란 단어에 방점이 찍힌다.  영화 속 복순에게는 '엄마'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녀는 아이를 낳아, 그 어떤 엄마보다 극성으로 아이를 키워나간다. 먼 나라로 출장을 마다하지 않으며 돈을 벌어 아이와 둘이 화초를 잔뜩 키울 수 있는 베란다를 가진 넓은 집을 누린다. 화초를 키우는 그녀 방식대로 물도 주고, 거름도 주고 보살피는게 그녀가 생각하는 '생물학적인 엄마'이다. 

심지어 자신의 아이가 같은 학교 아이를 가위로 찔렀다고 하자 가서 무릎끓고 사과한다. 그 이유를 추궁하다, 아이가 커밍아웃을 하자, 그 조차도 이해하려 애쓰고, 혹시나 그로 인해 아이의 마음에 상처를 주었다 외려 전전긍긍한다. mk의 A급 킬러 길복순이지만 그저 엄마이다. 자기 맘대로 되지 않는 아이에 '죽여버릴까' 하다가도 맨발로 달려가는 엄마, 엄마는 비밀이 없냐는 아이의 말에 어쩐지 께림칙해 이번 일만 하고 그만 둘까 하다가도, 자식 키우는 데 돈이 제일 필요하다는 주변의 말에 직장맘의 심정으로 돌아온다. 
 
 길복순

길복순 ⓒ 넷플릭스

 
그렇게 '본투비' 엄마가 된 길복순, 피도 눈물도 없는 A급 킬러였던 그녀임에도, 그녀의 그 생물학적인 모성성이 뜻밖의 사건으로 그녀를 끌어들인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아들을 자살로 죽이려던 아버지의 요청을 알게 된 그녀는, '재계약'으로 자신을 던져 그 생명을 구한다. 너무 착하게 생겼다는 이유로. 그리고 자신이 실패한 사건은 그 누구도 더는 건드리지 않는다는 조건을 붙여. 

하지만 일로 확장된 그녀의 모성성은 토네이도처럼 MK의 모범사원이었던 길복순의 삶을 송두리채 흔들어 놓는다. 지금까지 그녀의 동료였던 이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든다. 그리고 자신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하지 말라던 인턴 사원은 영원히 입이 봉해졌다. 무엇보다, 이제 그녀가 더는 모범 사원으로 MK에 남을 수 없게 되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 아니 무엇보다 자신과 자신의 딸을 지키기 위해 길복순은 수없이 시뮬레이션을 해봐도 답이 없는 그 전장으로 나선다. 그리고 오래 전 킬러에 의해 죽을  뻔하던 아버지의 의자를 그녀 스스로 걷어차듯, 이제 오랫동안 자신의 보호자이자, 굴레였던 또 한 남자를 걷어찬다. 그리고 돌아온 그녀에게 지폐 속 위인들의 공통점이 모두 누군가를 죽였더라고 말하던 딸이 말한다. '수고한다'라고.

영화를 보며 내내 조마조마했다. 생물학적 엄마로서 사춘기 딸 앞에 혼란스러워하던 엄마 길복순이 혹시나 모성의 비극 속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을까. 하지만 엄마 길복순은 기꺼이 자신과 딸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제 아무리 은인이자 보호자라도 거침없이 걷어차버리는 당찬 엄마였다. 그 엄마에 그 딸의 호탕한(?) 선택만으로도 <길복순>은 한번 볼만한 작품이다. 
덧붙이는 글 https://brunch.co.kr/@5252-jh에도 실립니다.
길복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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