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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계획 같은 건 세우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도 새해가 되면 자기 나름의 계획을 세우곤 한다. 그리고 그 계획 안에 어김없이 운동이란 문구를 반듯하고 정성스럽게 적어 넣는다. 나 역시 그런 계획을 세웠고, 3월의 시작과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3월의 끝자락에 선 지금 나름 잘 버텨낸 결과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채우고 있다.

운동을 하겠다는 계획을 1월에 세우고 3월에 시작한 것은 계절이란 본디 봄에서 시작하여 여름과 가을을 거쳐 겨울로 이어진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자고로 겨울은 쉼의 계절이지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하는 계절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누구나 아는 진실이 숨어 있었다. 게으름이다. 그동안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선뜻 나서지 못한 것은 모든 게 다 게으름에 원인이 있었다.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운동을 근처 행정복지센터에서 운영하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운동은 요가였다. 그전에도 요가를 배우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으나, 나 자신의 꾸준함을 믿지 못했기에 도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 좋게 운동을 시작해야지 하던 차에 가까운 곳에 행정복지센터가 새로 개관한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줄탁동시였다.

그렇게 나의 요가 수업은 시작되었다. 다행스러운 건 수업이 매일 있지 않고 월수금으로 하루하루를 퐁당퐁당 건너뛰고 있었다는 거다. 그래서였을까? 습관이 쉽게 몸에 배지 않았다. 게다가 운동이 끝나고 집엘 가면 몸이 개운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뼈 마디마디가 뻐근거리고, 근육마저 선뜩선뜩해지는 게 느껴졌다. 운동의 효과가 의심스러웠다. 선생님은 이를 두고 몸이 살아나는 행복한 증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자꾸만 선생님의 말을 의심의 눈초리로 쏘아봤다.

그랬다. 그때의 나는 운동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건 운동 전날이면 수업에 빠질 이유를 찾아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던 나를 보면 알 수 있다. 하지만 특별한 이유를 찾지 못한 나는 다음 날이면 또다시 터덜터덜 옷을 챙겨 입고 집을 나섰다. 운동복 차림이 좋은 건 어차피 딸 흘릴 거 별다른 치장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데 있다. 준비 시간은 10분. 이 10분의 수고면 하루를 뿌듯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행정복지센터에 도착해 요가실 문을 열면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앞으로 나란히를 하고 있는 가지런한 매트와 그 위에 다소곳이 앉아 있는 사람들. 대부분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문을 열 때마다 지각을 한 것도 아니면서 민망스러움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다. 그리고 생각한다. 도대체 이분들의 부지런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이분들은 몇 시에 집을 나서기에 지금 이 순간 이토록 여유로운 자세로 호흡을 하고 있는 걸까. 시간을 지켜 도착한 나까지 다 된 밥에 숟가락을 얹게 만드는 그분들의 부지런함이 놀랍기만 했다.

쭈볏쭈볏 찾아 들어간 자리는 언제나 가장 뒤쪽 벽 앞이다. 내 옆에는 엄마뻘 되신 분이 앉아 계신다. 그 분의 몸은 나보다 유연하시다. 평소 강의를 들을 때는 뒷자리를 선호하지 않은 내가 굳이 뒷자리를 고수한 이유는 은근슬쩍 다른 사람들의 동작을 컨닝하기 위해서다. 괜히 앞자리에 앉아 틀린 동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창피를 당하느니 슬쩍슬쩍 눈을 돌려 자세를 교정하려는 의도가 나를 뒷자리로 내밀고 있었다. 그런 주도면밀함으로 컨닝을 해도 틀린 동작은 꼭 나왔다. 그럴 때면 옆에 계신 분이 속삭인다. "발가락은 앞쪽으로 쭉 당기고, 고개는 팔 반대쪽으로."

운동을 하기 전까지는 정신이 벌러덩 누워있는 몸을 일으켜 세운 줄로만 알았다. 정신이 몸보다 우위에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건강한 몸이 나태해진 정신을 일으켜 세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몸이 가벼워지니 세상은 달라 보였고, 무슨 일이든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몸이 건강해지니 덩달아 정신마저 맑아졌다.

운동의 시작은 어렵다. 하지만 효과가 나타나면 세상 그 어떤 것도 부질없게 만드는 마법이 일어난다. 혹시 현재의 삶이 무기력하고 고달파 우울한 사람이 있다면 운동을 시작해 보는 건 어떨지 권해 본다. 요즘 같은 날이면 하염없이 걷는 것도 좋고, 나처럼 저렴한 행정복지센터의 프로그램을 이용하는 것도 괜찮다. 여유가 된다면 개인이 운영하는 운동 시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운동을 시작한다고 해서 우울했던 마음이 즉각적으로 치유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몸이 달라지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 변화의 계기는 마련된 셈이다. 그런 변화가 지속된다면 우울한 감정을 감당해 내는 힘 정도는 생기지 않을까?

요즘의 날씨를 보라. 이보다 경이로운 자연의 힘을 본 적이 있는가. 세상 모든 것을 깨워내는 자연의 힘. 밖으로 나서기만 하면 햇살이 우리를 반긴다. 이런 날 자신의 몸을 집안에 가두는 건 자연에 대한 배신이다. 지금 당장 걷기라도 해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자.

덧붙이는 글 | 해당 기사는 카카오 브런치와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었습니다.


태그:#사는 이야기, #운동,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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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술학원을 운영하며 브런치와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습니다. 쓰기 보다 읽는 일에 익숙한 삶을 살다가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신문과 책으로 세상을 읽으며 중심을 잃지 않는 균형 잡힌 삶을 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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