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
ⓒ 시와에세이

관련사진보기

 
"나는 시를 쓰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시를 썼다. 고난을 견디고 고통 속에 허우적대는 나를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 시를 쓰고 있다. 시는 나의 주치의이며 처방약이다. 시를 쓰는 일은 누가 강요해서도 아니고 내 스스로 강요하지도 않는다. 시가 오면 받아쓰고 오지 않으면 기다린다. 시가 오지 않으면 시가 올 때까지 산문을 쓰며 기다릴 것이다. 생을 마칠 때까지 내가 쓸 수 있는 만큼 형편이 닿는 대로 쓸 것이다. 너무 목숨 걸지 않고 일상을 살듯 시를 쓰는 것 즉 시와 함께 살아갈 것이다. 그것이 내가 지향하는 글쓰기다." - '시를 쓴다는 것' 중에서

지역의 중견 여성시인인 이창윤 시인이 첫 산문집 <풍경의 에피소드>(시와에세이)를 펴냈다. 이 책은 여느 산문집과는 달리 시인의 자전적 에세이는 물론 여러 편의 시(詩)까지 담은 게 특징이다. 에세이 37편과 시 14편으로 구성된 <풍경의 에피소드>는 시인은 범상치 않은 가족사와 고난을 딛고 살아온 자서전적 이야기를 솔직담백한 고백형식으로 풀어냈다. 또한 더 나은 세상을 지향하며, 바람직한 삶을 추구하는 시인의 시선으로 일상과 세상의 풍경을 그려내고 있다.

"나의 엄마는 나"
 
초등학교 입학식 날에는 콧물을 흘리지 않았는데도 왼쪽 가슴에 흰 손수건을 달고 학교로 향했다. 아이를 따라 학교에 가는 일은 엄마들 몫이라고 정해진 것마냥 아버지들의 발길은 드문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집 나설 작정도 하지 않는 것이어서 나는 말도 건네지 못한 채 털레털레 걸음을 옮겼고 혼자만의 쓸쓸한 입학식을 치렀다. 초, 중, 고, 입학식과 졸업식 전체를 통틀어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나만의 행사였으니 얼마나 혼자에 익숙했었던가. - '변함없는 부재의 기억' 중에서

시인은 만 4세의 어린 나이에 어머니를 잃고, 새어머니의 도주 이후 집안의 풍비박산을 겪었다. 그리고 이십대에 아버지를 잃는 등 가난과 불행을 겪으며 고통스런 성장기를 거쳐 왔다. "어느 날 갑자기 청천벽력처럼 엄마를 잃었고, 엄마의 부재로 인한 슬픔과 그리움을 간직한 채 치유할 수 없는 상실감에 지배당하며 살아"온 시인은 우여곡절 청년기를 지나 "결혼한 후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었다. 시인은 스스로를 "먹이고, 입히고, 보살피"는 "나의 엄마인 나"라고 명명한다.
 
1980년대 초반이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나와 남동생이 사회생활을 하게 된 이후에는 생계유지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일손을 완전히 놓지 않고 소소하게나마 경제적 능력을 유지했다. 그러다가 부천 월세방으로 이사한 후 일터를 마련하지 못하자 돈벌이를 영영 못 하게 되었다. 소일거리 없이 지내던 아버지는 추석 연휴가 지난 어느 날 쓰러지셨고 병원으로 실려 갔지만 손쓸 도리 없이 반신불수가 되었다. - '아, 아버지' 중에서

"병원에서 퇴원한 후 작은언니의 병수발을 받으며 보름가량 누워계시"다가 "목숨을 끊기로 작정했는지 며칠 동안 곡기를 거부하다 세상을 "떠나신 아버지 역시 시인에게는 "행복보다는 우여곡절 많았던, 참으로 기구하고 애처로운" 존재다.

나를 일으킨 사람은 나 자신

시인은 결혼 후 IMF를 겪으며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맞벌이에 뛰어들기도 한다. 할아버지부터 시작되어 아버지와 어머니를 거쳐 내려오는 가계는 우여곡절의 연속이었으며 풍파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열정과 용기로 극복하고 시와 그림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환기하며 살아가고 있다.

시인은 고난을 견디고, 자신을 치유하여 해방시키기 위해 시를 쓰고 있다고 한다. 스스로 고백하듯 시인에게 시는 "높은 제단에 바쳐져 피 흘리는/순결한 제물이기보다는/마음의 결박 풀어주는/해방구"('시를 품고 날다')로서 삶을 지탱하게 해주는 "주치의이며 처방약"으로 기능한다.

시인은 "외롭고 쓸쓸해도 어느 한 곳 기댈 곳 없어 바람 불 때마다 갈대처럼 휘청거리던" 자신을 일으킨 건 "그 누구도 아닌 또 다른 나"라고 한다. 자신의 불행했던 시절을 견디고 평온한 일상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녹여내고 있는 <풍경의 에피소드>를 통해 독자들 역시 현실의 삶을 반추하며 잔잔한 감동과 위로 또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창윤 시인은 서울 출생이며 현재 대구에 거주하고 있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시집으로 <놓치다가 돌아서다가>가 있다. 현재 대구경북작가회의, 민족문학연구회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풍경의 에피소드

이창윤 (지은이), 시와에세이(2023)


태그:#이창윤, #산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마이뉴스 모든 독자분들과 기자님들께 경의를 표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