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금주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이금주 평전 '어디에도 없는 나라'.
ⓒ 표지사진 오마이뉴스 안현주

관련사진보기


한일 정상회담 결과에 대한 시민사회 반발이 이어지는 가운데, 1990년대 초부터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소송을 제기하는 등 평생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인권회복에 앞장서온 고(故) 이금주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장의 평전이 출간됐다.

이금주 회장은 결혼 2년 만에 일제에 의해 사랑하는 남편을 빼앗긴 아픔을 안고, 여생을 일제 피해자들의 명예회복에 힘써왔다.

그의 남편은 1942년 11월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둔 채 일본 해군 군무원으로 남태평양으로 끌려간 뒤, 1943년 11월 25일 남태평양 타라와섬에서 미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전투 중 사망했다.

그러나 일제 피해자들은 독재정권하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 권리행사 기회마저 봉쇄당했다. 이 회장은 예순아홉 나이에 1988년 태평양전쟁희생자광주유족회를 결성하고 초대 회장을 맡은 뒤, 이후 30여 년 동안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회복을 위해 한길을 걸어왔다.
  
1990년대부터는 피해자들을 결집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본격적인 소송에 나섰다. 일본 법정에서의 승소보다, 법정투쟁을 통해 전후 배상 문제를 외면하는 일본 정부를 국제사회에 고발함으로써 일본의 반성을 끌어내기 위함이었다.

1992년 원고 1,273명이 참여한 <광주천인 소송>은 이후 대일(對日) 투쟁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 소송을 시작으로,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소송>,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여자근로정신대 피해자 등이 합세해 원고로 참여한 <관부재판 소송>, <B‧C급 포로감시원 소송>, <미쓰비시 근로정신대 소송>, <후지코시 근로정신대 소송>, 일본 외무성을 상대로 한 <일한회담 문서공개 소송> 등 일본 정부와 전범기업을 상대로 7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일본 사법부에 제기했다.

법정 진술, 재판 방청, 각종 시위, 일본 지원단체와 연대 활동 등 노구를 이끌고 그동안 일본을 오간 것만 자그만 치 80여 차례, 그 사이 일본 법정에서 '기각' 당한 것만 모두 17차례에 이른다.

한없이 무모해 보이는 그 싸움은 마침내 꿈쩍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벽에 하나씩 구멍을 내기 시작했다. 40여 년 동안 감춰져 있던 한일협정 문서가 공개되고, 강제동원특별법이 제정된 데 이어, 한국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위원회가 발족한 것. 

피해자들의 끈질긴 투쟁은 마침내 2018년 역사적인 한국 대법원 배상 판결로 귀결됐다. 과거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인해 국가 간 배상문제는 일단락됐더라도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개별 손해는 전범기업인 미쓰비시중공업 등이 책임져야 한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었다.

책에서는 이 과정에 이르기까지 이금주 회장이 외롭게 부딪히며 맞서야 했던 고뇌와 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자신은 물론 아들과 며느리까지, 나중에는 손녀까지 한 집안 3대가 인권회복을 위해 일본과 맞서 모든 것을 쏟아냈던 숨은 사연들을 접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일제 피해자들의 인권을 위해 헌신해 온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대한민국 인권상'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2021년 12월 끝내 일본의 사죄 한마디를 듣지 못한 채 102세를 일기로 한 많은 생을 마감했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발간사에서 "이 평전은 온갖 고난과 좌절 속에서도 역사적 소명을 위해 온 생을 던진 이금주 한 개인의 기록임과 동시에, 광복 후에도 풍찬노숙해야 했던 일제 피해자들의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라고 말했다.

변호사 일을 시작한 첫해 이금주 회장을 처음 만나 이후 일본 소송을 주도해 온 야마모토 세이타(山本晴太) 변호사는 "피해자는 단지 돈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며 "이금주 회장의 인생을 알고, 그 심정을 이해하면, 가해자도 아닌 자가 대신 돈을 내는 식의 '해결방안'이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에도 없는 나라> 송경자 지음. 사단법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엮음. 344쪽. 2만8000원. 도서출판 선인.  

태그:#이금주, #어디에도없는나라, #일제강제동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광주·전라본부 상근기자. 제보 및 기사에 대한 의견은 ssal1981@daum.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