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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에서 발굴에 앞서 시삽을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에서 발굴에 앞서 시삽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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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말이 많다. 그런데 가슴이 메어 말이 안 나온다."

22일 오후 경남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열린 '한국전쟁 진주 민간인 피학살자 유해 발굴 개토제'에서 만난 정아무개(82)씨가 한 말이다. 간혹 눈물을 훔치며 어렵게 말을 이어간 정씨는 자신이 9살 때 아버지가 집을 나간 뒤 돌아오지 않았고 희생되었다고 했다.

그는 "누가 면(사무소)에 가자고 해서 나가셨던 아버지가 그 길로 돌아오지 않으셨다. 할아버지에 이어 아버지는 2대 독자셨다"며 "너무 억울하다. 평생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참말로 힘들게 살았다"고 했다.

정씨의 아버지 제삿날은 5월 10일이다. 그는 "왜 그 날이 제삿날이냐 하면 집을 나가신 날짜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고 했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정씨는 "다른 거 없다. 피해자에 대한 진실규명이 빨리 되기를 바랄 뿐이다"고 했다.

4살 때 부친이 희생되었다고 한 김아무개(76)씨는 "워낙 어릴 때라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다. 집안에 어른들이 말해 주어서 아버지가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명예회복과 피해보상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영철 진주유족회 사무차장은 "삼촌이 당시에 희생을 당했다. 삼촌과 같이 끌려갔던 동서가 어떻게 하다가 살아 왔고, 그래서 삼촌께서 학살을 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전 사무차장은 "삼촌이 학살당한 날짜가 6월 10일로 알고 있다. 그래서 집안에서는 그 날에 제사를 지낸다"고 했다.

개토제는 제례와 인사말, 유해발굴 설명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진주유족회 이학진, 김현국 회원 등이 제관으로 참여했다.

김현국 회원은 붓글씨로 화선지에 곱게 써온 축문을 읽었다. 그는 "6·25 전쟁시기 국가공권력의 탈법행위로 아무 잘못도 없이 정부의 명령에 충실히 따랐다는 이유만으로 무참하게 학살당하신 영령님들께 삼가 고하옵니다"고 했다.

이어 "정부와 공권력은 영령님들을 학살한 죄과를 뉘우치거나 반성하기보다는 은폐하고 묻어두려 획책하다가 자연의 섭리에 힘입은 태풍 루사로 유골들이 드러났고 과거사기본법이 제정되고 난 후에야 사건의 실체가 일부나마 밝혀지기 시작했고 학살 당한 상태대로 산골짜기에서 잊혀져 가고 있는 유골을 발굴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렀습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억울하고 원한에 사무쳐 저승에도 들지 못하는 영령들을 품어주시고 실상을 드러내어 보여주신 토지신과 구천을 헤매는 영령님들께서는 모든 진상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모든 유골들이 남김없이 발굴되며 한 분 한 분의 신원이 남김없이 밝혀져 유골이나마 후손들 품에 돌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시고 도우소서"라고 빌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지금 올리는 이 축원이 하늘에 닿아 구천을 헤매는 영령들이 모두 제자리를 찾아가고 발굴을 준비하는 순간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보살피시어 작은 사고도 없게 하여 주시기를 축원하여 정성을 가득 담아 술을 따르오며 과일과 안주를 올리니 흠향하서소"라고 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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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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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조 회장은 인사말을 통해 "74년의 한을 풀 수 있도록 해달라. 유족들은 진실규명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며 "진주유족회 가운데 7명만 진실규명이 되어 소송이 진행중에 있다. 진실규명이 되지 않은 유족이 더 많다. 팔순 먹은 노인들이 길거리로 나가서 시위하는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했다.

정 회장은 "진주에는 25곳의 매장지가 있었고, 발굴 가능 지역 가운데 삭평마을 산을 발굴하고 나면 1곳이 남게 된다"며 "진실화해위와 지자체에서 예산을 들여 나머지 한 곳에 대한 발굴도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유복자로 태어났던 정 회장은 "진실화해위에서 유전자검사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유족들은 한 구라도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유전자검사에 적극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이훈기 진실화해위 담당관은 "진주지역 진실규명 신청자가 모두 139건이고, 현재까지 7건이 진실규명 되었으며, 나머지는 오는 4~5월에 순차적으로 조사를 해서 결정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임나혁 진실화해위 담당자는 "신원 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 관련한 예산이 아직 반영이 되지 않았고 지금은 시작 단계다"며 "돌아가신 분이 누구인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신원 확인을 해야 한다. 유골과 유족에 대한 채취를 할 것이고 필요하면 추가로 하게 되며, 신원 확인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발굴을 담당하는 이호형 동방문화연구원 원장은 "매장 추정지는 2007년 고 이상길 경남대 교수가 유해 조사를 진행했던 적이 있고, 진주유족회에서 2013년에 시굴조사를 해서 유해 일부를 확인했다"며 "2007년 조사 때는 땅을 10~20cm 정도만 파도 유해가 나왔다고 한다. 이후 큰 비가 와서 유해가 훼손되었을 가능성이 있는데, 최대한 면적을 넓게 해서 발굴을 하려고 할 것이고, 유족과 지역주민이 정보를 주면 참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개토제를 지낸 뒤 관계자들은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매장 추정지를 찾아 시삽을 했다.

피학살자의 유해가 묻혀 있는 땅을 밟고 선 정연조 회장은 "후손으로서 어떻게 하든 유해를 하나라도 찾아서 정성껏 모시는 게 도리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과연 74년만에, 국가의 공식 사과 없이, 가해자 없이 유족이 연좌제에 묶여 이렇게 살아도 정당한 것인지. 2008년에 가해 주체인 국방부에서 240만원, 경찰청에서 150만원의 제수비를 받았지만, 일언반구 사과는 한 마디 없었다"며 "이제는 가해자는 사과하고 피해자는 포용하고, 그렇게 해서 털고 가야 한다. 이념전쟁 그만하고, 국민화합과 대통합을 할 때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라고 강조했다.

삭평마을을 비롯한 진주 명석면 일대 학살지는 한국전쟁 발발 뒤인 1950년 7월 15일경부터 진주시, 옛 진양군의 국민보도연맹과 예비검속자들이 각 경찰지서에서 소집통보를 받고 출두하였거나 관할 경찰서 경찰에게 연행되었다가 진주경찰서와 진주형무소에 구금되었고, 이후 분류를 거친 뒤 7월 하순부터 여러 차례에 걸쳐 집단 학살된 것으로 보인다.

진주시 명석면 관지리, 용산리, 우수리와 문산읍 상문리,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 등이 진주지역 민간인 집단학살지다. 이번 진주지역 유해 발굴은 2009년 1기 진실화해위에 이어 14년 만에 다시 이루어지게 되었다.

삭평마을 산 매장 추정지에는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피학살자 50여명이 묻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동방문화재연구원은 23일부터 발굴 작업에 들어간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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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진주유족회는 22일 오후 진주 명석면사무소 강당에서 명석면 관지리 삭평마을 산에 있는 유해 매장지 발굴에 앞서 개토제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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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관지리, #진실화해위, #진주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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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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