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 스포츠에서는 팬들에게 약체라는 이미지가 박히는 것만큼 괴롭고 힘든 일도 드물다. 물론 협회나 연맹에서는 리그의 균형적인 발전을 위해 성적이 안 좋은 팀에게 다음 해 신인 우선지명권 같은 혜택을 주지만 대형 신인과 입단계약을 체결하려면 더 많은 계약금을 써야 할 때가 적지 않다. 이는 FA시장에서 대어급 선수들을 영입할 때도 크게 다르지 않고 그나마 약 팀으로의 이적을 꺼리는 선수들도 적지 않다.

KBO리그에서는 한화 이글스가 1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대표적인 약체로 낙인 찍혀 있다. 실제로 한화는 2008년부터 작년까지 최근 15년 동안 가을야구에 진출한 시즌이 단 한 번(2018년) 밖에 없었다. 그리고 같은 기간 무려 8번이나 최하위에 머물렀고 2020년부터 작년까지는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다. 야구팬들이 한화를 '만년꼴찌'라고 불러도 할 말이 없는 성적이었다.

작년 시즌이 끝나고 정민철 단장(MBC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이 물러나고 손혁 단장이 새로 부임한 한화는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의 계약 마지막 시즌을 맞아 외부 FA 3명을 영입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단행했다. KBO리그 역사에서 오직 롯데 자이언츠(2001~2004년)만 기록했던 4년 연속 최하위는 절대 할 수 없다는 의지가 담긴 투자였다. 과연 한화는 올 시즌 길었던 암흑기를 벗어나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까.

[투수] 후보들은 많은데 확실한 카드는?
 
 2023 시즌 한화 이글스 예상라인업과 투수진

2023 시즌 한화 이글스 예상라인업과 투수진 ⓒ 양형석

 
KBO리그는 대부분의 구단이 외국인 투수에게 '선발 원투펀치'를 맡길 정도로 외국인 투수에 대한 의존이 큰 리그다. 물론 이는 매년 한국야구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지만 외국인 투수의 활약이 팀 성적과 직결되기 때문에 구단 입장에서는 언제나 외국인 투수 영입에 큰 공을 들일 수밖에 없다. 올 시즌 외국인 원투펀치의 활약은 작년 4명의 외국인 투수가 도합 8승을 올리는데 그쳤던 한화에게도 대단히 절실하다.

한화는 작년 13경기에서 5번의 퀄리티스타트를 비롯해 5승4패 평균자책점3.72를 기록했던 펠릭스 페냐와 총액 85만 달러에 재계약했다. 그리고 작년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활약했던 우완 버치 스미스를 총액 100만 달러에 영입하며 외국인 원투펀치를 구성했다. 외국인 투수의 부진과 중도교체가 연례행사였던 한화 입장에서는 페냐와 스미스가 건강하게 시즌을 완주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국내 선발 투수 중에는 3년 연속 꾸준한 성적을 올린 김민우를 주축으로 2년 차 문동주와 작년 데뷔 후 최고의 성적(7승8패3.55)을 올렸던 장민재, 이적생 한승혁, 유망주 남지민 등 후보군이 매우 다양하다. 특히 수베로 감독과 한화팬들은 시범경기부터 시속 157km의 강속구를 뿌린 '특급 유망주' 문동주의 성장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문동주가 풀타임 선발로 활약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한다면 한화 마운드의 미래는 매우 밝아진다.

불펜 역시 양적으로는 결코 부족하지 않다. 작년 팀이 힘든 상황에도 마무리 역할을 맡아준 사이드암 강재민과 김범수, 박상원, 윤산흠, 정우람, 장시환 등 베테랑 선수와 젊은 선수들이 고루 분포돼 있다. 여기에 선발경쟁에서 탈락한 선수들이 불펜에 힘을 보태고 시속 155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보유한 '슈퍼루키' 김서현이 첫 시즌부터 1군 무대에 잘 적응한다면 한화의 불펜은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다만 상대의 주축 투수와 맞대결을 벌일 수 있는 토종 에이스는 물론이고 승부처에서 믿고 내보낼 수 있는 확실한 필승카드가 없다는 점은 올해도 한화 마운드의 어쩔 수 없는 약점으로 지적되는 부분이다. 만약 올 시즌에도 한화 마운드의 많은 유망주들이 가능성만 보여주다가 시즌을 끝낸다면 한화가 야심차게 영입했던 수베로 감독은 '증명하지 못한 3년'을 보낸 채 계약기간을 초라하게 마무리할 수밖에 없다. 

[타선] 오그레디-채은성-노시환의 중심타선 구축
 
 임기 2년 차 시즌을 치르고 있는 한화 수베로 감독

임기 2년 차 시즌을 치르고 있는 한화 수베로 감독 ⓒ 한화이글스

 
한화는 작년 시즌 팀 타율(.245)과 팀 홈런(88개), 팀 득점(564점) 부문에서 모두 10개 구단 중 최하위에 머물렀다. 따라서 강타자 영입은 스토브리그 기간 동안 한화의 우선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고 한화는 6년 총액 90억 원이라는 거액을 투자해 작년까지 통산타율 .297 96홈런595타점을 기록한 강타자 채은성을 영입했다. 작년 LG 트윈스에서 1루수로 활약했던 채은성은 올해 한화에서 중심타선을 맡으며 우익수와 지명타자를 오갈 전망이다.

작년 타율 .289 166안타12홈런43타점88득점19도루를 기록했던 팀 내 최고타자 마이크 터크먼과의 재계약을 포기한 한화는 새 외국인 선수로 작년 일본 프로야구에서 15홈런을 기록했던 브라이언 오그레디를 총액 90만 달러에 영입했다. 오그레디는 작년 한화의 최대 약점이었던 장타력 부재를 해결해줄 적임자로 시범경기에서 20일까지 2홈런7타점을 기록하며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2021년 18홈런84타점이었던 성적이 작년 6홈런59타점으로 급락했던 노시환도 올 시즌을 통해 명예회복을 노리고 있다(그래도 타율은 .작년 281로 데뷔 후 최고 타율을 기록했다). 노시환이 작년 또는 그 이상의 타율을 기록하고 2021년 수준의 장타력을 회복하면서 풀타임 3루수로 활약한다면 외국인 선수 오그레디, FA 채은성, 작년 16홈런으로 신인왕 후보에 올랐던 김인환과 함께 한화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중심타선을 구축할 수 있다.

이제는 어느덧 한화의 간판스타 중 한 명이 된 2루수 정은원이 테이블 세터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 유력한 가운데 정은원과 짝을 이뤄 밥상을 차릴 선수로 누가 낙점될지도 한화팬들의 관심거리다. 허슬플레이가 돋보이는 '노토바이' 노수광과 통산타율 .307를 자랑하는 이적생 이명기가 유력후보로 꼽히는 가운데 내야와 외야를 두루 오갈 수 있는 루키 문현빈이 테이블세터 후보의 다크호스로 급부상했다.

다만 한화의 대체불가 유격수 자원이었던 하주석이 작년11월 음주운전 단속에 적발되면서 올 시즌 70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은 것은 한화에게 커다란 악재다. 한화는 하주석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베테랑 내야수 오선진을 계약기간 1+1년 총액 4억 원에 영입했고 작년 가능성을 보였던 신예 박정현의 성장에도 기대를 걸고 있다. 하지만 풀타임 주전 경험이 부족한 이 선수들이 주전 유격수였던 하주석의 공백을 잘 메울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주목할 선수] 이태양의 작년은 '실력'이었을까

스포츠에서는 'FA로이드'라는 말이 있다. FA와 금지약물 스테로이드의 합성어로 FA자격을 앞둔 시즌에 특정 선수의 성적이 갑자기 좋아질 때 쓰는 표현이다. 당연히 FA를 앞두고 성적이 좋아진 선수는 몸값이 뛰는 경우가 많지만 그 선수의 진정한 가치는 FA계약을 체결하고 첫 시즌의 성적까지 확인해야 제대로 알 수 있다. FA계약을 맺으며 3년 만에 한화로 '금의환향'한 이태양의 올 시즌 성적이 중요한 이유다.

2010년 한화 입단 후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지만 시즌마다 기복이 심했던 이태양은 2020년 6월 트레이드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다. 그리고 이태양은 팀을 옮긴 지 3년째가 되던 작년 시즌 30경기에 등판해 8승3패1홀드3.62라는 준수한 성적으로 SSG랜더스의 통합우승에 크게 기여했다. 특히 17번의 선발등판에서 9번의 퀄리티스타트를 기록할 정도로 안정된 투구가 돋보였다.

작년 시즌이 끝나고 FA자격을 얻은 이태양은 작년 11월 4년 총액25억 원의 조건에 자신을 트레이드했던 한화로 컴백했다. 계약금 8억 원에 연봉 총액 17억 원으로 옵션이 전혀 걸려 있지 않은 '전액 보장 계약'이다. 이는 그만큼 한화가 SSG 이적 후 기량이 향상된 이태양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는 뜻이다. 이로써 이태양은 트레이드 상대였던 노수광, 순천효천고 1년 선배인 채은성과 같은 팀에서 뛰게 됐다.

SSG시절에 보여준 것처럼 이태양의 최대강점은 선발과 불펜이 모두 가능하다는 점이다. 현재는 한화의 필승조가 확실히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범경기에서 불펜으로 등판하고 있지만 개막 후 선발진이 흔들린다면 얼마든지 선발투수로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이태양이 SSG에서 활약했던 작년 시즌 만큼 올해도 견고하게 한화의 마운드를 지킨다면 이태양의 작년 'FA로이드'는 우연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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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개막특집 10개 구단 전력분석 한화 이글스 채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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