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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봉분이 유실됐거나 남아 있더라도 볕이 들지 않아 이끼가 거북이 등딱지처럼 두껍게 덮여 있다. 교도소 무연고 묘지임을 알리는 콘크리트 표식이 없다면 묘지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대부분 봉분이 유실됐거나 남아 있더라도 볕이 들지 않아 이끼가 거북이 등딱지처럼 두껍게 덮여 있다. 교도소 무연고 묘지임을 알리는 콘크리트 표식이 없다면 묘지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렵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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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교도소가 복역 도중 극악한 고문으로 희생된 한 무연고자의 묘지를 관리상 어려움을 이유로 비공개하고 있어 논란이다.

전남의 한 역사 현장답사 단체는 이달 초 대전교도소 측에 의문사 피해자 고 박융서씨의 묘지 위치를 알려달라고 요청했다. 이 단체는 묘역을 답사하며 역사를 기록하고 추모하는 주로 하는 역사 문화단체다.

대전교도소 측은 대전추모공원 내에 무연고자 묘역을 따로 조성했지만, 유독 박씨의 묘소에 대해서만 별도의 장소에 따로 조성해 관리하고 있다.

박융서씨는 지난 1973년부터 시작된 박정희 유신정권의 교도소 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사망했다. 지난 2003년 대통령 직속 기관인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박씨는 교도소 내에 구성된 전향 공작 전담반에 의해 고문과 폭행을 당했다. 당시 전담반에는 폭력 사범을 비롯한 일반 재소자들도 참여했다.

비전향장기수인 박씨도 교도관에게 전향을 강요당했다. 전담반에 의해 격리 사동으로 옮겨진 후에는 온몸을 발로 차이고 바늘에 찔리는 고문을 당했다. 견디다 못한 박씨는 이듬해인 1974년 7월 20일 교도소 창살의 유리 파편으로 스스로 동·정맥을 끊어 사망했다.

박씨는 고문을 당한 후 옆방에 수감된 좌익수형자 양아무개씨에게 "북쪽에 모든 가족이 살고 있어 전향할 수 없다. 바늘로 온몸이 찔렸다. 정말 이렇게 살아있으면 무엇하나. 교도소의 만행이 너무 심하다"라고 말한 후 벽에 '전향 공작 강요 말라'라는 혈서를 유서로 남겼다.

대전교도소 측과 중앙정보부는 박씨가 전향공작원의 폭행을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이 사실을 숨기고 '단순 자살'로 처리했다. 박씨의 부인과 자녀 등 가족들이 모두 북쪽에 있어 무연고자로 분류됐다.

의문사진상조사위는 2004년 교도소 내 사상전향 공작 과정에서 숨진 박씨 등 비전향 장기수 등에 대해 '부당한 공권력에 저항하다 희생됐다'며 '의문사를 인정한다'고 밝혔다.

"추모 가로막는 대전교도소, 명백한 월권행위"

해당 역사문화단체는 박씨의 묘지를 찾아 조촐한 추모 의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하지만 대전교도소 측은 회신을 통해 "무연고지 묘의 위치를 공개할 경우 묘지 관리 등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있다"며 비공개했다.

대전교도소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의 '직무수행을 곤란하게 할 우려가 뭐냐'는 질문에 "묘지 훼손 또는 주민 민원이 제기될 우려가 있다"고 답했다. '다른 교도소나 유관기관에서 이처럼 묘지 위치를 비공개하는 사례가 있냐'는 물음에는 "잘 모르겠다"고 답변했다.

이 단체의 김영승 대표는 "박융서씨는 대전교도소 측의 폭행과 고문으로 세상을 등졌고 늦게나마 국가가 의문사를 인정했다"며 "그런데도 대전교도소 측은 묘지를 비밀 관리하며 추모마저 못하게 가로막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오랫동안 묘소를 돌며 활동을 해 왔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며 "명백한 월권행위로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병구 대전 '양심과 나무' 사무처장은 "대전교도소 측이 고문으로 사람을 죽이고도 이해할 수 없는 이유를 들어 추모를 위한 묘지 위치마저 비공개하는 것은 더 큰 죄를 짓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역 시민사회와 함께 대전교도소 측의 어이없는 행태를 끝까지 따지겠다"고 강조했다.

[관련 기사] 
사라진 봉분... 대전교도소 무연고자묘지 관리 허술 논란 https://omn.kr/22v24

태그:#대전교도소, #고 박융서, #무연고, #전향공작반, #묘지 비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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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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