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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0일 아침 9시, 환경훼손 등의 논란으로 세 번이나 중단됐던 제주 비자림로 공사를 위한 벌목이 시작됐다는 제보를 받았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비자림로 현장에 도착했다. 이미 포크레인 소리와 전기톱 소리가 굉음을 내며 벌목을 진행하고 있었고 주변에는 쓰러진 나무들이 비릿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 2022년 12월 20일 비자림로 벌목 영상 .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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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된 비자림로 공사에 대해 내가 활동하고 있는 '비자림로 시민모니터링단(아래 시민모니터링단)'은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아래 영산강청)과 협의한 환경저감대책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시민모니터링단은 영산강청에게 제주도가 제출한 '비자림로(대천~송당) 확포장공사 협의내용 및 환경저감대책 이행계획'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철저한 관리를 요청하는 한편,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 대한 설계도면과 식재 계획평면도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영산강청은 '제3자(제주특별자치도) 의견 청취 결과 진행 중인 소송과 관련된 직접적인 정보로서 비공개 결정한다'고 답변했다.  

숱한 논란 낳았던 비자림로 공사 

2018년부터 비자림로 공사 현장을 모니터링해왔던 시민모니터링단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1. 제주도는 수목 훼손 최소화를 위해 22m로 계획된 도로폭을 16.5m로 축소하겠다는 내용으로 협의했지만 모니터링 결과 2018년 계획된 경계에 따라 벌목을 진행했음.

2. 제주도가 영산강유역환경청에 제출한 '환경영향평가 의견 방안 조경식재 모식도'에 따르면 3구간의 남은 수림은 보존하는 것으로 나와 있지만 3구간 미벌채 구역의 모든 수목을 벌채했음.


세 번의 공사 중단 과정을 거쳐 가까스로 공사가 시작된 비자림로 공사는 소규모환경영향평가서 부실작성, 10여 종이 넘는 멸종위기종들의 서식,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된 도로의 경관 훼손, 도로 확장을 위한 수천 그루의 수목 훼손, 저감방안 협의 이행 전 공사 재개로 인한 과태료 처분 등 숱한 논란을 낳았다.

재개와 중단이 반복되면서 제주도는 2022년 1월 12일 영산강유역환경청에 '비자림로(대천~송당) 확포장공사 협의내용 및 환경저감대책 이행계획서'를 제출했다. 

환경저감대책은 주로 멸종위기종 보존, 수목 훼손 최소화, 동물로드킬 방지 등의 방향으로 세워졌고 그 가운데 수목 훼손과 관련된 내용을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오름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차도폭 축소(22m→16.5m) 등 노선을 재조정해 수림대 원형 보존도록 했고, 불가피하게 삼나무가 훼손되는 구간은 편백나무 등을 식재하여 도로경관이 최소화되도록 보완설계에 반영했음.

- 수목 훼손 최소화를 위해 차도폭 축소 등으로 인해 팔색조 대체서식지 조성 불필요.


즉 수림대의 원형 보존을 위해 차도폭을 축소했다는 것이다. 기존에 배포됐던 자료들과 위 이행계획서를 통해 비자림로 도로 계획은 다음과 같이 변경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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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자림로 공사 계획의 변화 .
ⓒ 김순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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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를 거치면서 비자림로 도로폭은 24m에서 22m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16.5m로 축소됐고, 2구간 역시 1차 수정안에 포함돼 큰 비판을 샀던 8m 폭의 중앙분리대 계획은 취소됐다. 동물 로드킬, 수목 훼손 등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도로폭을 줄였을 때 가장 효과가 크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제주도는 당시 도로 계획 24m에 맞춰 부지를 구입하고 나무를 벌목했다. 당시에도 시민들은 모니터링을 통해서 도로 계획보다 지나치게 넓은 폭으로 벌목을 진행한다며 공사 편의로 생태적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혀 기울이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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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14일 비자림로 벌목현장에서 진행된 시민합창 .
ⓒ @_jeju_l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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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림로 벌목 소식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자 2022년 12월 28일 시민들이 비자림로 공사현장에 모여 피켓팅을 진행했다. 2023년 1월 14일에는 잘려나간 나무들을 애도하는 시민합창이 진행됐다. 현장을 직접 확인한 시민들 중 김선씨는 "도로폭이 대폭 축소됐다고 하는데 왜 이리 나무들을 많이 베어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18년 비자림로 벌목이 24m로 계획된 도로계획에 맞춰 진행됐으니 2022년 벌목은 당시에 비해 8m 정도 줄어들었을 것으로 계산되는데 거의 동일한 폭으로 벌목이 된 것을 보고 많은 이들이 비슷한 의문을 표했다.

필자는 지난 3월 12일 비자림로 현장에 가서 직접 줄자로 2022년 12월 말에 진행된 벌목 폭을 측정했다. 확인된 벌목 폭은 20m였다. 기존 도로 폭 10m를 더하면 30m에 달한다. 길어깨(갓길)를 포함 16.5m의 도로 공사 치고는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시민모니터링단 "벌목, 수정안에 비해 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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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년 1월20일 드론으로 촬영한 벌목 현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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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제주도가 2022년 2월 7일 영산강청에 송부한 '비자림로 확포장공사 환경영향 저감대책 이행계획(실시설계) 조치결과 제출' 공문의 첨부자료를 살펴보면 3구간의 기존 수림은 보존하기로 돼 있다.

하지만 현재 송당 방향 3구간의 우측은 기존 삼나무 10그루 정도를 제외하고 모조리 벌목된 상황이다. 시민모니터링단은 민원 이후 토지 경계까지 모조리 베어지던 삼나무들 중 10그루 정도가 간신히 살아남은 것으로 보고 있다.
 
 2023년 1월20일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캡쳐.
  2023년 1월20일 드론으로 촬영한 영상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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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경된 3구간의 조경식재 모식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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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경식재모식도에 기존 수림 유지하기로 표시된 구역(2022년 12월 28일 촬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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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5월 비자림로에 멸종위기종 서식을 처음 확인한 것은 '시민모니터링단'이었다. 이후 제주도와 영산강청 사이에 수많은 공문이 오가며 간신히 저감방안이 협의됐다. 하지만 제주도와 영산강청은 그에 대한 대략적인 내용만 공개하고 있을 뿐 설계도면은 공개하고 있지 않다.

시민모니터링단은 광주에 있는 영산강청이 제주도가 협의내용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제대로 관리하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시민모니터링단은 현장을 자주 오고가며 적극적으로 협의내용 이행 여부를 모니터링하려 하지만 구체적인 설계도면을 구할 수 없다. 제주도는 지속적으로 변경된 설계도면에 대한 정보공개를 거부하고 있다.

제주도 측 "변수 때문에 도면 공개 불가... 공사, 지형 따라 달라져"

지난 13일 제주도 건설과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설계도면 공개를 왜 거부하는지 물었다. 담당자는 "공사 중 변수들이 발생해서 공사 계획이 조금씩 변경될 수 있다. 설계도면을 공개하면 그대로 지켜야 하는데 그러면 도로 공사는 엉망이 된다"고 답변했다. 

'도로폭이 16.5m로 축소됐지만 현장에선 축소됐다는 인상을 받지 못한다'고 하자 이 관계자는 "16.5m라고 하지만 측구(우수의 처리를 위하여 설치하는 배수시설)도 만들어야 하기에 딱 16.5m에 맞춰 공사가 이뤄지지는 않는다"라고 답했다.

그럼 측구로 인해 어느 정도 폭이 더 필요한지 물었다. 이 관계자는 "지형에 따라 달라서 정확히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측구 폭이 대부분 1m 이내인 경우가 많은데 측구 폭을 벌목 범위에 더한다 해도 벌목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게 시민모니터링단의 지적이다. 

기존 수림을 유지하기로 한 계획은 왜 그대로 이행되지 않았을까. 그는 "그 부분을 그대로 보존할 것이면 원형보전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높기도 낮기도 한 토지 상태가 예측 불가하기에 어느 정도 기존 수림을 유지할지 미리 정할 수 없다. 최대한 저감대책을 이행하려 했다"는 답변을 내놨다.

영산강청 담당자는 전화 통화에서 '현장 확인 결과 문제 없다'고 답했다. 제주에 영산강청 제주사무소가 있으니 시민모니터링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다시 현장 확인을 해줄 수 있는지 묻자 담당자는 확답을 주지 않았다. 

2019년~2021년 3년에 걸쳐 비자림로 공사구간에서 총 7회 식물조사를 수행한 한국양치식물연구회(이강협, 김진숙)는 2022년 1월 발간한 보고서에서 '조사구간의 양치식물 및 식물상의 다양성은 제주도 내의 다른 지역에 비해 단위면적당 생물다양성, 특히 양치식물의 다양성이 매우 높게 확인'되며 '양치식물은 그늘진 환경과 공중습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식물종으로 현재 삼나무림이 벌채된 구간은 직사광선과 건조한 환경으로의 변화로 인해 양치식물의 서식환경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가중시키고 있다'고 보고한다.

따라서 '더 이상의 도로확장은 양치식물 및 특산식물과 희귀식물의 생태계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끼칠 것으로 판단'되기에 '삼나무 조림지 및 천미천 주변의 벌채구간의 원상복구' 및 '추가적인 공사 중단'을 권고하고 있다.

하지만 네 번째로 재개된 공사에서 제주도는 수많은 삼나무를 다시 벌목했고 그 아래 그늘진 환경에서 서식하던 양치식물들 역시 잡석들에 깔려 사라져버렸다. 시민모니터링단이 사업시행자인 제주도와 환경영향평가 협의자인 영산강유역환경청 모두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비자림로를 훼손하는 데 동조하고 있다고 평가하는 이유다. 

태그:#비자림로, #환경영향평가, #제주도, #환경청, #삼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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