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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아니 아니 조금만 더 위로, 위로, 다시 아래로, 이젠 뒤로. 어, 됐어, 됐어. 이젠 천천히 내려오면서 옆으로 좀만 더 더."

엄마랑 영상통화 하면서 하는 말. '위아래'. 주문에 맞춰 엄마가 우편물을 움직인다. 카메라를 향해 잘 보이게끔. 이리저리 각을 맞춘다. 지난번엔 서툴더니 이번엔 잘하신다. 센스가 생겼나 보다.

엄마는 한글을 잘 모른다. 가끔 중요한 우편물이 올 때는 이렇게 영상통화를 한다. 나는 우편물을 훑어 내용을 확인하며 엄마에게 전달한다. 이번 우편물은 도시가스가 들어온다는 내용. 3월 11일까지 결정해 달라는 안내장이다.

엄마의 삶은 그 자체로 기적
 
영상통화 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영상통화 하는 모습(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습니다)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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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싫다던 엄마와 이렇게 영상통화를 활용하다니. 이런 날이 올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가끔은 화분에 꽃 피운 걸 보여드리기도 한다. "폴더보다 낫지요?"라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이신다.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며칠 전엔 카톡이 뭐냐고도 물어오셨다. 서울서 놀러 온 친구가 엄마 휴대폰엔 카톡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점점 스마트폰에 재미를 들였나 보다. 그런데 한글을 몰라 화가 난다고 했다. 올 것이 왔다.
 
엄마는 학교에서 글을 배운 적이 없다. 학교를 다니지도 못했다. 장녀로 태어나 죽도록 일만 하다 18세에 시집왔다. 그리고 지금이다. 장사는 그저 본심 천심으로 하셨다. 다행히 굶지 않을 정도로 살았다. 가나다는 어깨너머로 배웠다. 장부책은 그림글씨고, 영수증은 내가 써줬다.

틈틈이 엄마 이름 석 자와 중요한 품목 정도를 알려드렸다. 삐뚤빼뚤 칸을 채우며 한글 연습을 했다. 필요한 글씨만 익힌 셈이다. 그것도 받침이 있는 글은 여전히 어렵고 힘들다. 살아온 자체가 기적일 때가 많다.

엄마는 가끔 말씀하신다. "내가 글만 배웠어도 유지가 됐을 텐데." 그럴 때마다 대꾸한다. "응 엄마 지금도 유지야. 지역 행사 초대장 받는 사람은 엄마밖에 없을걸. 아무개 의원보다도 엄마가 더 많이 후원했거든." 대답은 그렇게 해도 글 모르는 그 답답함을 어찌 다 알 수 있을까. 그저 다른 것을 생각하며 사는 수밖에.

십 년 전쯤, 엄마를 대신해 지역행사에 봉투를 전달한 적이 있다. 접수 담당자라 해봐야 다 아는 얼굴. 담당자는 나에게 "엄만, 이제 이런 거 안 해도 되는데... 엄마한테 후원금 내지 않아도 된다고 해"라고 했다. 엄마 사정을 고려해 연세도 있으니 봐주겠단 뜻처럼 들렸다. 그러나 엄마는 내 말을 귓등으로 들었는지 계속 후원한다. 지금까지도. 벌이가 있는 한은 계속하실 생각인가 보다. 금액이라도 좀 줄였으면 좋겠는데 조금 하면 안 하느니만 못한 경조사 부조금처럼 돼버리니 이래저래 지출이 많은 셈이다.
  
한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장사하냐는 사람들이 있다. 한글 몰라도 사는 것처럼, 한글 몰라도 장사는 한다. 쓰기, 읽기만 안 될 뿐이다. 정확히는, 정확히 쓰고 읽지를 못하는 것뿐. 엄마만 알아보는 문체로 장부를 기록한다.

간혹 그걸 약점 삼아 외상 한 적 없다며 우기는 사람도 있다. 글 모른다며 비웃던 사람도 있다. 한글 몰라 온갖 수모 견디며 살아온 세월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팽개쳤을 법도 하다.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고 지금까지 오셨다. 평생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적이 없다. 자식들에게 고통을 나눠지게 하지도 않았다. 우수한 '한글'처럼 그렇게 뿌리 깊은 나무로 살아오셨다.

한글 아는 나보다 더 나은 엄마의 지혜

그런 단단하신 엄마가 요즘 한글 때문에 속상해한다. 한글만 알면 노래도 잘하고 스마트폰도 잘 만질 텐데 하면서. 그 힘든 시절에도 한글 타령 안 했던 엄마가. 스마트폰 때문에 자신을 탓한다. 한글 몰라 부끄러웠을 법도 한데 당당히 장부책을 펼쳤고, 삐뚤삐뚤 영수증 칸을 채워나가도 쫄지 않으셨던 분이다. 

엄마의 틀린 글자를 정정해 주며 하하호호하던 때가 이젠 그리운 시간으로 되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애증의 관계 한글. 그 옛날 시집오기 전 연애편지를 읽지 못해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애잔하고 애가 탄다.  

"엄마, 노래는 한글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모시 아줌마도 한글 모르는데 노래 잘 하잖아요. 노래는 음정 박자예요. 괜히 한글 핑계 대지 마세요. 엄마가 노래 못해 우리가 다 음치잖아." 아무 말씀 없으시다. "스마트폰도 한글이랑 아무 상관 없어요. 새로 나온 거잖아요. 한글 배우듯 스마트폰도 배우는 거라고요. 엄마가 나이가 들어서 그런 거지 한글이랑은 무관합니다. 카톡은 다음에 가서 알려드릴게요." 위로랍시고 아무 말로 마무리한다.

한글 모르는 게 죄는 아닐 텐데 죄인처럼 움츠려 계신다. 그 마음을 다 알 순 없다. 그 상황이 돼보지 않았으니 감조차 잡지 못한다. 한글을 모른다는 건 정말 어떤 건지 가늠조차 안 된다. 외국 가서 말 안 통하는 것을 상상해 봐도 다른 맥락이다. 한글을 모르면 지금 이렇게 글을 쓸 수 없다. 좋아하는 책도 읽을 수 없다. 불편한 걸 떠나 감정을 느낄 수가 없다. 글이 주는 온기를. 연애편지의 온기를 느낄 수 없었던 그날의 엄마가 애처롭다.
    
그럼에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괜찮다'는 말뿐. 별거 아닌 거처럼 허허 웃는다. 사실, 엄마는 한글만 잘 모를 뿐 다른 것들은 기막히게 습득하신다. 한 개 알려드리면 두 개 세 개를 아신다. 영상통화로 우편물 확인하는 것도 엄마가 제안하신 거다. 나는 생각조차 못 했다. 조만간 집에 가겠다고만 했다. 그런 나에게 "카메라로 보면 되잖아" 하길래 CCTV를 떠올렸다. 멍청하게도. 천장에 붙은 CCTV 쪽을 향해 우편물을 보이라고만 했다. 보일 리가 있나.

엄마는 "휴대폰에 있는 카메라로 보면 안 되나"라고 했다. 휴대폰은 전화 용도로만 쓰는 분인데. 나도 미처 생각 못 한 카메라를 생각해 냈다는 게 놀라웠다. 늘 그렇다. 한글 아는 나보다 삶의 지혜가 많다.        

더 이상, 엄마가 한글로 속상해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바란다. 있더라도 빨리 훌훌 털어내길. 오래가지 않기를. 바쁜 삶 속에 그 정도쯤은 별일 아닌 거처럼 일상에 묻히길 소망한다.

내 걱정은 기우다. 엄마는 역시 엄마다. 언제 그랬냐는 듯 오늘도 '카메라 한번 걸어봐라' 하신다. 활기차다. 한 번도 속상한 적 없었던 거처럼. 우편물을 요리조리 비추신다. 열심히. 스스로 대견하신 거처럼. 가끔 우편물 사이로 엄마 얼굴이 보일 때가 있다. '잘해야지' 하는 진지한 표정의 엄마. 그런 모습을 볼 때면 괜히 용기가 난다. 세상 사는 것에.

태그:#한글, #영상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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