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20일 오후 서울 강남구 SPC 본사 앞에서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이 SPC그룹의 계열사인 SPL평택 공장에서 끼임사고로 사망한 노동자의 추모 행사를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2022년 10월 15일. 20대 여성 노동자가 근무 중 사망했다. 당일 새벽 6시 20분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SPC그룹 계열 SPL제빵공장에서 작업하던 중 소스 배합기에 빨려 들어가 끼임 사고로 사망한 것이다. 그런데 이 공장이 얼마전 '재가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이 알려졌다.

지난해 사고 당시 SPC그룹 계열사인 파리바게뜨는 노동자들의 휴식시간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고 휴가도 제때 지급하지 않는 등 약속을 지키지 않는 회사라는 인식이 퍼져가던 때였다. 건강하게, 안전하게 일하고자 목소리 내는 노동자들을 외려 탄압하는 곳이라는 비판도 있었다. 이에 '노동자의 휴식권, 모성권 보장' 등을 요구하며 2022년 8월부터 각 파리바게뜨 매장 앞에서 동시다발 1인시위를 하는 등 대응행동이 진행 중이기도 했다.

노동자가 위험한 곳인 파리바게뜨 빵을 먹지 말자는 시민들의 불매 운동이 한창이었던 이 즈음, 제빵공장의 사망 사고가 공론화되면서 온라인상 불매 운동은 더 거세어졌다(관련 기사: 노조 "SPL 사망 사고 후에야 '센서 설치' 공지"... 온라인 'SPC 불매운동' 확산).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해 8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SPC그룹 매장인 패션5앞에서 ‘#제빵기사_유산율_50% #모성보호_법도_안지키는 SPC 파리바게뜨는 모성권을 보장하라’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그는 "'정도 경영'을 한다면서 직원 권리를 침해하고 노조를 탄압 중인 상황은 '거꾸로'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물구나무를 섰다"고 했다.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 권영국 변호사가 지난해 8월 25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의 SPC그룹 매장인 패션5앞에서 ‘#제빵기사_유산율_50% #모성보호_법도_안지키는 SPC 파리바게뜨는 모성권을 보장하라’가 적힌 피켓을 들고 물구나무 서기를 한 채 1인 시위를 벌이는 모습. 그는 "'정도 경영'을 한다면서 직원 권리를 침해하고 노조를 탄압 중인 상황은 '거꾸로'다, 그걸 보여주기 위해 물구나무를 섰다"고 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김용균' 4년 뒤 비슷한 이유의 죽음... 무엇이 달라졌는가

위험한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여러 조건 중 중요한 존재가 '동료'다. 

통상 끼임 사고 가능성이 많은 작업공정에는 덮개나 비상 멈춤장치 등 방호장치가 필수로 있어야 한다.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고 김용균 노동자의 사망에도 방호장치의 부재가 있었다. 당시에도 당시에도 컨베이어 벨트에는 방호울(방호울타리)이 설치 안 돼 있었고, 점검구에 달려있던 덮개는 떼어버린 상태였다. '풀코드 스위치'라는 비상 멈춤장치가 있긴 했지만, 사고자가 당길 수 없는 위치에 있어서 함께 일하는 다른 작업자가 없으면 무용지물이었다. 노조의 대표적인 요구들 중 '2인1조 작업환경'이 있는 이유는 그래서다.

그러나 이 4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시간과 장소만 달라진 채 SPL제빵공장에서도 노동자 끼임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사고가 난 당시 SPL제빵공장 작업장 사진을 보면, 소스 배합기 속 돌아가는 날개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원래 기계 자체는 덮개가 있고 덮개를 열면 자동멈춤 되도록 만들어져 있지만, 더 많은 물량을 만들어내기 위해 덮개를 없앤 것이다. 비상정지버튼은 사고당사자는 누를 수 없는 위치에 있었고, SPL작업공정은 3인 1조가 돼야 했지만 2인 1조조차 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현장의 '휴대폰 반입 금지' 지침 또한 사고 뒤 빠른 대응을 가로막았다.

사고 직후인 10월 20일,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의원들이 평택 소재 공장에 방문해 현장점검을 실시했다. 이때 강동석 SPL 대표이사는 의원들 질의에 "한 작업을 둘이서 동시에 같이 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하나의 작업을 2명이 나눠서 한다는 개념으로 (2인 1조를)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해, 허술한 안전인식을 그대로 드러내기도 했다. 
  
방호장치만 제대로 있었다면 노동자는 죽지 않을 수 있었다. 인원배치만 제대로 되었다면, 이윤은 조금 줄었어도 노동자는 안전했을 것이다. 물량을 어떻게든 생산하도록 압박하지 않았다면 결과는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이 가장 기초적인 안전장치를 작업속도와 바꾸고, 이윤과 비용을 최우선으로 두면서 그 과정에서 노동자들 목숨이 스러지고 있다.

'공장 재가동한다'는 사측... 근본 개선책 요구에는 왜 침묵하나 
 
지난해 10월 21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 평택시 소재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21일 허영인 SPC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구 SPC그룹 사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경기 평택시 소재 SPL 제빵공장에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해 대국민 사과 및 재발방지 대책을 발표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SPL평택공장 사고 이후 SPC 허영인 회장은 외부전문기관을 통해 종합적인 안전관리 개선책을 수립·실행하고, 사외 인사와 현장 직원으로 구성된 '안전경영위원회'를 설치해서 안전 관리감독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이어서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켜 신뢰받는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1천억 원의 안전관리비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사망원인과 책임을 조사하던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2023년 2월 9일과 10일 검찰에 기소의견을 제시했다. 평택경찰서는 SPL 강동석 대표이사와 공장장 등 5명을 업무상과실치사로, 경기고용노동지청은 SPL대표이사가 경영책임자로서 안전확보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결과라며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그러면 이제 빵을 만들어도 되는 것인가. 노동자의 안전을 위한 회사의 노력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현장은 어떻게 달라졌는가. 노동자들은 이제 안전한 작업장으로 변화됐다고 느끼고 있을까. 

SPL그룹 측은 다수노조인 한국노총 측과 주 협의 중이나, 지난 2월 24일 SPL노사협의회엔 소수노조인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도 불렀다. 화섬식품노조 측 관계자에 따르면, 노조는 노동자 안전을 위한 설비 개선, 인력 확충, 근무형태(교대제) 등 근본 개선책을 요구했으나 답변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고 한다. 윤홍식 한국노총 식품노련 SPL노조위원장은 언론인터뷰에서 개선 조치가 이뤄졌다고 밝혔지만, 민주노총 화섬식품노조 SPL지회는 지난해 노동자를 사망으로 몰고 간 위험한 공정에 대한 개선은 없이 여전히 그대로라는 입장이다. 

노사협의회에서 SPL지회는 샌드위치 라인의 재가동을 위해 어떤 내용으로 노동부가 인가를 한 것인지, 재발방지를 위해 설비‧작업공정‧근무형태는 어떻게 달라지는 지 직원들이 알 수 있도록 공식적으로 공개해달라고 했다. 사고 당시 샌드위치라인은 매주 정해진 요일에 시간을 정해서 카톡으로 주말휴일을 선착순으로 정하는 등, 휴일근무는 선택이 아니라 누구든 해야만 하는 '강제노동'이었다. 이런 샌드위치 라인의 강제 휴일근무 개선책이 있는지 노조가 확인했으나, 이 요구에 사측은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사측은 사고가 났던 샌드위치 공정이 과거 재료를 놓던 장소로 옮겨지는 등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이 노동자 안전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인지, 인원 충원은 되는지, 샌드위치 라인에서 일하는 부담을 느끼는 작업자들이 주말근무에서 벗어나도록 어떻게 조치할 것인지 등은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회사는 일단 공장부터 가동하겠다는 식이다.

SPC회장이 약속했던 SPC안전경영위원회는 2023년 1월 18일 고용노동부 기획감독조치를 100% 완료한 현장을 점검했다며, 산업안전과 근로감독 조치를 완료했다고 발표했다. 또 허영인 회장은 대국민사과 때 향후 3년간 총 1000억 원으로 설비개선 700억, 작업환경개선과 안전문화 형성에 200억 원 등을 사용할 예정이라고도 알렸다.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청년하다, 평화나비네트워크, 진보대학생넷, 청년정의당, 청년진보당 등 33개 대학생, 청년단체 회원들이 지난해 10월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SPC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평택 SPL 제빵공장 청년노동자의 산재사고에 대해 책임자 처벌과 윤석열 대통령의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개정 시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사측은 그 구체적 실행 내용에 대해선 노동자들에게는 이야기해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사측이 발표한 '1000억 원'의 안전관리재정은 회사가 알아서 결정하고 알아서 쓰는 식이 되어버렸다. 안전관리 투입 비용은 인원 충원에 쓰여야 하지만, 정작 이 또한 빠져있다. 안전한 시설을 위한 계획을 제대로 세우고 이를 잘 이행하는지 점검하는 과정도 필요한데 여기에서도 노동자의 역할은 거의 없는 구조다.

그뿐인가. 사고 당시 조사에서 '안전교육을 이수했다'는 서명을 하긴 했지만, 사실 실제로는 안전교육을 받지도 않았고 그 매뉴얼도 모른다는 노동자들 증언이 있었다. 한편 근무자들의 야근‧특근 관련해, 회사는 당사자 동의가 있었다고 하지만 그 또한 사측에 의한 '강제된 동의'였다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관행이 이제는 달라졌는지, 실제 현장이 더 안전해졌는지 점검해야하지만 이 또한 확인되지 않고 있다.

사측 조치처럼 이전엔 없던 안전 덮개를 씌우고, 설비의 위치를 바꾼다고 해서 곧바로 안전한 현장이 되는 것은 아니다. 사고의 원인이 단지 덮개만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작업공정 위험성이 어떻게 줄어들 수 있는지 노동자들이 이해하고 의견제시도 할 수 있어야 진짜 변화가 나타난다. 그래야 형식적 안전교육이 없어지고, 바쁘다는 이유로 휴식시간‧안전조치를 뭉개는 기업이 더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 화섬노조 SPL지회 지적처럼, 현장에 제대로 인원이 충원돼야만 2인 1조, 3인 1조로 근무할 수 있어 노동자들이 안전해진다. SPC 허영인 회장이 말했던 "안전관리 강화는 물론, 인간적인 존중과 배려의 문화를 정착"시키겠다는 것은 이런 조치들이 갖춰질 때야 가능한 얘기다. 안전투자비용 사용처에 대한 공개와 점검은 그래서 더욱 필요하다.

사망한 작업현장이 진짜 안전한 곳으로 달라졌다면, 변화는 아마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가장 먼저 느낄 것이다. 그러나 현재 SPC는 얼마나 준비가 돼 있는가. 안타깝게도, 아직 SPC는 맛있는 빵을 만들 준비가 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권미정씨는 김용균재단 사무처장입니다.


태그:#샌드위치 공정, #SPL 산재사망사고, #SPC파리바게뜨, #안전한 일터, #권미정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위해 김용균재단과 함께 합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