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 감독

이승엽 감독 ⓒ 스텔라김

 
레전드, Legend. 어떤 분야에서 길이 남을 기록을 남긴 사람을 우리는 그렇게 부른다.

언제나 소속팀을 살려내곤 했던 '8회의 사나이' 이승엽은 그 주인공이었다. 아직도 너무나 익숙하게 붙이게 되는 '선수'의 생활을 마친 지도 어느새 5년. 야구 해설도 하고, 골프 예능프로그램 출연에 이어 최근에는 <최강야구>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방송인 이승엽'으로 새로운 막을 이어나가는가 싶었는데, 진짜 야구계로 다시 돌아왔다. 첫 감독직을 맡은 것이다. 새로운 길에 들어선 그에게 궁금한 것이 많았다.
 
두산베어스가 전지훈련을 하고 있는 시드니 서쪽 블랙타운 베이스볼 센터(Blacktown Baseball Centre)를 찾았을 때 주말임에도 선수단은 훈련에 한창이었다. 
 
호주는 세 번째 방문이니 인연이 처음은 아닌 셈이다. 1996년 12월, 삼성라이온즈 팀 선수일 당시 브리즈번으로 전지훈련을 왔었고, 2000 시드니 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참가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막 데뷔한 감독'으로서 두산베어스를 이끌고 전지훈련을 와 있다. 시드니에서 이승엽 감독을 만났다.
 
"1월 29일에 도착해서 그다음 날부터 바로 훈련에 들어갔습니다. 3월 7일 귀국인데, 어느새 시간이 이렇게 갔는지 새삼 초조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이승엽 감독은 바로 그런 점이 선수로 뛸 때와 감독이 되었을 때의 다른 감정선이라고 설명한다. 선수 때는 한 달 하고도 더 되는 전지훈련에 들어가면 첫날부터 "언제 시간이 가나" 막막한 기분이었고 시간이 엄청 더디게 갔다고 한다. 그런데 지도자가 되고 보니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고, 주어진 기간 동안 원하는 만큼의 전진을 했는지를 점검하느라 마음이 바쁘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혀 다른 시간을 살게 될 첫 출발이 어째서 아주 오랜 인연이었던 삼성라이온즈가 아닌 두산베어스였을까.
 
"선수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하면서 5년 정도만 쉬고 다시 야구 인생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5년이 되었고, 새로운 앞날을 구상하려던 때에 두산 베어스에서 가장 먼저 프로포즈를 해 주셨습니다. 선수였을 때는 제가 팀을 고를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으로는서는 저를 원하는 곳이 가장 우선에 놓이게 되는거고, 게다가 야구 철학에 있어 공통점이 많다는 점은 저에게 망설임 없는 결정을 하도록 만들었죠. 감사했고, 지금은 커다란 책임감으로 그러나 신나고 재미있게 선수들과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크게 인기를 끌며 떠나갔던 많은 야구 팬들을 다시 불러 모으는 데 큰 역할을 한 <최강야구>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었다.
 
"처음에 선수로 출연하라는 제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안 서더라구요. 다시 몸을 만드는 것도, 전력을 다해 뛰는 것도 자신이 없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똑같은 '이승엽'을 잘 관리하며 유지하는 것 같은데 "예능 프로그램이지만 야구 자체를 장난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확고한 철학이 있다보니 도저히 선수로의 출연이 용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제작진은 그의 출연을 위해 감독직을 권했고 그것은 해 볼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출연이 성사됐다. 그리고 <최강야구>는 40대 연령이 되어도 "야구에 진심"이면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또 일반 중계에서는 도저히 알 수 없을 더그아웃에서 쏟아져나오는 '명언'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웃음과 해학을 줄 수 있는지, 감독이 마운드를 찾아 올라갔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하는 건지 등 야구 팬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주며 '감동'과 '재미'를 다 잡은 프로그램이 될 수 있었다. 

한국 프로야구의 발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최근 여러가지 테크놀로지와 개인방송 등의 발전은 굳이 야구장을 찾지 않아도 손 안에서 핸드폰 화면으로 경기를 관람할 수 있게 만들었죠? 그것도 관객을 감소시키는 데 한 몫을 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희도 어떻게 하면 관객을 더 늘릴까를 당연히 고민해야 겠지요. 경기력 수준을 향상 시켜 화제성을 만들어야 하고, 수준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치에 부응하는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야구장에서의 열기를 함께 호흡한다는 것은 분명 다른 형태의 재미를 여전히 제공한다고 믿습니다. 거기에 좋은 경기를 보여 드리면 다시 야구 축제 열기를 이어갈 수 있겠지요."
 
이승엽 감독은 선수 시절, "최선은 누구나 다 한다"면서 "최고가 되려면 '죽을 만큼' 해야 한다"고 말해왔다. 지금의 자신에게도, 또 자신을 믿고 따라오는 선수들에게도 그 철학은 여전히 이어지는 걸까.
 
"어떻게 보면 제 생활철학인데요, 오늘 할 일은 오늘 안에 마치자는 겁니다. 그리고 마친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내일 할 일 중 얼마를 당겨서 하는 건데요. 예를 들면 오늘 공을 500개 쳐야 한다는 목표를 잡았으면 그건 당연히 다 치고 내일 쳐야 할 5백 개 중 2백 개 정도를 당겨서 오늘 쳐 둡니다. 그럼 내일 300개만 치면 되는 걸까요? 아닙니다. 내일은 또 5백개를 치고 그 다음 날 것도 좀 당겨서 더 칩니다. 이렇게 매일을 보내고 한 달이 되면 그저 매일의 양을 친 사람과는 큰 차이가 나겠지요? 그것이 바로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하는 거죠."
 

그러면서 이승엽 감독은 그런 훈련, 그런 최선이 주는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신감'을 갖게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설득이라면 모든 선수들이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시드니 전지훈련은 아주 만족스러웠습니다. 날씨도 좋았고, 또 예전 선수로 왔던 전지훈련 때의 추억과 그 후의 우승 기억도 되살아나고, 최종 순위 3위로 동메달을 거머쥐었던 시드니 올림픽의 느낌도 되살아나 아주 좋은 기운을 받고 가는 것 같습니다. 이 기운으로 한국 시리즈에서 또 좋은 성적을 내며 감독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게 되겠지요. 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좋은 코칭 스태프들이 함께 해 주니 든든하고 또 최고의 선수들이 잘 따라와 주어 힘이 됩니다."
 
환하게 웃어보이는 이승엽 감독의 얼굴을 보며 선수가 아닌 감독으로도 그의 팬이 될 거라는 확인을 하고 있었다.
 
"훈련 기간 동안 교민들을 위한 사인회 행사를 했는데 정말 반가워해 주시더라고요. 아직은 야구가 비인기 종목인 호주에 사시는 한인들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린 것 같아 그 또한 좋은 추억이 됐습니다. 분에 넘치는 환영을 해 주신 것에도 감사드리며 좋은 경기, 좋은 한국프로야구 문화로 보답하겠습니다."
 
"2023년 2월 25일 토요일. 내가 참 좋아하는 야구 레전드를 만났다. 하루가 빛나 보였던 건 청명한 날씨 때문이 아니었다. 이승엽, 그가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취재수첩을 닫고 돌아서며 일기에 쓸 글귀를 생각했다. 선수로서의 목표를 이루고 지도자로서 최고가 되기 위한 발을 내디딘 이승엽 감독을 위해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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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호주 멜번에서 발행되는 '멜번저널'에도 게재됩니다.
호주시드니 이승엽감독 야구 두산베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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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이민 45 년차. 세상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고 그런 공감을 얻을 수 있는 기사를 찾아 쓰고 싶은 사람. 2021 세계 한인의 날 대통령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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