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딩크' 박항서 감독은 최근 베트남 축구협회의 계약을 종료하고 귀국했다. 박 감독은 5년 4개월간 베트남 축구대표팀을 이끌고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거두며 '베트남의 영원한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박 감독의 축구 인생에서 베트남에서 보낸 5년은 어떤 시간이었고, 베트남 국민들은 박항서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 26일 방송된 SBS 예능 <집사부일체>에서는 박항서 감독이 '사부'로 출연하여 베트남을 떠나기 직전 '마지막 24시간'을 동행했다.
 
양세형, 김동현, 은지원, 이대호, 뱀뱀은 베트남에서 '프리 패스의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박항서 감독이 보내준 고급 차량을 타고 사부의 집으로 이동했다. 박 감독은 집사부 멤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하여 "5년 4개월의 감독직을 내려놓고 내일 한국으로 돌아간다. 베트남에서의 마지막 하루를 여러분과 함께 보내며 좋은 추억을 만들고싶다"며 초대장을 전했다.
 
박항서 감독과의 만남을 앞두고 이대호는 같은 체육인의 입장에서 "언젠가 국가대표 감독이 꿈"이라고 밝히며 "박항서 감독은 정말로 존경하는 분이다. 종목은 다르지만 다른 나라에서 인정 받는다는 게 쉽지 않다"며 존경심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베트남 하노이 한복판에 위치한 최고급 펜트하우스에서 거주하고 있었다. 박 감독의 자택은 펜트하우스에서 로얄층으로 꼽히는 최고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박 감독은 멤버들 각자의 이름과 별명까지 미리 숙지하고 반갑게 맞이해줬다. 현 집사부 멤버들중 유일하게 구면인 양세형은, 5년 만의 재회에서도 변함없는 재롱으로 박 감독을 미소짓게 했다.
 
집안에는 곳곳에 축구로 받은 상패와 표창들을 비롯하여 팬들이 전해준 선물들로 가득했다. 박 감독의 얼굴을 새긴 수제나무 조각상과 실로 엮어만든 초상화 등은, 그가 베트남 국민들로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지 짐작케했다.
 
박 감독이 이끄는 베트남 축구대표팀은 2019년 '동남아의 월드컵'이라고 불리우는 동남아시안컵(AFF컵)을 60년 만에 우승한 바 있다. 당시 박 감독과 베트남 대표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유니폼은 경매에서 무려 10억에 낙찰되었다고.
 
또한 박 감독은 베트남 축구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가주석이 직접 수여한 2, 3급 노동훈장과 베트남 우호 훈장 등을 수상했다. 특히 2급 노동훈장은 베트남에서 외국인으로는 박항서 감독이 사상 최초였다고.
 
박 감독의 자택은 베트남 최고위층 인사들로부 받은 각종 한정판 선물로 가득했다. 전임 베트남 국회의장으로부터는 전 세계에 단 10개 밖에 없다는 명품 보이차 세트, 고급 빈티지 와인, 금으로 만든 골프채 등의 등장에 멤버들을 감탄을 금하지 못했다. 특히 멤버들이 보이차와 와인에 흑심을 드러내자, 당황한 박 감독은 "안 돼"라고 잽싸게 물건들을 회수하며 웃음을 자아냈다.
 
박 감독은 베트남을 이끌고 한국 대표팀과 격돌한 순간을 회상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 4강전에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과 격돌했다. 손흥민-황의조-이승우-황희찬-조현우 등 A대표팀급 초호화 전력을 갖춘 우승팀 한국을 상대로 베트남은 선전했으나 1-3으로 석패했다.
 
박 감독은 "손흥민이 온다니까 베트남 선수들이 이미 주눅이 들어있었다"고 회상했다. 박 감독은 선수들에게 "겁 먹지 마라"고 독려하고 어떻게 대비할지 선수들에게 미리 정보를 줬지만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박 감독은 국제대회에 참가할 때 1인 1개씩 발급받는 ID카드를 수집해놓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박 감독은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의 ID카드를 자신이 가지고 있음을 고백했다. 히딩크 감독은 한국을 떠나면서 ID카드를 박 감독에게 선물했다. 박 감독의 지인들은 "나중에 돈 되니까 잘 보관하고 있으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폭소를 자아냈다.
 
가장 인상적인 물건은 베트남 조폐공사로부터 받은 특별 기념주화였다. 박 감독의 베트남에서의 첫 대회였던 2018 AFC U-23 대회에서 우즈벡에 패하여 아쉽게 준우승을 차지한 이후 박 감독이 선수들에게 했다는 "최선을 다했으니 고개를 숙이지 마라"는 명언이 한글로 새겨져있었다. 박 감독의 어록은 훗날 베트남 고교 논술시험의 주제로 인용되기도 했다고.
 
베트남 부임 초기 축구협회가 제공한 관사에서 지냈던 박 감독은 이후 지금의 펜트하우스를 구매하여 이사를 했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집값이 많이 올랐다"고 너스레를 떨며 멤버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박 감독은 베트남과의 이별을 하루 앞둔 소감에 대하여 "실업자로 돌아가는 거지. 뭐"라며 덤덤하게 웃으면서도 시원섭섭한 감정을 드러냈다. 박 감독과 베트남의 계약이 공식적으로 만료된 시점은 올해 1월 31일이었다. 박 감독은 "2월 1일이 되니까 아침에 느낌이 다르더라"고 고백했다.
 
박 감독은 5년간 베트남에서 지내면서도 오직 축구에만 집중하느라 시내에도 몇 번 나가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베트남에서 이전까지 외국인 감독의 평균 수명이 8개월이었다. 여기 처음올때는 1년만 버티자는 생각으로 온 것이었다"고 이야기하며 "첫 2년 계약이 끝나고 나서 주변에서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런데 그때는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은 결과에 책임을 져야하는 자리'다. 그렇게 적당한 조건에 계약을 연장하고 달리다보니 어느새 5년이 됐다"고 회상했다.
 
여기서 박 감독은 베트남과 '아름다운 이별'을 택하게 된 진짜 이유를 고백했다. 박 감독은 "내가 5년전에 처음왔을 때 선수들이 현재 대표팀에 50% 정도 남아있다. 이 선수들이 지금 베트남 축구대표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옛날에는 선수들이 월급도 적어서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는데 지금은 모두 외제차를 몰고 다닌다"라는 사실을 밝히며 베트남 선수들의 달라진 위상을 설명했다.
 
이어 박 감독은 "나쁜 게 아니라 그만큼 환경이 바뀐 것이다. 내가 지금 선수들에게 5년전의 '헝그리 정신'을 이야기하면 이제는 공감이 안된다. 새로운 동기부여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것은 새로운 감독의 몫"이라며 고민 끝에 베트남을 5년 만에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고백했다. 박 감독은 "나도 여기에 계속 있으면 정체되고, 선수들도 변화해야 베트남 축구가 더 발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박항서 감독과 집사부 멤버들은 베트남에서 마지막 하루를 즐기기 위한 특별한 외출을 했다. 박 감독은 여기서 베트남 공항에서 납치될 뻔했던 놀라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공개했다. 휴가를 마치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던 박 감독은 혼자 택시를 탔다가 의문의 장소로 끌려가는 아찔한 경험을 했다. 도착한 곳에는 불량배로 보이는 수상한 남자들이 가득했고, 택시기사는 알 수 없는 서류를 내밀며 박감독에게 사인을 강요하면서 분위기가 살벌했다고.
 
그런데 일행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박 감독을 알아보며 반가워했고, 택시기사를 질타한 뒤 박 감독을 무사히 귀가시켜주는 것으로 상황은 마무리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아찔했던 박 감독은 이후로도 한동안 공항에 올 때마다 트라우마가 생겼다고.
 
멤버들이 하차하여 하노이 길거리를 걸어가기 시작하자 곳곳에서 박 감독을 알아본 시민들이 몰려들어 이름을 연호하거나 악수를 청하기도 하고 사진을 촬영하며 '베트남 슈스'다운 인기를 과시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인기투표에서 BTS를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아이돌스타인 뱀뱀과 도영은 모르는 시민도 박 감독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볼 정도였다
 
박 감독은 여유로운 미소와 손인사로 응대하는 팬서비스를 선보였다. 양세형은 "베트남 국민들도 박 감독님이 떠난다는 걸 아니까 더 애틋한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박 감독을 포옹했던 팬의 모습은 '그동안 고생했어요. 고마워요'라고 하는 느낌이어서 마음이 찡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박 감독은 베트남 사령탑 시절 '두 얼굴을 가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평소에는 다정하고 친근하게 다가가는 파파 리더십을 선보였지만, 훈련시에는 악마같은 조교로 변신했다고. 박 감독은 "선수들의 성장을 위해서 가끔은 압박을 줘야한다"는 노하우를 밝혔다.
 
또한 박항서 감독의 축구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히딩크 감독이다. 박 감독은 200년 한일월드컵에서 감독과 코치로 함께 인연을 맺으며 4강신화를 합작했다. 박 감독은 당시 히딩크 감독으로부터 지도자로서의 철학과 노하우를 많이 배웠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은 '지도자는 이렇게 하는 것이다'는 것을 제게 명확하게 심어준 분"이라고 평가하며 "제가 넘을 수 없는 존재. 아무리 해도 그분을 넘을 수 없다"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2019년 중국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던 히딩크 감독과 17년 만에 같은 사령탑으로 처음이자 마지막 맞대결을 펼쳤다. 히딩크 감독은 재회한 박 감독을 반갑게 포옹하고 어깨동무를 하며 "나는 박항서 감독이 정말 자랑스럽다. 2002년에 나를 너무 많이 도와줬다"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히딩크 감독의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박 감독의 모습도 화제가 됐다.
 
당시 박항서의 베트남은 평가전에서 히딩크의 중국을 격파했다. '쌀딩크'가 '원조 히딩크'를 넘어선 청출어람의 순간이었다. 화끈한 세리머니로 유명했던 박 감독은 히딩크 감독을 의식하여 당시 경기에서는 기분은 좋았지만 세리머니를 자제하고 표정관리를 해야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고백했다.
 
공교롭게도 하필 박항서의 베트남에게 패하고 난 직후, 히딩크 감독은 중국축구협회로부터 경질 당했다. "결정타를 날리셨다"는 멤버들의 짓궂은 몰이에 난감해진 박 감독은 "경질은 한 경기만이 아니라 그전부터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을 것"이라면서도 "언론을 통하여 히딩크 감독의 소식을 전해 듣고 마음이 착잡했다"고 고백했다.
 
경기 이후 히딩크 감독과는 전화 통화로 안부를 주고받았다고. 박 감독이 영어가 능통하지 못하여 긴 대화는 못하지만 주로 짧은 단어로 마음을 표현한다고 밝혔다. 박 감독은 뱀뱀의 통역으로 히딩크 감독에게 전하는 영상 메시지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항상 감사한 마음을 깊이 간직하고 있다. 감독님을 오랫동안 못뵈었는데 한국에서 볼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못다한 마음을 전하며 훗날 '명장들의 아름다운 재회'를 기약했다.
집사부일체 박항서 히딩크 베트남축구 쌀딩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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