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cm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평균구속 140km의 패스트볼에 타자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잦은 등판에 지칠 법도 했지만 끝까지 책임감 있게 마운드를 지켰다. 지난해 가을, 키움 히어로즈의 '가을영웅'으로 거듭난 좌완투수 김재웅이 그 주인공이다.

2017년 2차 6라운드 전체 57번으로 키움의 지명을 받은 김재웅은 지난해 프로 데뷔 이후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65경기에 등판해 62⅔이닝 3승 2패 27홀드 13세이브 평균자책점 2.01을 기록, 흠 잡을 데 없는 투구를 선보였다.

팀 내에서 60경기 이상 등판한 투수는 김재웅이 유일했다. 선발 등판 없이 60이닝을 넘긴 것 역시 김재웅 단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단순히 많이 던지기만 한 게 아니다. 세부 지표에서도 그의 활약상이 드러났다.
 
 지난해 키움 불펜의 핵심이었던 좌완투수 김재웅

지난해 키움 불펜의 핵심이었던 좌완투수 김재웅 ⓒ 키움 히어로즈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던 김재웅의 공

피안타율은 0.179, 이닝당 출루허용률(WHIP)은 1.09로 전년도보다 수치가 떨어졌다. 8월 이후에 접어들면서 부진한 경기도 있었지만 전반기까지는 줄곧 1점대의 평균자책점을 마크하며 팀의 상승세를 이끌었다.

집 밖으로 나가면 더 강해진 점도 눈에 띈다. 홈에서는 29경기 28이닝 2승 1패 12홀드 6세이브 평균자책점 3.54를 기록한 반면 원정에서는 36경기 34⅔이닝 1승 1패 15홀드 7세이브 평균자책점 0.78의 성적을 남겼다. 라이온즈파크 등 타자 친화적인 구장에서도 끄떡없었다.

김재웅을 논할 때 빠질 수 없는 또 한 가지, 바로 패스트볼이다. KBO리그 기록 전문 사이트 '스탯티즈'에 따르면, 지난해 리그 평균 패스트볼 평균구속은 144.2km로 전년도(142.9km)보다 약 1km 이상 상승했다. 이전에 비해 외국인 투수뿐만 아니라 국내 투수들 중에서도 빠른 투수가 꽤 많아졌다.

김재웅은 이러한 흐름과 '반대'로 가는 투수였다. 2021년(140.1km)과 지난해(140.8km)를 비교했을 때 패스트볼 평균구속에 큰 차이가 없었다. 리그에서 가장 느린 공을 던지는 '클로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럼에도 변화구보다 패스트볼(지난해 구사율 64%) 위주로 공을 던졌다.

결과도 좋았다. 패스트볼 피안타율과 피OPS가 각각 0.186, 0.575에 그쳤다. 패스트볼 구종가치는 14.5로 전체 8위, 구원투수들 중에서는 단연 1위였다. 비결은 김재웅 특유의 '수직 무브먼트'에 있었다.

쉽게 말하면 타자가 예상한 것과 다른 궤적으로 공이 도착하는 것이다. 공에 회전이 걸리다 보면 중력의 영향을 덜 받게 되는데, 이로 인해 공이 덜 떨어진다. 아무리 타자가 구종을 알고 스윙을 해도 정타가 나오지 않거나 헛스윙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다른 투수들보다 느리다고 해서 김재웅의 공을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최근 키움 캠프지를 방문한 KBS 박찬호 해설위원에게 조언을 들었던 김재웅

최근 키움 캠프지를 방문한 KBS 박찬호 해설위원에게 조언을 들었던 김재웅 ⓒ 키움 히어로즈

 
올해도 키움이 믿는 필승카드

김재웅은 정규시즌뿐만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했다. 출루 허용 없이 7명의 타자에게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준플레이오프(2경기 2⅓이닝 1세이브 2탈삼진 무실점)를 시작으로 플레이오프(3경기 4이닝 3세이브 1피안타 1볼넷 2탈삼진)까지 단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한국시리즈에서 만난 SSG 랜더스에 비해 체력적으로 불리했던 키움은 시리즈가 막바지를 향할수록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김재웅도 예외가 아니었다. 1차전부터 9회말 김강민에게 동점 솔로포를 헌납하는 등 이전과 같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결국 4경기 4⅔이닝 1승 1홀드 9피안타(2피홈런) 5볼넷 4탈삼진 평균자책점 11.57로 아쉬움을 남긴 채 시리즈를 마감했다.

모든 것을 쏟아낸 김재웅은 시즌 종료 이후 연봉협상에서 자신의 공로를 인정받았다. 전년도(1억 400만 원)보다 111.5% 상승한 금액인 2억 2000만 원에 도장을 찍었다. 안우진(133.3%)에 이어 팀 내 연봉 최고 인상률 2위였다.

그만큼 팀이 올해도 김재웅에게 거는 기대가 크다는 의미다. 다행인 것은, FA(자유계약선수)로 팀을 옮긴 '베테랑' 원종현이 전력에 가세했다. 여기에 젊은 투수들까지 성장세를 보인다면 김재웅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어낼 수 있다.

키움도, 김재웅도 새드엔딩으로 끝난 아쉬움을 달래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 다시 한 번 느린 공으로도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모두를 놀라게 했던 김재웅의 '유쾌한 반란'이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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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기록 출처 = 스탯티즈 홈페이지]
프로야구 KBO리그 키움히어로즈 김재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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