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슬램덩크> 갈무리

만화 <슬램덩크> 갈무리 ⓒ 대원

 
좋은 여성 서사란 어떤 것일까. 과거에 비하면 최근에는 많은 여성 서사 작품들이 나오고 있지만, 그것 만큼 과거의 작품들 속 여성 캐릭터들을 새롭게 해석하는 일도 중요하다. 

​​​수동적이고 연약하게 보이는 작품 속 여성들이 실은 그렇지 않다고 새롭게 해석한다면 그 해석은 또 새로운 여성 서사가 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만화 <슬램덩크>, 영화 <슬램덩크 더 퍼스트> 속 '채소연'이란 여성을 떠올려 보았다.

그는 학원물의 주인공답게 단발머리에 눈길이 가는 앳된 얼굴을 지녔다. 또한 남학생들에게 사랑받지만, 영 눈치가 없이 마냥 해맑은 농구부의 매니저다. 원작 만화나 최근 개봉한 영화에서 남학생들이 열심히 농구 경기를 뛸 때 채소연이 옆에서 응원하는 모습은 심심찮게 나온다. 

이렇게 보면 채소연은 남성 캐릭터들이 주를 이루는 만화에 간간이 출연하는 여학생 같다. 하지만 우리는 한 번도 채소연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인 적 없다. 사실 <슬램덩크>의 시작 버저를 울린 건 채소연이다. 채소연이 농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슬램덩크>는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슬램덩크>의 시작은 채소연이다

채소연은 농구를 좋아한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는 농구부였으며 평범한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건 농구 경기 시청이다. 그는 농구에 대한 애정으로 차곡차곡 지식과 테크닉을 쌓는다. 채소연의 해박한 농구 지식과 그간의 경기 시청은 강백호를 만난 순간, 마침내 빛을 발한다.

복도에서 우연히 마주한 강백호를 보고 채소연은 '농구를 좋아하냐'고 묻는다. 남들 눈에는 양아치 비주얼인 강백호지만, 채소연은 그의 우월한 신장이 농구에 적합하다는 걸 캐치한다. 그리고 강백호를 농구장에 데려가 '슬램덩크'라는 농구 기술을 가르친다. 강백호는 우쭐대며 골대를 향해 힘껏 점프하지만, 웃기게도 골대에 머리를 박고 쓰러진다.

강백호 본인조차 자신의 실수가 창피해서 코트에 엎어져 있을 때 채소연만이 그가 '농구대에 부딪힐 만큼' 높은 점프력을 지녔다는 걸 알아챈다. 심지어 강백호가 농구공을 잡고 드리블을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공을 빙빙 돌릴 때조차 채소연은 그가 농구공을 '한 손에' 잡을 만큼 타고난 신체를 지녔다고 기뻐한다. 

채소연의 선구안이 그를 농구의 길로 이끌었고 결과적으로 북산고교 농구부 에이스 '강백호'가 탄생한다. 그리고 강백호의 합류를 시작으로 <슬램덩크> 일대기가 펼쳐진다. 만약에 채소연이 농구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복도에서 마주친 강백호를 남들처럼 문제아 취급했다면, 애초에 <슬램덩크>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채소연은 채소연만의 농구를 한다

농구 선수를 그만두고 채소연이 가장 사랑한 일은 바로 농구 경기를 보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는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기 분석까지 한다. 채소연이 선수 기량을 날카롭게 분석하는 모습은 원작 내 모든 경기 장면마다 등장할 정도로 비중이 있다.  

경기장에서 그의 역할은 단순히 응원이 아니다. 채소연은 다른 팀 선수들의 신장과 포지션, 심지어 이전 경기에서의 농구 플레이까지 꿰뚫는 상태에서 경기를 관람한다. 삽시간에 변화하는 경기 흐름을 빠르게 캐치하고 북산 팀의 추후 행보까지 예측하는 채소연은 원작 내에서 해설 위원에 준하는 포지션으로 등장한다.

무언가를 사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채소연이 농구 선수의 삶을 포기했다고 농구 자체를 저버린 건 아니다. 다만, 경기장에서 공을 튕기는 선수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랑할 뿐이다. 농구를 사랑하는 그의 모습은 원작 곳곳에서 발견된다.  

평범한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선수처럼 새벽 연습에 나서고 농구부원들보다 먼저 코트로 향하는 채소연. 농구를 너무 사랑해서, 농구에 타고난 재능을 지닌 강백호를 무심결에 질투하는 채소연. 농구화가 딱딱한 이유까지 설명할 수 있는 채소연. 이렇듯,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아직 농구 코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미 끝난 만화를 다시 그릴 순 없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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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더 퍼스트 슬램덩크> 스틸컷 ⓒ (주)NEW

 
아무리 채소연이 농구에 열정적인 인물일지라도, 여전히 <슬램덩크>는 남성들의 이야기다. 북산 고교 농구부의 일대기를 담은 게 <슬램덩크>이고 농구부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 여성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채소연을 남성 스포츠물에 등장하는 '여학생 1'로 만들 수는 없다. 엄연히 그에겐 그만의 입체성과 서사가 있다. 

이미 끝난 만화를 다시 그릴 순 없어도, 새로운 방식으로 읽을 수는 있다. 그리하여 수동적으로 비치던 여성 캐릭터에서 주체성을 읽어낼 때, 그는 우리 앞에 나타나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준다. 농구를 사랑하는 방식이 다양하듯 여성 서사를 사랑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그래서 나는 <슬램덩크> 열풍 속 수줍게 지나치는 채소연을 붙잡고 싶다. 

남자 선수를 응원하는 '채소연'이 아니라 농구를 사랑해서, 농구에 뛰어든 '채소연'으로 캐릭터를 뒤집는 일. 채소연을 시작에 두고 <슬램덩크>라는 서사를 되돌아보는 일. 그게 내가 채소연을, 그리고 여성을 사랑하는 방식이다. 
슬램덩크 여성 서사 채소연 이한나 박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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