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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 원이냐, 7만 원이냐, 10만 원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직장 동료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으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나에게 지금껏 직장동료의 축의금 액수는 꽤나 확고한 편이었다. 물론 친밀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내 기준에서 직장 동료의 축의금은 5만 원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던 '축의금 5만 원 냈다가 손절당한 직장 동료' 이야기가 떠올라 마음이 심란해진다.

축의금 기본값이 5만 원으로 고정된 게 10년이 훌쩍 넘었으니 오래 되긴 했다. 가파르게 오른 물가상승률을 반영해서 축의금도 상향조정해야 하는 건가? 철저히 내 월급만 비켜가는 지독한 경제법칙이다. 5만 원은 진정 주고도 욕을 먹어야 하는 액수인가? 그럼 7만 원을 해야 하나? 아님 10만 원이 정말 요즘 대세인가?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이 문제를 풀려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축의금을 내야하는 다른 직장 동료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둘러앉았다.

'그래서 얼마를 해야 되는 거야?'

요즘 결혼식 가려면 고려해야 할 것들
 
직장 동료의 축의금 액수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5만 원이다.
 직장 동료의 축의금 액수로 우리가 내린 결론은 5만 원이다.
ⓒ 최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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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의금 액수에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생각보다 많았다. 결혼식에 참석을 할 것인지, 동행자를 데려갈 것인지, 밥을 먹을 것인지, 예식장에서 제공하는 식대는 얼마인지 등등.

내 돈으로 축의금을 내면서 이렇게까지 고민해야 할 게 많단 말인가. 예전에는 축의금 내고 결혼식에 참석해서 사진 찍고 밥을 먹는 것이 '결혼의 정석'처럼 거리낄 것이 없었는데 정말 세상이 이렇게 복잡해진 건가 싶어 마음이 영 혼란스럽다.

나는 40대 미혼의 여성이다. 나의 결혼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이번 생에 나의 축의금을 거둬들이는 일은 일어날 것 같지 않다. 그 말인즉슨 지난 20여 년간 받지도 못할 축의금을 부어댔고, 밑이 빠진 독에 물을 붓듯이 앞으로도 축의금을 내야한다는 뜻이다.

20대에는 '우리 인연 포에버'를 철석같이 믿으며 결혼한다는 연락을 받으면 서로 낯가리는 어색한 사이라도 축의금을 냈다. 축하하는 마음과 더불어 '언젠가 나도 돌려받겠지' 싶었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다.

일단 돌려받을 일이 상당히 묘연해졌다. 큐피트의 실수로 화살이 내 심장을 관통해 내일 당장 결혼식을 올린다 해도 연락이 끊겨 돌려받지 못할 축의금을 모으면 나의 집이 0.5평 더 넓어질 수도 있었다는 결론에 도달하자, 축의금을 보내야 하는 관계와 축하하는 마음을 듬뿍 담은 메시지만으로 괜찮은 관계를 판가름하는 냉정함을 가지게 되었다.

결혼 문자를 받고 '엥? 이걸 왜 나한테?' 싶으면 이미 게임 끝이다. 그런 연락에는 거두절미하고 행복을 기원하는 문자를 정성스레 보내면 된다. 하지만 인생에는 언제나 예외가 있는 법. 오래전 연락이 끊어진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문자로 '퉁' 치는 건 아니다. 이미 끊어진 인연이라 하더라도 결혼한다는 문자가 당황스러운 동시에 한편으로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면 이미 나의 냉정함은 KO패다.

기억도 흐릿해진 과거의 인연이지만 '나에게 결혼 소식을 알리고 싶었다'는 그 뻔한 문자가 반가웠다는 건, 정신없이 살아가는 중에도 나를 칼로 도려내듯 지워내지 않은 것이 고맙다는 뜻이다. 나도 살아가다 문득문득 그들의 안부가 궁금할 만큼 추억이 아름답게 남아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마음이 들 땐 '5만 원짜리 헛짓거리'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흔쾌히 축의금을 선물한다.

물론 '이 축의금이 도화선이 되어 우리 인연이 화려하게 부활하지 않을까' 꿈꾸던 실낱같은 희망은 언제나 산산이 부서졌지만, 그렇다고 원망하는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뭐 그런 게 인생이겠거니. 이미 끊어진 인연에게 보내는 나의 축의금은, 지난날 함께 했던 시간에 대한 그리움의 표현이자 내가 성의를 다해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 같은 거였다.

축의금 5만 원에 손절될 사이라면
 
직장동료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으며 축의금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직장동료의 결혼 소식을 전해 들으며 축의금에 대한 고민은 시작되었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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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현재진행형인 인연은 조금 다르다. 지금 내가 맺고 있는 인연의 끈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래서 의지를 얼마로 표명할 건데?'

직장 동료들과 머리를 맞대고 내린 결론은 '5만 원'이었다. 7만 원은 아직 일반화되지 않은 애매한 액수이고, 10만 원은 일로 엮인 직장동료에게 지나치게 많다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었다.

5만 원을 내고 예식장에서 밥을 먹는 게 민폐가 될 수 있다는 글이 계속 머리에 맴돌아, 난 축의금만 전달하고 결혼식에는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 여부를 두고 고민하던 한 동료는 식대 할인을 받아 1인 밥값이 5만 원을 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은 후 자신은 당당히 결혼식에 참석하고 밥도 먹고 오겠다며 몇몇의 동료들과 함께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렇게 우리의 축의금 해프닝은 일단락되었다.

이로써 우리 사무실에선 암묵적으로 '축의금은 5만 원'이라는 룰이 생겼다. 오히려 고민이 덜어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정작 결혼하는 당사자는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는데, 괜히 우리만 유난이었던 건가 싶을 정도로 새 신부는 축의금을 고마워했다.

결혼을 축하해주는 일에도 경우의 수를 따져야 하는 복잡한 세상이 되었다. 지나간 인연이든, 현재의 인연이든, 축의금을 돌려받을 수 있든, 없든 재고 따지는 일은 그만두련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한 축의금인데, 이것저것을 고민하다 보니 축하하는 마음이 사그라지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린다.

결국 답은 내가 가지고 있다. 난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축의금에 축하하는 마음을 담아 새로운 인생의 문을 막 열고 있는 이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응원해줄 거다. 5만 원 축의금에 손절될 사이라면, 딱 거기까지인 인연일 뿐. 인생이 그런 거다.

태그:#축의금, #결혼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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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여전히 꿈을 꾸는, 철없는 어른아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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