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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부터 포털이나 SNS에서 계속 보이는 정부의 홍보 영상을 스킵하여 넘기다가 흥미로운 반응을 접했다. '국민을 뭘로 보기에 이런 홍보 동영상을 만드냐', '유치해서 못 봐주겠다', '화난다' 등등.

어떻게 만들었기에 사람들이 이구동성 화를 내는 것인지 궁금해져, 클릭해서 확인해보았다.

어두운 밤길,
가지고 있던 떡을 호랑이에게 뺏긴 어머니는
아들에게 어둠을 몰아내고
세상을 밝게 비추는 글자를 쓰라고 합니다.
눈부시게 빛나는 그 글자는 바로..!
"원자력"
참 든든한 에너지입니다.


지난 8일 정부가 유튜브 '대한민국정부'와 SNS에 올린 <[국정과제 세 번째] 원자력 생태계 강화(호환극복 편)>은 소문대로 맥락없고 형편없고 어이없었다. 이 영상을 만들고 배포하기 위해 내 세금이 쓰였다는 생각을 하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문제점을 살펴봤다. 

저 푸르스름한 빛은 방사능?

영상에서 엄마와 아들은 푸르딩딩하게 빛나는 '원자력'이란 글씨를 보며 기뻐한다. 저 불길한 푸르스름한 빛에서 원자로에서 보이는 체렌코프 복사, 또는 방사선이 지나가면서 내는 신틸레이션(scintillation)이 자동 연상된다.

체렌코프 복사는 투명한 물질 속을 지나가는 전하를 띤 입자가 그 물질 속 빛보다 빠를 경우 보이는 청백색 빛으로, 원자로에서 볼 수 있고 일상에서 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방사선이 물질 내를 통과할 때 내는 신틸레이션 빛, 또는 공기 분자를 이온화하면서 내는 빛도 푸르스름하다. 기전은 다 다르지만, 한 가지는 똑같다. 방사능으로 인한 푸르스름한 빛을 직접 봤다면 방사능 피폭양이 어마어마하다는 점이다.
 
체렌코프 복사는 주로 원자로에서 볼 수 있으며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이 빛을 직접 보았다면 즉시 또는 길어야 며칠 내로 사망할 것이다.
▲ 고에너지 방사능을 보여주는 회백색 빛 체렌코프 복사는 주로 원자로에서 볼 수 있으며 푸르스름한 빛을 띤다. 이 빛을 직접 보았다면 즉시 또는 길어야 며칠 내로 사망할 것이다.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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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퀴리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라듐을 처음 발견했을 때 저렇게 기뻐하며 손뼉을 쳤을지도 모른다. 아시다시피 마리 퀴리는 방사능 피폭으로 사망했다. 퀴리는 방사능의 위험성을 모른 채 지속적으로 연구해서 피폭되었기 때문이다. 퀴리의 시신, 연구 노트, 살던 집의 가구와 옷은 아직도 방사능을 내뿜고 있어 접근이 제한된다.

퀴리는 피폭의 위험성을 몰랐기 때문에 라듐의 푸른 빛을 보며 행복해했지만, 21세기의 우리는 안다. 노심용융 사고를 겪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는 사실상 영원히 접근이 어려운 지역이 되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은 도시를 완전히 파괴하고 그나마 살아남은 원폭 피해 생존자들은 평생 질병과 사투를 벌이며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방사능의 위험이 알려지지 않았던 시기, 라듐의 발광을 이용해 어둠 속에서도 시계를 볼 수 있는 야광 시계가 인기를 끌었지만, 이 시계를 만들던 여성 노동자들(라듐 걸스)은 지속적인 피폭으로 대부분 재생 불량성 빈혈, 골절, 턱의 괴사 등을 겪고 심한 경우 사망했다.

라듐걸스와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알고 있는 21세기에, 푸틴이 핵무기 쏠까 봐 겁이나는 이 2023년에, 피폭 느낌 나는 빛을 보고 해맑게 웃으며 손뼉을 치는 상황극을 정부가 원자력 홍보라고 올렸다. 놀랍다.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패러디. 정부 영상에서는 '원자력'이라고 써 있는 부분을 '방사능'이라고 바꿨다. 청백색 빛의 색감은 그대로 두었다.
▲ 원자력 홍보 정부영상의 패러디 왼쪽이 원본, 오른쪽이 패러디. 정부 영상에서는 '원자력'이라고 써 있는 부분을 '방사능'이라고 바꿨다. 청백색 빛의 색감은 그대로 두었다.
ⓒ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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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다를까, '원자력'이란 글씨를 '방사능'으로 바꾼 패러디 사진도 등장했다(이 패러디 사진 출처를 계속 찾아보았지만 아직 못 찾았다.-기자 말). 기존 광고를 패러디하는 것을 광고전복(subvertising) 또는 밈 해킹(meme hack)이라고 한다.

문제의 정부 광고는, 방사능을 떠올리지 않을래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광고전복을 위한 판을 스스로 깔아준 것이다. '저 정도로 강하게 피폭되면 엄마와 아들 2주 사망 컷'이라는 비아냥까지 나온다. 19일 현재 조회수 317만회를 기록한 이 영상에는 1626개의 댓글이 달렸는데, 비판 일색이다. 

전등을 켜려면 원자력이 필요해? 

우리가 사용하는 가전제품 중 형광등은 소비전력이 가장 낮은 편에 속한다. 집에 1mx2m 크기의 400W 태양광 패널 하나만 설치해도 집을 밝히는 데 필요한 전기는 충분하고도 남는다. 기업용 전기요금을 할인해주기 때문에 대규모 전기 낭비는 산업 부분에서 대부분 일어난다.

기업용 전기요금이 얼마나 저렴하면 전기 용광로를 쓰겠는가. 용광로를 데우기 위해 전기를 쓰면 낭비가 매우 심해진다. 전기를 생산하고 운송하고 다시 열로 만드는 과정에서 효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삶에 필수적인 전기, 특히 전깃불은 핵발전 없이도 충분히 공급 가능하다.

이토록 후진 핵발전 홍보 광고를 내가 낸 세금을 이용해서 만들고, 납득할 수 없는 정보를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하다니, 여러 모로 불쾌하다. 내가,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우스운가?

기후위기 시대에 긴급한 국정 과제가 뭔지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이런 정부 광고에 세금을 낭비한다면, 정부에 직접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다. 현재 약 140개 단체가 결합한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는 오는 4월 14일 세종시 정부청사 앞에서 정부를 상대로 기후위기 대응을 촉구하는 기후정의파업을 열 예정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홍보국장이며 414기후정의파업 조직위원회에서도 활동중이다.


태그:#원자력, #방사능, #기후정의파업, #414기후정의파업, #세종기후정의파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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