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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성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엄홍성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 남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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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와 두 팔의 기능을 상실했습니다. 그나마 애를 쓰면 왼팔이 조금 움직여 감사할 따름입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노래도 부르고 싶지만 목소리조차 잘 나오지 않습니다. 어색한 왼손으로 처음 연필을 잡고 그은 선은 출렁이는 물결 같았습니다. 왼팔로 할 수 있는 게 그림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그림 그리기가 벌써 15년이 됐습니다."

장애인 거주시설 경남 남해소망의집에서 거주하고 있는 엄홍성 작가의 미술사를 요약한 내용이다. 

엄홍성의 그림일기
 
엄홍성 작가 작품집
 엄홍성 작가 작품집
ⓒ 남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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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홍성 작가는 15년 전 30대 중반의 나이로 남해소망의집에 입소해 올해 50세를 맞았다. 그는 휠체어에 몸을 맡기고, 15년째 길들이고 있는 왼손으로 캔버스를 채워나가고 있다.

장애인이 되기 전 그의 인생에서 그림이나 미술은 사치에 불과했지만, 장애인으로서 엄  작가에게는 동반자와 같다.

엄 작가는 20대 중반 오토바이를 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두 팔과 다리의 기능을 상실했고, 목에 호스를 꽂아야 할 정도로 큰 부상을 입었다. 수술은 잘 마쳤지만 팔, 다리는 무감각해졌고, 목소리도 뜻대로 사용할 수 없게 됐다. 

그나마 다행인 건 왼팔의 감각이 조금은 남아 있음을 발견한 것. 15년 전, 남해소망의집에서는 엄 작가가 주로 사용하는 팔을 오른팔에서 왼팔로 바꿀 수 있도록, 또 재활을 위한 활동들을 발굴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실내 활동의 종류가 적었기에 그렇게 엄 작가와 그림이 첫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림으로 부르는 노래
 
엄홍성 작가 전시회 기념식이 지난 14일 남해도서관에서 열렸다.
 엄홍성 작가 전시회 기념식이 지난 14일 남해도서관에서 열렸다.
ⓒ 남해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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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 작가는 2012년 남해소망의집 작품전 2인전, 2018년 남해소망의집 작품전 4인전을 통해 다양한 작품들을 선보였는데, 이번에는 오롯이 `엄홍성`이라는 이름을 걸고 전시회를 개최했다. 

'생명 그리고 삶 노래하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다. 엄 작가는 앞서 두 번의 전시회에서도 `마음의 노래`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만큼 노래를 좋아하고 노래라는 행위가 예술로서 표현하기에 아름답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엄 작가는 노래는커녕 말하기도 어려운 상태이니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그림이라는 매체로 노래를 하는 셈이다.

엄 작가는 2018년 전시회 이후 코로나19로 인해 영감을 얻기 어려웠지만 영상과 사진, 책 등 여러 매체를 접하면서 그림에 대한 의지를 이어갔다. 그는 지난해까지 4년 동안 그린 작품 70여 점 중 27점을 선보이고 있는데 주로 동물들을 담아냈다. 

엄 작가는 "나의 두 다리로 세상을 달리지는 못해도 나의 물소나 코뿔소, 기린, 표범이 힘차게 달려줬다"며 "두 팔은 포근히 안아줄 수 없지만 새들의 날갯짓으로 내 마음을 전달할 수 있었다. 이번 전시회의 주 피사체는 동물"이라고 밝혔다.

이러한 가운데 엄 작가의 첫 개인전을 세상에 공표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엄홍성 작가 전시회 기념식이 지난 14일 남해도서관에서 열린 것. 이 자리에는 남해소망의집 식구들과 남해군 미술계, 군청 복지과 관계자 등이 참석해 축하를 건넸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장애를 얻어 절망이라는 터널 속을 헤맸지만, 화가로서 새 삶을 개척하고 있는 엄홍성 작가. 그의 첫 개인전은 지난 14일부터 이달 28일(화)까지 남해도서관 1층 갤러리 꿈길에서 만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남해시대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왼팔로 그린 세상, #그림일기, #장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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