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영화나 드라마화된 작품이 원작의 감동을 뛰어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내 경우, 영화 <7년의 밤>과 <살인자의 기억법>이 글로 먼저 읽은 원작의 촘촘한 긴박감과 스릴, 반전의 느낌을 따라가지 못했다. 영화 <시동>도 원작 웹툰을 읽었을 때의 먹먹한 감동에는 미치지 못했다. 그래서 강렬한 원작을 글로 먼저 접했다면 영상화된 작품을 되도록 보지 말자, 주의다. 원작의 감동이 퇴색되는 게 싫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감독이 원작의 느낌을 어떻게 영상으로 구현했을까, 궁금해지는 작품이 있다. 소설 <가재가 노래하는 곳>이 영화화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소설 속의 한없이 신비로운 습지가 어떻게 영상화되었을지, 주인공 카야의 삶이 주었던 다양한 감정을 과연 감독은 어떻게 연출했을지 무척 궁금했다.

카야는 '습지 소녀'다. 마을과 동떨어진 습지에서 사람들과 접촉 없이 홀로 살아가는 카야를 마을 사람들은 이름 대신 '습지 소녀'라 부른다. 엄마와 두 언니, 오빠와 모두 함께 살던 어린 시절엔 나름 행복했던 적도 있었다. 참전의 상흔으로 괴로워하는 아빠가 휘두르는 폭력만 아니었더라면 그런대로 살아갔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빠의 폭력에 엄마가 먼저 떠나고 뒤를 이어 두 언니, 마지막으로 오빠까지 떠나자 어린 카야는 홀로 아빠 곁에 남는다. 카야의 오빠는 떠나면서 카야에게 당부한다. 위험할 때는 언제든 습지 깊은 곳으로 몸을 숨기라고. 아빠마저 집을 떠난 후, 어린 카야는 야생의 환경에서 홀로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카야가 성숙한 여성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에서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두 남자(테이트와 체이스)가 있다. 그들과의 로맨스와 갈등, 법정 미스터리 이야기가 원작 못지않게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습지에서 홀로 성장하며 겪는 카야의 고독과 외로움에 마음이 아팠다가 경이로운 야생의 생존 방식에 감탄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영화는 원작을 거의 그대로 구현하려고 노력한 듯하다. 원작 소설이 워낙 탄탄한 스토리라 흥미가 반감될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글로 된 문장의 서정성이나 문학적인 표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는 점은 영화의 한계였으나, 습지의 아름다움과 매력적인 배우들의 다채로운 캐릭터가 아쉬움을 달래 주었다.

소설을 읽었을 때 상상했던 습지와 여주인공 카야의 모습이 영화 속에서 매우 높은 싱크로율로 그려져 놀라웠다. 작가의 풍경 묘사가 워낙 섬세해서 소설 속 습지 풍경을 영상으로 구현하기 용이했던 것일까?

카야의 용기와 사랑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여자 홀로 살아낸다는 것은 21세기에도 녹록지 않은 일이다. 하물며 작품의 배경인 1950~1960년대엔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떻게 카야는 가족의 상실 이후에도 삶에 대한 끈을 단단히 쥐고 살아낼 수 있었을까. 권력관계의 우위를 점하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쥐고 흔들려는 자에게 결코 굴하지 않는 카야의 용기가 놀랍도록 생동한다. 

카야가 진정으로 사랑한 남자(테이트)와 사랑이라 착각했던 남자(체이스)를 통해 남성 유형의 양 극단을 보게 된다. 테이트는 사랑하는 여자가 처한 환경이 불우해 보인다고 함부로 백마 탄 왕자 행세를 하지 않는다. 카야의 환경에 들어가 카야에게 글을 가르치고 책을 읽게 함으로써 카야의 자립 능력을 돕는다. 습지 생물을 관찰하고 삽화로 그리기를 좋아하는 카야의 재능이 출판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출판사 목록을 전해준다. 테이트는 카야의 본모양대로 사랑한다.

체이스는 어떠한가? 카야를 자기가 속한 세계와 떼어놓고 오로지 자기만의 소유물로 대한다. 그는 습지에서 홀로 살아가는 카야를 이상하고 신기하게 여길 뿐, 카야의 재능이 무엇인지, 그녀의 세상이 어떠한지 전혀 관심이 없다. 입에는 사랑을 담지만 카야를 바라보는 근본적인 체이스의 시선은 세상이 그녀를 대하는 시선-세상과 단절된 채 야생 속에 고립되어 살아가는 미개한 '습지 소녀'라는-과 다르지 않다. 오히려 그녀의 고립된 처지를 이용하여 자신의 욕망만을 채우려 할 뿐. 체이스의 사랑은 자기 욕망의 실현일 뿐이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자기가 본 그대로를 사랑하는 테이트와 세상의 기준에 자신의 욕망을 더해 사랑이라 믿고 강요하는 체이스. 평생 함께 할 이가 어떤 유형의 인간인지 잘 살펴보고 신중히 택할 일이다.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의 한 장면. ⓒ 소니픽처스코리아

 
원작 소설의 작가 델리아 오언스는 평생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하고 연구한 여성 생태학자였다. 소설을 내놓을 당시 작가의 나이가 70에 가까웠다니 여성 생태학자로서 살아온 그녀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것이다. 습지에서 나고 자라 야생의 생존법대로 살아가는 독립적인 여자의 이야기가 실화처럼 느껴지는 이유는, 생태학자로서의 작가 고유의 시선이 이야기 곳곳에 묻어나기 때문일 것이다.

내심 카야의 이야기가 실화이기를 바랐다. 홀로 성장하여 사회적으로 기여하는 독립된 여성의 이야기를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을 읽었을 때, 책 내용과 별개로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이 있었다. 이런 책은 여자는 쓰기 어렵겠구나, 아무리 자연을 사랑하더라도 2년 여의 기간 동안 독신 여자 홀로 숲에 사는 삶이 가당키나 한가, 하는 생각들 때문에 간소한 자연의 삶에 대한 소로우의 추앙이 마음 깊이 들어오지 않았다. 자연 속에서 모든 생명들과 교감하며 살아가는 카야의 삶만큼 진정한 생태적 삶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허구라니. 감동의 크기 못지않은 허탈감이 몰려왔다.

육지에서는 발 붙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결국 내몰리다 정착하게 되는 곳이 습지였다. 이곳에서 가족을 모두 떠나보내고 홀로 살아가는 카야의 외로움이 북적이는 도시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외로움과 다르지 않게 여겨질 것이다. 인종과 성, 자연과 문명, 생태적 삶 등 다양한 삶의 문제를 생각하게 하는 영화, <가재가 노래하는 곳>. 원작 소설과 영화, 둘 다 놓치지 않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브런치에 함께 게시될 글입니다.
가재가노래하는곳 영화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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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넘은 공립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아이들에게서 더 많이 배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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