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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4.3 희생자 추념일까지는 한 달 하고도 보름 정도가 남았지만, 4.3의 책임을 둘러싼 논쟁과 여론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뜨거워진 듯하다. "4.3사건은 북한 김일성의 지시"라는 태영호 국민의힘 의원의 발언이 몰고 온 파동이다.

제주도 시민사회와 국내외 4.3 유가족들이 깊은 충격과 우려를 나타내고 있음에도 , 태 의원은 끝내 발언을 정정하거나 사과하진 않고 있다. 4.3에 대한 몰이해가 한국 사회에 여전히 견고하다는 현실 앞에 많은 이들이 좌절하고 있는 사이, 이번엔 당시 학살의 최고 책임자 중 한 사람인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예찬의 목소리까지 나와 피해자들의 울분에 기름을 붓고 있다.

4.3이 이슈가 된 지금, 툭 튀어나온 '이승만 추앙'
 
16일 <동아일보> A30면에 실린 김순덕 대기자의 칼럼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16일 <동아일보> A30면에 실린 김순덕 대기자의 칼럼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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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자 <동아일보> 지면에는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라는 제목의 '김순덕 칼럼'이 실렸다. 비록 칼럼은 표면적으로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맺은 이승만'을 찬양하지만, 4.3에 대한 책임론이 사회적 화두로 대두된 이 시기에 주요 일간지에서 그를 예찬하는 글이 실렸다는 사실은 함의하는 바가 크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계엄법이 제정되지도 않았던 1948년 11월 17일 시점에 제국 일본의 법제를 근거로 제주도 지역에 계엄령을 선포했다. 계엄령 아래서 무소불위의 힘을 얻게 된 토벌대는 중산간 지역의 마을들을 초토화하고, 제주도민들을 살해·강간했다.

그 어떤 미사여구로 변호를 시도한들, 당시 제주도에서 행해진 대규모 학살에 대해 국가원수이자 국군통수권자인 대통령 이승만이 갖는 책임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런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대하다'며 노골적으로 칭송하는 <동아일보> 칼럼이, 다른 때도 아니고 4.3책임 관련 논쟁으로 정국이 달아오른 이 시기에 게재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집권여당의 국회의원이자 최고위원 후보인 인물이 4.3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외면하고, 색깔론을 끄집어 내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 이를 개인의 돌출된 언동으로 평가할 수 있을까. 태 의원이 전당대회에서 지지를 얻기 위해 4.3의 책임을 김일성과 북한 당국에 돌릴 수 있는 배경엔 여전히 우리 사회에 견고한 '이승만 국부론'이란 역사관이 자리잡고 있어 보인다(관련 기사: '명백한 독재자' 추켜세우는 대선정국, 코미디이자 비극).

이번 <동아일보> 칼럼은 "좌파가 폄훼한 대통령 이제는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의 치적들을 나열한다. 이 전 대통령이 "공산주의의 실상을 꿰뚫어" 보고 남한에서라도"민주주의 정부"를 세웠을 뿐만 아니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쟁취"한 덕에 "우리는 경제 발전에 매진해 오늘의 번영을 누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칼럼은 거듭 이승만 전 대통령을 "위대하다"고 치켜세운다. 칼럼 어느 문단에서도, 이승만 정권 당시 자행되었던 반인륜적 범죄들에 대한 문제의식은 없다. 

민주주의 정권? '역행'을 하나하나 읊어드리겠다
 
4.3사건 당시 다수의 도민들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처형, 고문, 투옥, 강간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초법적으로 발령한 1948년 11월 계엄령 이후 토벌대에 의한 초토화 작전이 본격화되었다.
▲ 처형 대기 중인 제주도민들(1948년 5월) 4.3사건 당시 다수의 도민들이 정당한 법적 절차 없이 처형, 고문, 투옥, 강간 피해를 입었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초법적으로 발령한 1948년 11월 계엄령 이후 토벌대에 의한 초토화 작전이 본격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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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궁금해진다. 사악한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이승만 전 대통령이 세웠다는 민주주의란 도대체 무엇일까. 적어도 필자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에서 생각해보자면,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혹은 반대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자국민을 탄압하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정권 창립·유지에 방해가 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국민들을 죽음으로 몰았다(4.3사건 및 여순사건 진압, 보도연맹 학살 등등).

- 한국전쟁 발발 후에는 서울에서 후방으로 도주하면서도 시민들을 속이고 퇴로를 끊어 희생자를 극대화시켰다(한강인도교 폭파).

- 점령 지역 수복 후에는 당시 남겨졌던 시민들을 상대로 부역자 처단 명목의 학살을 자행했다(다수의 한국전쟁기 학살사건).

- 거기에, 정적에 대한 사법살인에도 거리낌이 없었다(이종찬 육군참모총장 포살시도, 조봉암 사형 등).

- 집권연장이 위태로워지자 친위쿠데타 및 초법적 개헌을 강행하기까지 했으며(부산정치파동, 사사오입 개헌 등).

- 견디다 못해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온 시위대에 의해 혁명으로 축출되기에 이르렀다(4.19혁명).


이런 지도자가 바로 이승만 전 대통령이었다. 단순 사실만 돌아봐도 이때의 정권이 추앙할 만한 민주주의 정권이었다고는 평가할 수 없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를 역행하는 다수의 만행들을 저질렀음에도 여전히 그를 국부로 예찬하며 긍정하는 이들이 다수 존재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지점이다.

북한 정권에 대한 적개심이 곧 표심으로 직결되는 이들에게 있어, 이승만 정권의 실상이 '무오류 수령'에 반기 든 이들을 '미제간첩'이나 '반동분자'로 몰아 숙청했던 북한 정권과 다를 바 없었다는 것은 견디기 어려운 사실일지도 모른다. 이 진실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스스로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 테니까.

이대로 우리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논할 수 있을까
 
3.15 부정선거 개표결과 이승만 대통령 4선 당선,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보도한 기사.
▲ 1960년 3월 17일자 동아일보 3.15 부정선거 개표결과 이승만 대통령 4선 당선, 이기붕 부통령 당선을 보도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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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치공학적 이해에 따른 것이든 혹은 신념에 따른 것이든 이승만 전 대통령의 만행에 눈을 감고 당시의 정권을 무작정 예찬하는 건 대한민국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우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유린했던 정권을 국가정통성의 토대로 세우고, 그 지도자를 국부로 숭상하는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인권의 가치를 감히 논할 수 있을까. 스스로의 흑역사도 정리하지 못한 나라가 타국의 역사인식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을까. 이승만 정권에 의해 가족과 터전을 잃고 이국을 떠돌게 된 유족들조차 품지 못하는 나라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헌법 조문을 당당하게 내세울 수 있을까(관련기사: 일본에서 만난 4.3유족의 불신... 태영호에게 묻는다).

독재정권에 맞서 시민들이 쟁취했던 민주주의적 가치, 그리고 그 민주주의적 가치를 토대로 공들여 쌓아왔던 대한민국의 현재 위상을 생각한다면, 우리 사회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승만 정권과의 결별과 단절이 요구된다. 그것이 4.3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의 진정성 그리고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대한민국의 의지를 세계에 천명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믿는다.

태그:#이승만, #독재자, #극우, #재평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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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논리에 함몰된 사측에 실망하여 오마이뉴스 공간에서는 절필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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