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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 취한 시민이 거리에서 숨지는 일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찰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됐습니다. 이와 관련해 현직 경찰관이 현장에서 겪는 고충과 필요한 법 정비 등의 의견을 보내와 싣습니다. 독자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 및 반론 또한 환영합니다.[편집자말]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한 편의점 앞에 설치된 테이블이 각종 쓰레기로 더럽혀져 있다.
 경기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한 편의점 앞에 설치된 테이블이 각종 쓰레기로 더럽혀져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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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취자(취객) 보호조치와 관련해 언론에서는 경찰의 조치가 미흡해 주취자가 사망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잇달아 보도하고 있습니다. 기사 내용을 살펴보면 분명 경찰의 조치가 미흡했던 점이 있지만, 법령의 미비 혹은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 부득이한 상황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30년 넘게 현장 경찰관으로 근무하며 가장 어렵고 힘든 업무를 하나 꼽으라고 한다면 주취자 보호 및 처리를 택할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찰관들도 비슷한 의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경찰관 직무집행법(아래 경직법) 제4조에는 보호조치 규정이 있습니다. 정신착란자, 술에 취해 자·타해 위험성이 있는 사람, 자살기도자, 미아, 병자, 부상자 등으로 보호자가 없고, 응급구호가 필요한 사람은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에 긴급구호를 요청하거나 경찰관서에 24시간 동안 보호를 할 수 있다고 돼 있습니다. 긴급구호 요청을 받은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긴급구호를 거절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같은 현행 경직법 보호조치 조항 내용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첫째, 보호조치 대상자를 보호할 시설 등이 전혀 구비돼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현실에선 수시로 사건 관계인들이 출입하고, 총기와 탄약 등을 보관하고 있으며, 전문적인 의료지식이 없는 경찰관들이 근무를 하는 경찰관서에서 보호조치를 해야 하는 겁니다.

경찰관서에서 보호조치를 하려면 최소 한도의 보호시설이 구비돼야 합니다. 의료 전문가들이 근무하고 있어야 불의의 사고를 예방할 수 있습니다. 과거 경찰관서에서 주취자를 보호조치 하던 중 대상자가 기도가 막혀 사망했고, 이에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해 국가가 배상한 사례가 있습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혼란... 덩그러니 남는 경찰

둘째, 경직법에서는 긴급구호 요청을 받은 보건의료기관이나 공공구호기관은 정당한 이유없이 긴급구호를 거절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지만, 구호요청을 거부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합니다.

보호조치 대상자들 중 정신착란, 자살기도자의 경우 경찰관이 관련 법령에 따라 응급입원을 시킬 수 있으나 문제는 술에 취한 사람, 즉 주취자입니다. 경직법에서는 술에 취해 자신 또는 다른 사람의 생명·신체 재산에 위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사람을 보호조치 대상자로 봅니다.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시행규칙 별표1 '응급증상 및 이에 준하는 증상' 다항에는 알콜 또는 기타 물질의 과다 복용이나 중독을 응급환자로 분류합니다. 응급의료에관한 법률 제6조에 따라 응급의료종사자는 정당한 사유없이 응급의료를 거부하지 못하지만, 일선 현장은 혼란합니다. 소방과 경찰, 소방과 병원, 경찰과 병원이 이를 놓고 다툼을 벌이는 경우가 종종 발생하고 있습니다.

부산경찰 직장협의회에서는 경찰과 소방의 업무 중 가장 큰 애로점으로 꼽고 있는 주취자 처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소방노동조합과 '효율적인 주취자 처리를 위한 기관간 정책간담회'를 개최한 적이 있습니다. 최일선 현장에서 주취자를 처리하고 있는 경찰과 소방이 만나 상호 기관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고 개선점을 모색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당시 경찰 측에서는 '외상이 없는 주취자가 노상에 쓰러져 있다는 신고가 접수되면 우선 흔들어 깨우고, 외표검사 등을 통해 신분증이나 휴대폰을 찾아 주거지가 어디인지, 가족이 있는지 등 여부를 조사해 주고, 가족 등이 확인되면 안전하게 인계를 해주면 업무가 끝이 나는데, 주취자가 신분증도 없고 휴대폰도 없는 경우 어려움이 많다'고 밝혔습니다. 

이럴 땐 주취자를 깨워 집이 어디인지, 가족 연락처가 어떻게 되는지 수십번을 물어보아도 답을 하지 않아 할 수 없이 119에 병원 이송을 요청하게 됩니다. 소방이 현장에 출동해 맥박, 혈압 등을 측정하고 외상이 없는 경우나 본인이 병원에 가지 않겠다고 거부하면 구조구급거부사실확인서를 작성하고 철수하는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면 현장에는 경찰관만 덩그러니 남는데 어떻게 처리를 해야 할지 앞이 막막합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선 주취자를 처리하는 데 1-2시간, 심지어는 3-4시간이 걸려 112 순찰차가 묶여있습니다. 긴급한 112 신고를 접수 받고도 출동을 못하는 일이 생깁니다. 물론 소방 측의 입장에서 보면, 119구급대대로 주취자를 응급의료 기관으로 이송했을 때 외상이 보이지 않으면 병원 측에서 받기를 거부한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경찰과 소방은 주취자를 병원으로 이송을 하고 싶어도 병원 측에서 의사가 없다거나, 병실이 없다거나, '행패를 부리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등의 이유를 들어 받기를 거부합니다. 이런 입장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모두가 나 몰라라 하고 뒤로 빠지면 결국 경찰관만이 주취자 처리의 모든 책임을 오롯이 다 짊어지게 됩니다.

주취자 보호 위한 법률 제·개정 등 필요
 
정학섭 부산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대표
 정학섭 부산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대표
ⓒ 정학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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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주취자를 효율적으로 보호하는 법률이 없습니다. 일본의 경우 '술에 취해 공중에 피해를 끼치는 행위의 방지 등에 관한 법률'이 있어 경찰이 효과적으로 주취자를 보호·처벌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렇지 못합니다. 경직법상 보호조치 규정 외에는 다른 법률이 있지 않아 경찰이 실제 주취자를 처리하는 데 상당한 힘이 듭니다.

경범죄처벌법 제3조제1항 20호(음주소란)에 따르면 '극장·음식점 등 여러 사람이 모이거나 다니는 곳 또는 여러 사람이 타는 기차 자동차·배 등에서 몹시 거친 말이나 행동으로 주위를 시끄럽게 하거나 술에 취해 이유 없이 다른 사람에게 주정한 사람'을 1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과태료로 처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조항이 있어도 본인의 주거지에서 술에 취해 큰소리로 떠들어 이웃 주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 마땅히 제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2022년 부산경찰청 112범죄신고센터에 접수된 주취자 관련 112 신고가 1만6606건으로 하루 평균 45건입니다. 특히 금·토요일에는 유흥가를 관할하는 지구대에 주취자 신고가 폭증합니다. 이로 인해 다른 신고 처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나마 최근 3년간은 코로나19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가 시행돼 주취자 신고가 줄어들었습니다. 

통상적으로 쓰러진 주취자를 지나가는 시민이 목격하면 안전이 걱정돼 112 신고를 하게 되고, 이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현장에 출동해 주취자 상태를 살펴봅니다. 외상 등이 없다면 우선 흔들어 깨우고, 신상 등을 물어보게 됩니다. 다행히 휴대폰에 저장된 가족 연락처를 알아내 가족에게 전화를 하거나 본인이 경찰관 물음에 답을 해 주면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인사불성으로 대답을 하지 않는 만취자가 다반사입니다. 현장 경찰관은 불가피하게 주취자의 인적사항 등을 알아내기 위해 소지품 검사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가족에게 인계를 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분증도 없이 휴대폰마저 잠겼다면 주취자의 인적사항을 확인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걸립니다. 그런 과정에서 욕설도 여러 번 듣습니다. 때로는 왜 주머니를 함부로 뒤지는가라는 항의와 함께 폭행도 벌어지는 실정입니다.

지금까지 일선 현장에서 오랜기간 근무하며 느낀 문제점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해결책도 제시해 보겠습니다. 우선 술을 많이 마시는 즉 1차, 2차, 3차까지 이어지는 음주문화와 음주한 상태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관대하게 보는 문제부터 바꿔야 합니다. 형법 제10조(심신장애인) 제2항에서 '심신장애로 인해 전항의 능력이 미약한 자의 행위는 형을 감경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는 조항 또한 개정돼야 할 것입니다.

그 다음 주취자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의 제·개정이 필요합니다. 경찰관은 법을 현장에서 집행하는 사람들입니다. 법적근거가 없고 법과 제도가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업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습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경찰관서에 24시간 보호조치할 수 있다는 조항을 삭제하거나, 경찰관서에 보호시설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주취자를 효율적으로 보호 내지 규제·처벌할 수 있는 법률 제정이 필요합니다. 

최근 주취자 논란을 보면서 느끼는 현장의 답답함을 이렇게나마 전합니다.

정학섭 부산 16개 경찰관서 직장협의회 대표·부산북부경찰서 직장협의회장(경감) 

태그:#주취,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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