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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활동해 온 카이 도시오씨의 모습. 모임을 발족한 2005년(왼쪽)과 2021년 10월(오른쪽) 모습.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결성해 활동해 온 카이 도시오씨의 모습. 모임을 발족한 2005년(왼쪽)과 2021년 10월(오른쪽) 모습.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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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죽는 날까지 남은 생 동안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할 겁니다."

20여 년 동안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명성황후 시해범을 추적해온 카이 도시오씨가 16일 오전 별세했다. 향년 95세.

중학교 교사로 일하던 카이 도시오씨(甲斐利雄)는 1980년대 어느 날 아소산 국립공원에서 한 한국인을 만났다. 그 한국인으로부터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대한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 처음 듣는 얘기인 데다 시해에 가담한 대부분이 구마모토현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실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48명의 일본인 중 21명이 구마모토현 출신이다. 카이씨는 이때부터 수십 권의 책과 논문을 찾아 읽었다. 교사 퇴직 후인 지난 2004년에는 직접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을 발족했다. 이후 일본 내에서 시해 사건의 진실을 알리고 시해범을 찾는 일에 전념했다.

그는 또 아소산 국립공원에 세워진 한 기념비에서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것을 치적으로 기록한 인물(마츠무라 다츠키, 1868~1937)을 찾아내 기념비 삭제를 요구하기도 했다.

"일본 국민은 역사를 더 잘아야"
     
그는 명성황후를 추모하는 일에도 매달렸다. 2005년을 시작으로 코로나19로 왕래가 끊이기 전인 지난 2019년까지 매년 10여 명의 회원을 이끌고 명성황후가 묻힌 경기도 홍릉을 찾아 참배했다. 방한 때마다 한국독립기념관도 꼭 들렀다. 방문 횟수는 16번에 다다른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후손을 찾아 설득해 함께 참배하기도 했다. 당시 이 일은 한일 언론에 각각 '110년 만의 가해 후손의 참회'라는 제목으로 크게 다뤄졌다.

그는 코로나19와 투병으로 거동과 왕래가 불편한 때에도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의 마지막 관련 공식 행적은 지난 2021년 10월 8일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 126주년인 이날 그는 일본 구마모토현의 '한일문화교류센터 구마모토'에서 열린 명성황후 추모기념식에 참석, 참배한 후 마지막 강연을 했다. 그의 명성황후시해사건 관련 마지막 강연이었다.

마지막 강연이 될 것 같다고 예견한 그는 이날 유언처럼 이렇게 당부했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은 일본이 어떻게 한국을 식민지로 만들고 한국인, 조선인을 어떻게 차별하는지를 생각하는 단체입니다. 일본 권력은 자꾸 역사를 숨기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 국민은 역사를 더 잘 알아야 합니다. 과거 역사를 배우고 직시하며 한·일이 우호적이어야 일본에 진정한 평화와 발전이 있습니다."

빈소는 구마모토현 아소시에 있는 장례식장(세이호인 아소사이죠,清峰院 阿蘇斎場) 으로 발인은 오는 18일이다(清峰院 阿蘇斎 場 〒862ー2612 阿蘇市一の宮町宮地4375ー1).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과 교류 활동을 해온 대전과 충남지역 시민단체에서도 조전을 통해 조의를 표명할 예정이다.
 
카이 도시오씨가 생전 명성황후 시해자 명단을 열거한 후 시해자들이 시해 사건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카이 도시오씨가 생전 명성황후 시해자 명단을 열거한 후 시해자들이 시해 사건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 심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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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카이도시오, #명성황후를 생각하는 모임, #구마모토, #시해범,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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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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