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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올해 첫 국무회의에서 개회 선언을 하고 있다.
ⓒ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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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란 누구인가. 표준국어대사전엔 '가문이나 신분 따위가 좋아 정치적·사회적 특권을 가진 계층, 또는 그런 사람'으로 정의돼 있다. 

요즘시대의 대표적 귀족으로는 '재벌집 막내아들' 같은 재벌가를 꼽을 수 있겠다. 엄청난 부를 세습해 날 때부터 사는 세상이 다른 사람들. 그 엄청난 돈으로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그들은 말 그대로 좋은 핏줄 타고나 특권을 가진 자들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도 귀족들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할아버지 국회의원, 아들 국회의원인 집안의 손자는 음주운전에 경찰폭행 범죄까지 저질렀다. 세상 두려울 것 없는 귀족 집안이다 보니 가능한 일일 것이다. 자녀를 수억 원짜리 국제학교에 보내고, 고교 재학 시절 해외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고, 위조와 허위로 스펙을 쌓아주려는 정치권 부모들의 행태는 결국 자신의 귀족적 특권을 물려주려는 행위다. 21세기 대한민국에 귀족이 있다면 바로 이들일 것이다.

귀족들이 노조를 만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귀족들이 노조를 만들었다고 한다. 노조는 노동조건의 유지·개선 및 기타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목적으로 조직한 단체다. 그렇다면 귀족들이, '재벌집 막내아들'이, 자기 노동조건의 개선을 목적으로 단체를 조직했다는 것인가.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에도 노조는 나온다. 막내아들은 자기 말 한마디로 수많은 노동자를 자를지 말지를 결정할 수 있는 엄청난 권력을 가진 자이고, 노조는 정리해고 철회하라며 웃통 벗고 길바닥 드러누워 시위하다 경찰방패에 찍혀 피를 흘리는 사람들이다. 막내아들은 사용자이기 때문에 법적으로 노조에 가입할 수도 없을뿐더러, 설사 노동자라 하더라도 스스로 힘이 있기 때문에 굳이 노조가 필요치 않다.

하지만 그 피 흘렸던 노동자들은 자기 생존을 지키기 위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바로 노조다. 각자는 힘이 없으니 뭉칠 수밖에 없고, 이대로 살 수 없다고 목소리를 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용자 책임을 요구하는 플랫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
▲ 플랫폼노동자대회 사용자 책임을 요구하는 플랫폼노동자대회에 참여한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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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이 아닌 나도 노조를 하고 있다. 내가 하는 배달일은 상당히 위험한데, 배달로 돈을 버는 회사는 이걸 근본적으로 개선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플랫폼만으로 통제하는 회사들은 평소엔 배달료를 2500원 주다가 주문이 몰리는 피크타임엔 5000원, 1만 원을 주며 속도경쟁을 부추긴다.

그래서 라이더들은 피크타임에 한 건이라도 더 하기 위해 교통법규 무시하고 위험한 질주를 하게 된다. 과속하는 라이더에게 일감이 우선 배정되는 건 아닌지 알고리즘 모니터링도 필요한데 그런 건 영업비밀이라면서 알려주지 않는다. 동네별 지사를 두고 운영하는 곳은 안전교육, 산재보험은 아예 무시하며 사고책임도 온전히 라이더에게 전가하는 경우가 잦다. 귀족이 아닌 라이더들은 나의 안전과 생존을 지키기 위해 노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귀족노조라 불렸던 사람들의 면면

최근 윤석열 정부가 귀족노조의 파업이라 칭했던 노조들을 살펴보자. 지하철노조는 승객 및 승무원 안전을 위해선 인력충원이 필요한데 공사는 오히려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해 파업에 나섰고, 철도노조 또한 작업 중 발생한 사망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인력충원을 요구하며 파업을 결정했었다. 코로나 최선봉에 섰던 병원노동자들도 인력충원과 노동환경개선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었다. 하루 15시간, 한 달 일해서 300만 원을 받는 화물노동자가 귀족일 수도 없다.

안전하게 일하고 싶어서 파업까지 벌여야 하는 사람들이 귀족노조인가. 윤석열 대통령이 노조를 안 해봐서 모르는 모양인데, 노조를 하려면 돈 들고 시간 들고 회사에서 찍히고 잘못하면 쫓겨날 수도 있다. 그런 걸 감수하면서 노조하는 노동자가 귀족이라니. 이 정부가 말하는 귀족노조는 대체 어디 있는가?

대한민국 헌법은 노동조합을 노동자의 권리로 명시한다. 노동조합을 만들 수 있는 권리, 사용자에게 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단체행동을 할 수 있는 권리가 그것이다.

이러한 권리가 보장된 이유는 사회적 균형을 위해서다. 사용자 쪽으로 힘이 기울면 그 만큼 노동자들의 삶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에선 그 권리가 간단히 무시된다. 일단 비정규직은 노조하기 어렵다. 언제 잘릴지 모르기 때문이다. 비정규직도 아닌 특수고용노동자는 아예 노조로 인정받는 것부터가 전쟁이다. 노조가 되더라도 사측이 교섭 장에서 입을 닫고 있으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쿠팡이츠의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쿠팡3사 노조와 공동을 벌였다.
▲ 쿠팡 성실교섭 촉구 공동행동 쿠팡이츠의 성실교섭을 촉구하는 라이더유니온 조합원들이 쿠팡3사 노조와 공동을 벌였다.
ⓒ 라이더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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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더유니온도 '쿠팡이츠'와 1년 반 째 교섭 중이다. 단체행동을 하면 되지 않냐고? '쿠팡이츠' 등록자가 28만 명 수준이다. 특수고용 쪽은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아 무한정으로 인력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모래 속 바늘 같은 존재인 조합원들이 파업을 한다 한들 회사에 얼마나 영향을 줄 수 있겠나. 본사 잘못으로 앱이 먹통이 돼 일을 못했던 '바로고' 라이더들은 각각 동네별 대행업체에 소속돼 있다 보니, 본사와 교섭할 수 있는 권한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이런 세상은 '노조'가 아니라 '귀족'들이 만든 것이다.

귀족에겐 노조가 필요 없다. 따라서 귀족노조는 이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귀족노조를 운운하는 것은 노조혐오, 노조포비아를 양산하려는 의도일 뿐이다. 그러니 그 가당치도 않은 말은 즉각 폐기하는 게 맞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라이더유니온 사무국장입니다.


태그:#귀족노조, #윤석열, #라이더유니온, #노동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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