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과 작별한 김태형 감독 두산 베어스가 프로야구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이끈 김태형 감독과 작별했다. 두산은 11일 "팀의 장기적인 방향성 등을 고려해 김태형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며 "구단 전성기를 이끌어준 김태형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사진은 지난 7월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키움과 두산의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가 작전 지시를 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김태형 감독.

▲ 두산과 작별한 김태형 감독 두산 베어스가 프로야구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이끈 김태형 감독과 작별했다. 사진은 지난 7월 7일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2 프로야구 키움과 두산의 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가 작전 지시를 한 뒤 더그아웃으로 돌아오는 김태형 감독. ⓒ 연합뉴스

 
한 시대의 왕조가 막을 내렸다. 프로야구 두산 베어스를 KBO리그 역사상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었던 '곰탈여우' 김태형 감독이 두산을 떠난다. 두산 구단은 지난 10월 11일 "팀의 장기적인 방향성 등을 고려해 김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 구단 전성기를 이끌어준 김 감독의 노고에 감사드린다"고 전했다. 두산은 조만간 새로운 감독을 인선할 예정이다.
 
김태형 감독은 두산 역사의 산 증인이다. 신일중고와 인천전문대를 거쳐 1988년 2차 4라운드로 두산의 전신인 OB에 지명되어 프로 생활을 시작한 김 감독은, 1990년 데뷔 이래 2001년 은퇴하기까지 오직 베어스의 유니폼만 입고 활약했던 '원클럽맨'이었다. 스타급 플레이어는 아니었지만 견실한 수비력과 투수 리드능력을 바탕으로 1990년대를 대표하는 수비형 포수로 활약하며 '포수왕국' 두산 역대 계보의 한 축을 담당했다. 뛰어난 리더십으로 주장까지 역임하며 2번의 우승(1995, 2001)에도 기여했다.
 
김 감독은 현역 은퇴 이후로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3년간 배터리코치를 했던 기간을 제외하면, 코치-감독까지 무려 31년간 줄곧 두산에서만 활약했다. 2015년 송일수 감독의 후임으로 두산의 10대 감독에 취임한 김 감독은 2022시즌까지 8년간 팀을 이끌며 구단 역사상 최고의 명장반열에 올랐다.
 
김 감독은 재임기간 동안 정규시즌에서 645승 19무 485패를 기록했고, 팀을 부임이래 7년 연속 한국시리즈로 이끌며 3차례 정규시즌 우승과 3차례 한국시리즈 우승(2015~2016, 2019), 4차례의 준우승을 거뒀다.
 
김 감독이 부임하기 전에도 두산은 물론 강팀이었지만 확실한 우승후보라기에는 2% 부족한 면모가 있었다. 당시 프로야구를 호령하던 SK와 삼성 등에 한국시리즈에서 번번이 밀리며 '2인자'의 이미지가 강했고 전임 송일수 감독 시절에는 6위로 가을야구 진출까지 실패하며 부침을 겪고 있었다.
 
김 감독은 부임 첫해 삼성의 통합 5연패를 저지하며 팀에 14년 만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안겼고, 이듬해는 NC 다이노스를 상대로 4연승을 거두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2연패를 달성했다. 2017~2018년에는 KIA와 SK에 밀려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으나 2019시즌에는 정규리그에서 SK에 무려 9게임 차이의 열세를 뒤집고 극적인 역전우승을 차지한 데 이어 다시 한번 한국시리즈까지 제패했다.
 
2020년과 2021년에는 또다시 준우승에 그치기는 했지만, 전력상으로 우승을 노리기 어렵다는 평가를 극복하고 포스트시즌에서 상위권팀들을 격파하며 기어코 또다시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신들린 용병술 선보였던 2021년 포스트시즌

해마다 FA로 인한 전력유출이 계속되고 외부로부터의 선수보강은 거의 없는 악재속에서도 꾸준히 정상급 성적을 기록한 것은 김태형 감독의 영향력이 컸다는 평가다. 특히 사상 최초로 와일드카드(WC) 결정전부터 시작해 한국시리즈까지 오르는 기록을 세웠던 2021년 포스트시즌에는 그야말로 손만 대면 신들린 듯 적중하는 신들린 용병술을 선보이며 '곰의 탈을 쓴 여우'라는 극찬을 받았다.
 
두산은 '김태형 시대'에 명실상부하게 KBO리그 역사에서 해태(1980~1990년대), 현대(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SK(2000년대 후반), 삼성(2000년대 초중반~2010년 초중반)을 잇는 '5번째 왕조'의 반열에 올랐다는 평가다.
 
두산도 그동안 구단 역사상 최고의 성적을 안겨준 김 감독을 충분히 예우했다. 2016년 시즌을 마친 뒤 당시 두산 사령탑 역대 최고액인 3년 총액 20억 원에 재계약했고, 세 번째 한국시리즈 우승을 한 2019년 시즌이 끝난 뒤 두산과 KBO리그 역대 사령탑 최고 대우인 3년 28억 원에 재계약했다.
 
다만 올 시즌에는 60승 82패 2무, 승률 .423을 기록하며 9위의 성적으로 정규리그를 마쳤다. 두산이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한 건 2014년(6위) 이후 8년 만이었고 김 감독 부임 이후로는 최초였다. 82패는 두산 구단 역사상 단일시즌 최다패이자, 9위도 10개 구단 체제가 도입된 이후 창단 이래 가장 낮은 순위이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의 성적을 놓고 야구계 전문가와 팬들도 김태형 감독의 책임이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 사실 두산은 몇 년 전부터 주축 선수들의 노쇠화와 저조한 전력보강 등으로 이미 2~3년 전부터 크게 흔들렸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지금까지 버텨올 수 있었다는 것은, 그나마 김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두산이 김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았다는 소식에 많은 이들이 놀란 이유다.
 
물론 김태형 감독도 당연히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김 감독을 둘러싼 비판과 논란은 주로 성적보다는 그의 개인적 언행이나 태도와 관련해서 발생했다. 국내야구계에서 몇 안 남은 올드스쿨형 타입이자 카리스마형 지도자로 꼽히는 김 감독은, 종종 언론에서 부진한 선수들을 직설적으로 비판하거나, 덕아웃에서 대놓고 호통을 치는가 하면 거친 스킨십 등으로 종종 구설수에 휘말렸다. 심지어 경기 중 상대 선수와 코치에게도 쓴소리를 하다가 프로야구 초유의 '감독 벤치클리어링'을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두산 선수단 사이에서 김 감독의 인망과 장악력은 매우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형 시대의 두산은 비록 일부 선수들이 과거사를 둘러싼 약물-학폭 논란으로 구설수는 있었지만, 선수단 내부에서 벌어진 갈등이나 워크에씩(직업윤리)과 관련하여 잡음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재원-김재호 등을 주축으로 자율과 책임이 균형을 이룬 덕아웃 문화가 자리잡았다. 김 감독 본인도 경력이 쌓이고 고참급 감독이 되어가면서 과격한 언행으로 비롯된 실수가 줄어들고 한층 성숙해졌다는 평가다.
 
역대 왕조 감독들의 징크스 넘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이 김태형 감독과 결별을 선택한 이유는 단지 올해의 성적 부진을 문제삼았다기보다는 분위기 전환의 의미가 크다. 역대 어떤 강팀이나 명장도 기간이 길어지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마련이다.
 
올시즌 들어 선수단 내의 사건사고와 부상자 관리 등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김 감독의 선수단 장악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때마침 두산이 오랜만에 가을야구에 탈락하며 오랜만에 일찍 오프시즌을 맞게 되었고, 오재원-이현승 등 베테랑 선수들이 잇달아 은퇴하면서 본격적인 선수단 물갈이를 위한 계기가 마련됐다.
 
구단이 '새판짜기'를 모색할 때 가장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리더십 교체이기도 하다. 김 감독의 계약기간이 만료되며 두산은 토사구팽이라는 부담을 덜고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할 수 있게 됐다.
 
김 감독이 두산을 떠난다고 해도 시간의 문제일 뿐 재취업의 가능성은 매우 높다. 일단 올시즌 이후 공석이 되는 구단만 5개팀이다. 정규리그 1위를 차지한 SSG(김원형)를 비롯해 LG(류지현), 키움(홍원기), 현재 감독대행 체제로 운영 중인 삼성(박진만)과 NC(강인권) 등이 있다. 현재 대부분 팀성적이 좋거나 기존 사령탑들에 대한 평가가 우호적이기는 하지만 향후 올해 포스트시즌 성적이나 구단의 방향성에 따라 얼마든지 결정은 달라질 수 있다. 계약기간이 남아있지만 팀성적이 좋지 않았던 롯데(래리 서튼), 한화(카를로스 수베로) 등도 후보가 될 수 있다.
 
관건은 김태형 감독이 역대 왕조 감독들의 징크스를 넘을 수 있느냐에 달렸다. 김재박 감독(현대→LG), 김성근 감독(SK→한화), 류중일 감독(삼성→LG) 등 역대 왕조를 이끌며 명장 반열에 올랐던 감독들은 전성기를 보낸 팀을 떠난 후 다른 팀으로 옮겨서는 하나같이 힘을 쓰지 못했다. 단지 우승을 못한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이전 팀에서 쌓은 명성까지 깎아먹으며 굴욕을 당했다는 게 공통점이다.
 
KBO리그 역대 최다승 감독이자 최초로 두 팀에 걸쳐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김응용 감독(해태-삼성)조차 말년에 한화 사령탑으로 복귀했다가 2년 연속 꼴찌에 그치며 초라하게 물러나는 기록으로 망신을 당했다. 이는 야구계에게 '명장 거품론'을 불러오며 감독의 역할과 비중에 대하여 회의적인 시선이 나오는 계기가 됐다.
 
김태형 감독 역시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이라는 놀라운 업적이 '김태형의 두산'이라서 가능했는지, 아니면 '두산의 김태형'이었던 덕분인지는 앞으로 증명해야할 대목이다.
 
또한 현역 최고의 명장으로 꼽히던 김 감독을 떠나보낸 두산이 과연 어떤 신임 감독을 영입할지도 관심사다. 슈퍼스타 출신이지만 지도자 경험이 없는 '국민타자' 이승엽(최강야구) 등 여러 감독 후보군의 이름이 벌써부터 물망에 오르고 있지만, 누가 사령탑이 되더라도 전임 감독의 업적과 비교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저찻 '독이 든 성배'가 될 가능성이 높기에 큰 부담이다.

나가는 FA 대어 선수를 굳이 붙잡지 않기로 유명했던 두산은 과연 FA 감독이 된 김태형 감독의 공백도 충분히 메울 수 있다는 자신이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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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감독 두산베어스 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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