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2022 KBO리그 kt wiz와 KIA 타이거즈의 경기에서 이날 은퇴하는 KIA 나지완이 8회말에 대타로 나서 타격하고 있다.

KIA 나지완 ⓒ 연합뉴스


운동선수에게 은퇴는 누구나 한번은 피할 수 없는 결말이다. 선수들은 얼마나 잘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마무리했느냐에 따라 평가가 전혀 달라지기도 한다. 선수들이 각자 평생에 걸쳐 이뤄낸 커리어의 가치란, 그들이 운동장에서 흘렸던 노력과 열정의 총량과 비례한다. 평범한 선수에서 슈퍼스타까지, 꿈을 이루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고 최선을 다했던 선수들과의 이별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2022 프로야구 페넌트레이스를 마감하는 마지막 주말의 화두는, 떠나는 선수들과의 '라스트 댄스'였다. 이대호(롯데 자이언츠), 오재원(두산 베어스), 나지완(KIA 타이거즈) 등 각팀을 대표하는 프랜차이즈 스타들이 올시즌을 끝으로 잇달아 은퇴를 선언하면서 마지막 홈경기에서 팬들과 작별의 시간을 가졌다. 세 선수 모두 KBO리그에서 오직 한 팀의 유니폼만을 입고 활약했던 원클럽맨이기도 하다.
 
나지완이 지난 7일에 KT 위즈와 홈 경기에서 먼저 은퇴식을 치렀다. 2008년 데뷔한 나지완은 15시즌 동안 KIA에서 활약하며 통산 1472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7, 221홈런, 862타점, 668득점의 성적을 남겼다. 타이거즈 타자 역대 최다 홈런(221개) 기록 보유자이자, 2009년과 2017년 KIA의 한국시리즈 우승멤버이기도 하다.
 
나지완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인생경기는 역시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에서 떠트린 끝내기 홈런이다. 당시 나지완은 6차전까지 타율 1할대로 극도의 부진을 보였으나, 4잠차로 끌려가던 마지막 7차전에서만 홈런 2방을 터뜨리는 맹활약을 선보이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5-5로 맞선 9회말 1사에 SK 채병용의 6구를 잡아당겨서 담장을 넘기는 135M짜리 결승홈런을 터뜨리며 4시간 반에 이르던 대혈투의 마침표를 찍었다.
 
이 한방으로 나지완은 KIA에 해태 시절 이후 무려 12년만에 우승을 안긴 영웅이 되었고, 외국인 선수 아퀼리노 로페즈를 제치고 한국시리즈 MVP까지 차지했다. 나지완의 결승홈런은 역대 한국시리즈 최고의 명장면을 거론할 때 빠지지 않는다.

은퇴식에서도 나지완의 2009년 한국시리즈 결승홈런 순간을 재현한 퍼포먼스가 나왔다. 나지완이 타석에 들어서자 전광판에는 2009년 한국시리즈 7차전 당시 나지완의 모습이 등장했다. 나지완은 잠시 과거로 돌아가 힘차게 배트를 돌린 뒤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마운드를 돌며 '그때 그시절'의 영광스러운 순간을 똑같이 재현했다. 타이거즈 동료들도 나지완이 홈 베이스에 들어서자 그때와 똑같이 물세례를 퍼부으며 축하했다. 12년전에는 감동의눈물바다었다면, 이번에는 유쾌한 웃음이 가득했다.
 
나지완은 대표 응원가였던 '나는 나비'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동반자인 아내 양미희씨-아들과 함께 등장하여 레드카펫 위에 설치된 단상에 서서 담담히 은퇴 소감을 전했다."저 이제 떠난다"라고 웃으며 말을 시작한 나지완은 "1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KIA 선수로서 너무 과분한 사랑을 받았다. 우리 아들이 꼭 야구하는 모습을 봤으면 하는 생각으로 간절한 바람으로 하루하루 버텼다. 지금까지 저를 도와주신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는 진심어린 소감을 전했다.
 
KIA 선수단은 이날 나지완의 등번호인 29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입고 출장했으며, 모두 함께 나지완을 헹가래하며 프랜차이즈스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했다. KIA는 나지완의 고별전에서 승리와 함께 가을야구 진출을 확정하며 레전드를 떠나보내는 유종의 미를 거뒀다.

9일에는 '두산 왕조의 캡틴' 오재원이 키움 히어로즈와의 경기가 열린 잠실구장에서 은퇴식을 치렀다. 16시즌 동안 두산에서 활약한 오재원은 신인드래프트 '꼴찌픽' 출신의 설움을 이겨내고 프로 1군 통산 총 1570경기에 출전해 타율 .267, 64홈런, 521타점, 678득점, 289도루를 기록했으며, 2010년대를 풍미한 두산의 7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에 핵심멤버이자 주장으로 활약했다.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하며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2015 WSBC 프리미어12 초대 우승에 기여했다. 명승부에서 사건사고 논란까지 워낙 많은 하이라이트 장면을 남긴 오재원이지만, 그중에서도 역시 손꼽히는 명장면은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2015년 프리미어12 한일전 9회에서 선보인 '빠던(배틀플립)'일 것이다. 이 경기 이후 오재원은 비록 강한 개성과 승부욕, 기행으로 팬들 사이에서 호불호는 엇갈렸지만 '적일때는 밉고, 아군일때는 든든한' 미워할수 없는 빌런의 이미지를 확립했다.
 
오재원은 경기 전 열린 은퇴식 1부 행사에서 두산과 키움의 주장 김재환-이용규로부터 꽃다발을 선물받고 인사를 나눴다. 두산 왕조의 전성기를 이끈 또다른 주역인 더스틴 니퍼트도 깜짝 등장하여 오재원의 은퇴를 축하했다.
 
오재원은 이날 중계석을 찾아 후배들의 경기를 지켜보다가, 8회 박세혁을 대신하여 대타로 출장했다. 프로 인생 마지막 타석에서 오재원의 배팅은 프리미어12의 빠던 재현을 기대했던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놀랍게도 '기습번트' 였다.

비록 아웃되기는 했지만 포기하지않고 끝까지 전력질주로 1루까지 뛰는 모습은 오재원의 야구인생을 함축해서 보여주는 듯한 모습으로 박수를 받았다. 9회에는 2루수로 마지막 수비에 나서며 '두산 왕조'의 주축 키스톤 콤비였던 김재호와 함께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뭉클한 감동을 선사했다.
 
경기가 끝나고 2부에서 선보인 은퇴사도 참 오재원다웠다. 시작부터 뜬금없이 두산의 라이벌인 LG팬 출신이었다는 고백으로 홈팬들을 잠시 '갑분싸'하게 만든 오재원은 "엘린이(어린이 LG팬)가 김우열(경희대)-김경문(두산)-김인식(대표팀) 감독님을 만났으니 전 태어날 때부터 두산이 인연이었던 것 같다."고 반전의 너스레를 떨며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오재원은 그동안 두산에서 함께했던 수많은 동료들의 이름을 일일이 언급했다. 은퇴하거나 타 팀으로 떠난 선수들도 포함됐다. 오재원은 "동료들은, 내 자랑이자 죽을 때까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지금 생각해도 너무나 벅찬 3개의 순간과 3개의 반지를 함께 쟁취했던 내 형, 내 동생들 잊지 않겠다."며 뜨거운 애정을 토로했다.

오재원은 " 가족에게 이게 끝이 아니고 다시 시작이라는 걸 말해주고 싶다. 끝으로 두산 또 저의 팬 여러분.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린다. 저는 이제 다른 오재원으로 뵙겠다."며 은퇴사를 마무리했다. 오재원은 경기장을 찾은 부친과 동생, 조카 등 가족들과 뜨거운 포옹을 나눴고, 후배들의 축하 물 세례와 환호, 박수를 받았다. 오재원이 마지막으로 잠실구장을 한 바퀴 돌며 인사하자 팬들은 응원가를 열창하며 그의 밝은 미래를 응원했다.
 
피날레는 '조선의 4번타자' 이대호가 장식했다. 올시즌을 앞두고 이미 은퇴를 예고한 이대호는 이승엽에 이어 KBO에는 두 번째로 공식 은퇴투어 대상자가 됐다. 한국야구 역대 최고의 선수중 한명으로 꼽히는 이대호는 한미일 야구를 모두 경험했으며프로통산 1971경기에 나와 타율 3할9리(7118타수 2199안타) 374홈런 1425타점 11도루 972득점이다. 국가대표팀에서 2008 베이징올림픽-2015 프리미어12 우승멤버로도 활약했다.
 
숱한 업적과 명장면을 남긴 이대호의 커리어에서도 가장 화려했던 순간은 역시 2010년이다. 이대호는 롯데 소속으로 KBO리그에 전무후무한 타격 7관왕을 달성했으며 9경기 연속 홈런이라는 지금도 깨지지않은 세계기록을 세웠다. 20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한일전에서 9회 대역전극의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극적인 역전 2타점 결승타를 터뜨린 순간도 빼놓을수 없다.
 
마지막 은퇴시즌마저 역대급이었다. 이대호는 불혹의 나이에 올 시즌 142경기에 출전해 타율 3할3푼1리(540타수 179안타) 23홈런 101타점을 기록했다. 롯데는 은퇴전부터 이대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시키기로 결장하며 레전드에 대한 예우를 다했다.
 
8일 홈구장인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정규시즌 최종전에 4번타자 1루수로 출장한 이대호는 투타에 걸쳐 맹활약하며 롯데의 3-2승리를 이끌고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대호는 타석에서는 2루타를 포함한 4타수 1안타 1타점, 투수로서는 홀드까지 기록했다.
 
롯데는 8회초 이대호를 투수로 마운드에 깜짝 올리는 팬서비스를 선보였고, LG는 마무리투수 고우석을 대타로 내보내면서 화답했다. 이대호는 4구 만에 고우석을 투수 땅볼 아웃으로 제압했다. ⅓이닝 무실점으로 막은 이대호는 은퇴 경기에서 데뷔 첫 홀드를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본래 투수 출신이었으나 프로 입단 이후 타자로 전업했던 이대호가 투타를 겸업한 것은 이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이대호의 은퇴식을 위하여 구단주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경기장을 찾아 직접 이대호 부부를 위하여 특별하게 제젝된 '10번'이 새겨진 커플 반지를 전달했다. 이대호는 마지막 은퇴식에서 지인과 가족들이 등장한 영상 편지를 보고 애써 참아왔던 눈물을 쏟기도 했다.
 
이대호는 고별사에서 "사실 오늘(8일)이 제가 3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기일이었다. 기일에 은퇴식을 한다는 것이 감회가 새롭고 슬프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어 "20년 동안이나 덕아웃에서 사직야구장의 멋진 풍경과 팬들의 응원 함성을 들을수 있어서 행복했다. 모두 팬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절대적인 응원 덕분이었다."고 감사를 전했다 또한 이대호는 그동안 함께했던 동료, 선후배, 지도자들, 그리고 가족들을 일일이 언급하며 고마움을 전했다.
 
아쉽고도 짠한 부분은, 선수생활을 마감하는 순간마저도 롯데를 우승으로 이끌겠다는 약속을 지키지못했다는 이대호의 '죄책감'이었다. 이대호는 인터뷰와 고별사에서 거듭하여 롯데의 우승시키지못한 아쉬움과 미안함을 언급했다.

그는 "20년 동안 결국 팬 여러분과 저 또한 꿈꾸고 바랐던 우승을 저는 결국 이뤄드리지 못했습니다. 돌아보면 너무 아쉬운 순간, 너무 안타까운 일들이 많았지만, 팀의 중심에서 팀을 이끌어야 했던 제가 가장 부족했다."며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신의 뒤를 이어 프랜차이즈스타의 계보를 책임질 것으로 믿었던 강민호(삼성)와 손아섭(NC)이 현재 다른 팀으로 떠나있는 사실을 개탄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이제 팬으로 돌아가 롯데의 우승을 응원하겠다며 새로운 희망을 기약했다 . 이대호는 "이제 배트와 글러브 대신 맥주와 치킨을 들고 가족들과 함께 야구장으로 오겠습니다. 롯데 선수였던 이대호는 내일부터 '롯데 팬 이대호'가 되겠다. 여러분께서 조선의 4번타자로 불러 주셨던 롯데의 이대호, 이제 타석에서 관중석으로 이동한다.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롯데 관계자 및 팬 여러분, 신동빈 회장님께 너무 감사드린다."며 소감을 마무리했다. 팬들은 진심어린 박수와 응원으로 20년간 팀을 위하여 헌신한 레전드와의 아름다운 이별을 마무리했다.
 
레전드들은 비록 선수로서의 시간은 막을 내렸지만, 그들의 야구인생은 이제 또다른 시작일 뿐이다. 그리고 은퇴식은 단순히 이별에 대한 아쉬움과 회한의 시간이 아닌, 선수가 남긴 업적을 기리고 모두가 함께 축하하고 리스펙트(존중)하는 축제의 시간으로 자리잡았다.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하여 프로답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던 레전드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헌신을 진심으로 존중하고 가장 빛나는 고별 무대를 연출하기 위하여 세심하게 노력한 구단과 관계자들의 배려, 그 피날레의 시간을 함께하며 무대를 빛내준 팬들의 응원이 하나의 조화를 이루며, '모두의 축제'로서 KBO리그 은퇴 문화의 품격을 한층 높인 아름다운 장면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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