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모범시민> OST인 < Broken Road >의 컨츄리 선율을 듣고 있노라면 자꾸 어떤 데자뷔가 떠오른다. 분명 어디서 들어봄직한 낯익고 친숙한 곡 같은데 딱히 출처는 확실하지 않는다. 곡 자체가 굉장히 독창적이진 않는데 또 노래 자체의 매력이나 완성도는 나쁘지 않다. 이 범죄물에 적당하고 적절히 어울려서 자꾸 들여다보고 찾게 된다. 

어쩌면 드라마 <모범시민> 자체가 이런 경우라 할 만하다. 오리지널 영화와 달리 평타 이상을 기록 중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의 전철을 밟는데 그렇다고 엄청난 야심을 자랑하지도 않는다. 매력적인 개성과 독창성을 뽐내지도 않는다. 또 어떤 쪽이냐면 완성도가 딱히 떨어지지는 않는다.

드라마 자체가 장르물이란 숙제를 성실하게 풀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범생 같다. 그 답안지가 나쁜 수준은 아니다. 다만, <오자크>부터 <브레이킹 배드> 등등 줄줄이 끌려 나오는 레퍼런스들과의 비교는 피할 수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10부작이란 상영 시간은 무리 없이 잘 흘러가니까. 배우들의 성실한 연기를 보는 것만으로도 꽤나 만족스러우니까. 물론 그 성실함이 작품의 성공적인 평가와는 별개일 수 있다. 우선 이야기는 이렇다.

정상 가족이란 무엇인가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 넷플릭스

 
한국대학교에서 영어영문학을 가르치는 강사 박동하(정우)는 지금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지옥을 경험 중이다. 교수 자리 따 보겠다고 선배의 조언 대로 대학 측에 뇌물을 먹였는데 그게 수포로 돌아갔다. 빛더미에 오른 데다 이걸 아내 은주(윤진서)한테 말할 수도 없다. 죽고 싶다.

희귀병에 걸린 아들의 상태는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은주는 아들 현우의 건강에 집착하다 못해 무능한 자신을 두고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이혼 위기다. 밝고 총명했던 딸 연우는 가족들이 현우만 챙기는 걸 지켜보다 사춘기랍시고 목하 방황을 하기 시작한다.

이때 동하에게 운명의 신이 장난을 걸어온다. 한적한 시골 도로 위에서 발견한 차량을 들여다 보던 동하는 시체 2구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는데 그 옆으로 어마어마한 액수의 5만원 다발이 놓여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현금은 가져야 겠는데 시체를 어떻게 처리한담.

동하는 파산 직전에 몰린 위기의 남자가 할 법한 일을 하나 둘 실행해 나간다. 시체를 처리하고 현금을 챙기기까지 그리 큰 고민의 시간을 보내지도 않는다. 물론 두려움과 죄책감에 몸서리를 치지만 파산과 이혼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저 범죄 수익금이 분명한 돈다발들을 내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파산을 막았다는 환호도 잠시. 악마 메피스토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처럼 동하는 이제 영혼이 불안에 잠식당하는 것은 물론 실질적이고 물리적인 악들과 싸워 나가야 한다. 그런데 말이다. 평생 소시민으로 살아왔던 중년의 남자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게 별로 없다는 게 진짜 문제다.

범죄 수익금의 등장, 아내의 바람과 이혼 위기,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과 위태로운 가족 관계, 마약 조직과 범죄자 집단의 협박, 연이은 수사 기관의 추적, 한적한 시골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모범 가장에 이르기까지.

<모범가족>이 참고했을 법한 레퍼런스로 손꼽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미국 드라마 <오자크>는 미 유수의 TV 드라마 시상식을 휩쓴 가족 범죄물이다. 여기에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범죄에 빠져드는 주인공을 내세운 걸작 미드 <브레이킹 배드>를 위시해 <모범가족>이 소환하는 기존 작품들은 한 두 개가 아니다.

관건은 이 한국 드라마가 얼마나 인물들을 독창적으로 승화시키며 오리지널리티를 발현하느냐일 터. <모범가족>은 개성과 클리세의 극단을 부지런히 오가며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하나씩 살펴 보자.

시즌2 제작될까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넷플릭스 <모범가족> 한 장면. ⓒ 넷플릭스

 
동하의 아버지 박득수(오광록)가 등장하기 전까지 아내 은주와 자녀들의 행동들은 예상 가능한 심리와 경로로 가득 차 있다. 은주와의 불화는 동하를 갑갑하게 만드는 제일 큰 요인이고, 그런 은주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자녀들이다. 그렇다. <모범가족>의 제1주제는 이러한 불안과 경계 속에서 되묻는 '정상 가족이란 무엇인가'다.

범죄 조직 쪽은 어떤가. 박희순이 절절하게 연기하는 마광철은 마약 조직의 대표이자 돈가방의 원래 주인인 황용수(최무성)의 오른팔이다. 쓰이고 버림 당하는 것이 숙명인 조직을 떠나고자 하는 광철이야말로 동하의 생명줄과 동선을 꽉 쥐고 있는 주연이자 스스로 고뇌와 갈등에 빠진 매력적인 캐릭터다.

범죄 조직 쪽도 얼키고 설키긴 마찬가지다. 마광철과 그의 처남인 최강준(김성오)과 광철과의 대립 속에 메신저와 경찰 스파이 등이 뒤섞여 복마전을 벌인다. 이 범죄조직의 묘사가 <모범가족>의 독창성을 담보해낼 있는 핵심 소재일 터. 이 드라마는 기존 조폭물과 시골 스릴러의 낯설고 생경한 감성 사이에서 완급을 조절하려 부단히 애를 쓴다.

또 한축은 동하와 조직을 쫓는 용남경찰서 구성원들과 마약팀장 강주현(박지연)이다. 아끼던 사람을 조직 내 스파이로 들여보냈던 강주현이 복수심에 불타올라 집요하게 수사를 이끌어나가는 사이 마광철의 조직과 결탁된 '쥐새끼'를 잡아내기 위한 내부 수사 또한 절정을 맞게 된다.

범죄자들이 출몰하면 자연스레 수사물의 기운이 드리워지기 마련이다. <모범가족>은 광철을 잡기 위해 동하를 이용하는 여성 마약 팀장의 복잡한 심리를 드라마의 한 축으로 내세우는데 이게 꽤나 효과적이다. 내외부의 적과 싸워야 하는 강주현의 복잡한 심리와 피로감을 무척이나 공을 들여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모범가족>의 가장 큰 미덕은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성실함이다. 정우는 나락으로 떨어진 남성 가장의 불안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을 건사하겠다는 그 막중한 책임감을 납득 가능한 현실적인 얼굴로 표현해 낸다. 전작 <마이네임>에서 '중년미'를 뽐내며 팬층을 넓혔던 박희순 역시 예의 그 중량감과 안정감을 자랑하며 극의 무게를 잡는다.

의외의 성과는 강주현을 연기한 박지연과 관록의 오광록이다. 뮤지컬 출신인 박지연은 얼핏 신현빈을 닮아있는 외모 뒤에 감쳐진 강주현의 섬세함과 나른함을 튀지 않는 연기로 매력있게 승화한다. 가족을 버린 사기꾼 '제비' 아버지 오광록은 오랜만에 적역을 만난 듯 생동감 넘치는 캐릭터를 온 몸으로 소화해냈다.

이러한 매력들에도 불구하고 <모범가족>의 평은 호불호가 확실히 갈리는 편이다. 넷플릭스 차트에서도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그건 끊임없이 '정상가족'을 호출하는 주제와 기존 장르물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는데오는 불균질한 재미가 충돌해서일 가능성이 제일 크다.

무엇보다 '문과' 출신인 주인공 동하의 동선이나 활약이 미비하다. 주제적인 측면에선 부합하는 설정이지만 범죄물로서의 매력과는 확실히 동떨어진다. 10화 마지막에서 시즌2에 대한 여운을 남겨 놓긴 했으나 실제 제작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 모든 요소들을 염두에 두고 <모범가족>을 정주행 해보시길. 한국 시청자들이 혹은 범죄물을 즐기는 세계 시청자들이 어떤 이야기에 열광했고 또 만족하는가에 대한 나름 흥미로운 고찰이 될 것이니까. 
모범가족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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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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