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TV 후원한 유료 라이브 실황 중계만 5000명 관람, 7000여 석 규모 연세대 노천극장 전석 매진. 지난 달 31일 연세대학교 노천극장에서 열린 '크레디아 프롬스-조성진 그리고 쇼팽' 공연이 올린 성과다. 오프라인 객석 전석 매진도 매진이지만 젊은 층이 몰릴 가능성이 높은 온라인 중계에 그에 못지않은 인원이 열광했다. 

이제는 후배들의 미래까지 밝혀주는 천재 피아니스트 조성진 신드롬이야 두 말 하면 잔소리일 터. 최근 '록스타'란 별칭마저 등장한 피아니스트 임윤찬이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런 아티스트들이 '아이돌'급 인기를 유지하는 일은 두 가지 조건이 행복하게 맞아 떨어져야 가능한 상황일 것이다.

먼저 이 젊은 아티스트가 대중의 인기를 유지할 만한 실력과 매력을 갖춰야 할 것. 둘째 그 아티스트에게 아이돌 팬덤급 애정을 쏟을 수 있는 젊은 관객층이 존재할 것. 갈수록 언론의 주목도가 높아져만 가는 차세대 젊은 클래식 연주자 아티스트들은 이제 K-클래식 돌풍을 주도하기에 이르렀다. 국내 클래식계의 우물 안 개구리식 해석 아니냐고? 그렇지가 않아 보인다.

"2014년에 갑자기 한국인 예술가들이, 많은 콩쿠르에서 입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총 4개 정도의 저명한 대회들에서 한국인들이 갑자기 수상을 많이 하다 보니까. 2009년은 참가자들이 30%가 한국인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2014년에 갑자기 수상을 많이 하게 되면서 이것에 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갑자기 왜 이렇게 수상자들이 많이 나오기 시작한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지고 바로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을 제작을 하게 된 겁니다."

지난달 25일 TBS라디오에 출연한 다큐멘터리 < K클래식 제네레이션 >의 티에리 로로 감독이 말하는 연출 의도다. 지난 달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벨기에 공영방송 RTBF의 클래식 음악 전문 프로듀서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이 바라본 'K-클래식은 왜 돌풍을 일으키는가'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이자 흥미로운 고찰이다.

일단 수준급 아티스트들의 향연이 펼쳐지니 귀가 호강해서 만족스럽다. 클래식 초심자들이라면 '왜 조성진이?'라는 물음에 근사한 답이 되어줄 만하다. 여기에 유럽인이 바라본 한국의 예술계와 한국사회 특유의 교육열을 바라보는 시선 또한 호기심을 끌 만하다. '외국인이 바라 본 한국'이야말로 한국인들이 과거나 지금이나 흥미를 잃지 않는 마르지 않는 샘과 같은 소재 아닌가.

K-클래식의 현주소를 묻다
 
 다큐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스틸 이미지.

다큐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스틸 이미지. ⓒ ㈜뮤직앤아트컴퍼니

 
"국제 주요 음악 경연에서 한국인의 우승은 최근엔 거의 당연해 졌습니다. 지난 20년간 700명이 결선에 올랐고, 그중 110명이 우승을 차지했죠(...). 이렇게 빨리 정상급에 오른 비결과 그 간절한 이유는 뭘까요?"

티에리 로로 감독의 내레이션이 낮간지러울 순 있다. 그럼에도 진심을 의심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K-클래식의 인기 비결을 탐구하겠다고 서울과 독일을 오가는 벨기에인이 어디 흔하겠는가.

그가 처음 카메라를 가져간 이는 2015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우승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다. 지난해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했던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은 이 젊고 유능한 바이올리스트의 일상을, 연주와 오케스트라와의 협업 과정을, 졸업한 학교의 실상을, 그리고 가족과의 지원과 교감을 애정어린 시선을 통해 다각도로 들여다본다.

이후로도 그 애정어린 시선에 담긴 통찰은 계속된다. 이 벨기에 감독은 2014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소프라노 황수미, 같은 해 스위스 제네바 국제콩쿠르 및 2015년 이탈리아 부조니 콩쿠르 우승자 피아니스트 문지영, 2016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파이널리스트 피아니스트 김윤지, 2018년 위그모어홀 국제 현악사중주 콩쿠르에서 우승한 현악사중주단 '에스메 콰르텟'(바이올리니스트 배원희·하유나, 비올리스트 김지원, 첼리스트 허예은)을 연달아 만난다.

서울과 독일에서 만난 이들은 클래식 연주에 대한 자신만의 열정과 감각, 그리고 동아시아에서 온 한국인이자 유럽에서 주로 활동하며 겪는 어려움과 감동을 담담하게, 때로는 솔직하게 드러낸다. 이들이 적응해 간 한국적 마인드의 정체는 무엇일까. 때로 옆에서 지켜 봐주고 응원해 준 이들로부터 더 정확한 분석이 나오기도 하는 법이다.

"바이올린이란 악기가 한국적 정서랑 잘 맞는거 같아요(...). 선생님 말씀도 잘 듣고 엄마랑도 연습하는, 친구들과 경쟁하는 학교 커리큘럼, 콩쿠르 그런 걸 어릴 때 부터 본인들이 보고 느끼고. 유럽은 자유롭고 자기 개성도 강하고 실패도 해 보고 기회를 많이 준다면 한국은 실패하지 않고 가야한다고 해야 하나."

클래식을 전공했다 전업주부로서 딸의 뒷바라지에 전념했다는 임지영의 모친은 영화 초반 클래식 아티스트들이 성장할 수 있는 한국적 마인드를 이렇게 설명했다. 부모와 가족의 서포트 속에 유럽의 콩쿠르도 나가고 유명세를 얻기까지 피땀을 흘렸을 아티스트들에게도 분명 한국사회가 주는 환경적인 요인이 작용했을 터.

경쟁사회와 1등 주의, 영재교육, 경제적인 뒷받침, 클래식이란 비대중 예술이 주는 고충 등등.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은 클래식 생태계가 친숙하지 않은 관객들조차 한번쯤 떠올렸을 만한 한국사회만의 특질을 비켜가지 않고 관찰하고 응시한다.

이걸 K-클래식에 애정 그 이상을 지닌 이방인의 눈으로 확인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심지어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은 <한국 음악의 비밀>에 이은 로로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그렇다. 이 벨기에 감독은 오로지 한국 클래식 음악에 대한 영화만을 만들었고 세 번째 작품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그 자체만으로 놀랍고 존경받을만하다.

유럽인이 바라본 K-클래식만의 특질
 
 다큐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스틸 이미지.

다큐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스틸 이미지. ⓒ ㈜뮤직앤아트컴퍼니

 
"동양권은 유럽과 비교했을 때 늘 어느 정도 억제돼 있습니다. 감정을 드러내지 않아요, 특히 일본인이 그렇죠. 낭만파 음악은 열정이 가득하거든요. 그런데 고통과 기쁨을 드러내는 건 일본 사회 기준에 맞지 않아요. 유럽, 적어도 오스트리아나 독일에서는 한국인을 시칠리아인에 비유합니다. 훨씬 감정이 풍부하고 표현하기를 주저하지 않거든요." - 피아니스트 헬무트 도이치

<대부>의 그 시칠리아인들이라니. 비유가 무척이나 찰지다. 독일에서 활동하는 소프라노 황수미의 파트너이기도 한 이 독일인이 비교하는 일본인과 한국인 아티스트들의 차이도 납득이 갈 만하다. 그 풍부한 감정과 표현력이라는 한국인들의 특성 역시도 K-클래식의 세계적 열풍을 뒷받침하는 근간 중 하나일 터다.

유럽과는 판이한 한국사회의 경쟁주의나 영재교육 역시 시각에 따라 견해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창의성과 독창성을 중시하며 성인이 될 때까지 집중적인 교육을 멀리하는 유럽과 한국의 상황은 확실히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영화는 한국예술종합학교의 영재 교육 시스템을 부러워하며 한국만의 특질이 가진 장점을 발굴하려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반성과 성찰이 표출되기도 한다.

"영화에 보시면 나오기도 하는데요. 한예종의 김대진 총장이 한번 국제적인 콩쿠르 대회에서 4명의 한국인들이 연주하는 모습을 보셨대요. 그러고 나서는 이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이 4명이 다 같은 방식으로 연주를 하고 있다, 독창성이 없다'라는 걸 생각하고 그렇다면 교육의 접근법을 바꿔야겠구나, 가르침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이 학생의 몸과 정신을 들여다봐서 어떠한 점들을, 어떠한 감정들을 이 학생으로부터 끌어낼 수 있는가, 어떻게 하면 연주에 이 학생만의 독창성을 부여를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살리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교육의 방식이 좀 달라지지 않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 티에리 로로 감독, 지난 8월 2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 중


국악과의 짤막한 비교도 흥미롭다. '한'이란 독특한 정서에 대한 설명이 빠질 순 없지만 그보다 서양 클래식과의 비교나 서양 음악으로부터 받았을지 모를 영향의 가능성마저 단호하게 거부하는 국악인의 목소리가 꽤나 이채롭다.

한국인들의 3분의 1이 기독교 신자요, 이들이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듣는 종교음악의 영향으로 클래식에 친숙함을 느낀다는 분석도 서양인이라 더 눈에 들어왔을 것이다. 또 유럽의 관객들이 노화되고 있는 반면 젊은 관객들이 젊은 클래식 아티스트에 열광하는 한국의 상황이 이 벨기에인의 눈에 부러움을 살 만하다.

그리하여 K-클래식에 무한한 애정을 보내는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은 결국 예술에 대한, 클래식에 대한 한국 아티스트들의 애정 고백으로 이어진다. 경쟁이 어디 한국만의 문제이랴. 자신의 예술을, 그 애정을 청중과 관객들에게 확인받지 못하는 아티스트는 생명력을 보장받을 수 없다.

이건 유럽이나 한국이나 똑같은 조건이요, 그 예술에 대한 갈구야말로 K-클래식의 생명력을 가늠할 본질적 요소일 것이다. 담담하게 이를 일깨우는 < K클래식 제너레이션 >은 분명 흔치 않아 더 소중한 다큐다. 
K클래식제네레이션 다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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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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