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천민주공원에서 고 최동 열사의 유족과, 운동권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 추모식 이천민주공원에서 고 최동 열사의 유족과, 운동권 동료들이 참석한 가운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 윤종은

관련사진보기


   
7일 오전 11시 이천민주공원에서는 성균관대학교 민주동우회 주최 '제32주기 고 최동 열사 추모제'가 열렸다. 이날 행사는 1989년 치안본부의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아래 인노회) 탄압 과정에서 받은 고문수사 후유증으로 자살한 고 최동 열사에 대한 추모제로 유족과 당시 고인의 노동운동 동료들 및 성대 민주화 동문들의 참여 속에 엄숙하게 진행됐다.

동국대 출신인 안재환 당시 인노회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당시 인노회부천지구 김순호 위원장의 실종과 조직의 파괴, 경찰 특채 등 여러 요인들이 결국 최동 열사를 죽음으로 이끌었다고 볼 수 있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 지금이라도 김순호 본인은 책임을 느끼고 앞에 나서 사과하고 진실을 명백히 밝혀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행정안전부는 지난 7월 29일 초대 경찰국장으로 김순호 치안감을 임명한 바 있다. 김순호 국장은 1983년 3월 시위활동으로 군에 강제징집되어 복무한 뒤 제대하였다. 이후 그는 1988년 인노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89년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탄압할 무렵 자취를 감춘 뒤 그해 8월 경장으로 보안 특채 되어 곧바로 치안본부에서 근무하면서 요직을 거쳐왔다.

이 과정에서 그는 수상한 여러 행적 때문에 1980년대 군부독재정권이 민주화운동을 탄압했던 시절 암약했던 밀정(프락치)으로 의심을 받아왔다. 그가 경찰국의 초대국장이 된 것에 대해 같은 인노회 사건 관련자들은 물론 출신학교인 성균관대학교 민주화 동문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1988년 3월 창립한 인노회는 인천부천 지역 노동자들이 모인 대중 노동운동단체였다. 노태우 군부정권 시절이었던 1989년 2월 8일 치안본부(대공3부)는 인노회 사무국 구성원 6명을 불법 연행하여 이적단체 가입죄를 적용하려 했으나, 법원은 "인노회가 북한을 이롭게 하기 위한 단체라기보다는 단순한 노동운동단체로 보이며, 이들이 제작한 유인물도 이적표현물이라기 보다는 노동운동을 목적으로 한 것으로 판단된다"(서울형사지방법원 백영엽 판사)며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그런데도 치안본부는 추가수사도 없이 영장을 재신청, 그해 6월까지 수차례 불법연행과 무리한 구속수사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4월 28일 연행돼 구속수사를 받던 최동 회원이 고문 후유증으로 실어증, 불면증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다가 다음해 8월 7일 분신자결하기에 까지 이르렀다. 이 인노회 사건에 모두 18명이 연루되었는데 그중 15명이 구속되고 3명이 불구속되었다.

신임 김순호 경찰국장은 1981년 성균관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하여 1년 선배인 최동 동문 등과 함께 학내서클 '심산연구회'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을 하다가 1983년 4월 강제징집돼 복무한 뒤 1985년 전역 후 부천지역에서 선배 최동 등과 함께 노동운동을 하다 1988년 김봉진이란 가명으로 인노회에 가입, 이후 부천지구 조직책임자(지구위원장)까지 지냈다. 그러던 그가 치안본부가 인노회를 이적단체로 몰아 탄압하기 시작할 즈음 갑자기 자취를 감추었다. 

1989년 4월 최동, 박종근, 조성옥 세 부천회원이 치안본부로 연행되었는데, 수사관들이 부천지구 전체 회원들을 분회별로 분류하고 지구 조직도를 그린 A3용지를 내밀며 추궁하여 매우 당황한다. 그리고 이때까지 부천지구에서 연행된 회원도 없었고 김순호 회원을 제외하고는 갑자기 잠적한 지구 회원도 없었기 때문에, 부천지구 전체 조직을 알 수 있던 지위에 있던 당시 김순호 지구위원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김순호 회원은 자취를 감춘 이후 학생시절부터 노동운동시절 까지 약 10년간 매우 가깝게 지냈던 선배인 최동 열사의 장례식이나 30여 년간 진행된 추모식에 단 한 번도 나타난 적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변절과 출세길로 의심 확산

2020년 4월 29일 인노회 사건에 대한 재심 재판 결과 대법원은 "인노회는 이적단체가 아니다"라고 최종 판결하였다. 30여 년 만에 독재정권이 씌운 이적단체라는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인노회 사건 관련자들은 최근 1989년 자취를 감추었던 김순호가 그해 8월에 보안특채로 경찰이 되어 곧바로 인노회 회원들이 조사를 받던 그 치안본부 대공3부에서 근무하였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더욱이 치안본부 부활이라고 비판받는 행정안전부 경찰국 초대국장으로 임명된데 대해 참담한 마음을 이루 금할 수가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인노회사건 관련자들은 "과거 독재정권시절 운동권 학생들에 대한 보안사의 신성한 국방의무를 악용한 강제징집녹화사업과 치안본부 대공분실의 프락치활동공작은 명백한 국가폭력으로 이것이야말로 반인륜적이고 국제적 반인권 범죄이다. 윤석열 정부는 그 진상을 밝혀 이와 같은 반인권적인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오기태 성균관대 민동 사무국장은 "10여 년간 긴밀하게 함께 활동해 온 선배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한때나마 의기투합 했던 친구, 동료들을 치안본부가 이적단체 가입죄로 조작하여 탄압할 수 있게 협력하였다면 김순호 국장은 이제라도 진상을 낱낱이 스스로 밝혀야 한다"고 촉구하였다.

태그:#성대동문,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 #운동권출신, #자살, #경찰국장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론직필(正論直筆) 시민기자 되기] .....서울대 영문과, 시민단체 대표, 민주화운동에 참여, 민생 민주 평화에 관심 [기사제보] 010-3341-7670 / tomayoun@hanmail.net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