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FIBA(국제농구연맹) 아시아컵을 8강으로 마친 대한민국 남자농구 대표팀이 귀국했다. 추일승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21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아시아컵 8강전 뉴질랜드와의 경기에서 78-88로 패하며 아쉽게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모든 일정을 마친 선수단은 지난 23일 오전 인천국제공항을 통하여 귀국했으며, 대회 기간중 코로나19에 확진된 허웅만은 경과를 지켜본 후 개별 입국할 예정이다.
 
지난 5월 출범한 추일승호는 첫 국제대회였던 이번 아시아컵에서 4강을 목표로 세웠다. 국내에서 열린 필리핀과의 평가전 2연전에서 우수한 경기력을 보여줬고, 아시아컵 조별리그에서는 중국-대만-바레인을 잇달아 잡으며 당당히 조 1위를 차지하며 8강에 직행했다. 쾌조의 5연승을 달리던 추일승호는 결선 토너먼트에서는 뉴질랜드를 만나 해볼만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뜻하지않은 선수들의 부상-퇴장으로 인한 전력 공백을 이기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뉴질랜드전에서 승부의 분수령이자 가장 논란이 되었던 장면은 바로 이대성과 최준용의 연이은 테크니컬 파울 퇴장이었다. 8강전을 앞두고 허훈-허웅 형제의 동반 결장으로 가드진에 큰 공백이 생긴 대표팀은 주장 이대성과 포워드 최준용이 메인 볼핸들러 역할을 맡아줘야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대성이 3쿼터 초반 석연치않은 테크니컬 파울 누적으로 퇴장당했고, 4쿼터에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던 최준용마저 퇴장당하며 뉴질랜드 쪽으로 경기 흐름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귀국한 이대성은 당시 테크니컬 파울 상황에 대하여 해명했다. 2쿼터 중반 첫 번째 테크니컬 파울은 이대성이 가로채기에 이은 레이업슛을 성공시킨 후 돌아서는 과정에서 뉴질랜드 선수와 불필요한 신체접촉을 한데서 비롯됐다. 당시 포효하던 이대성은 타키울라 파렌손에게 다가가 가볍게 어깨를 부딪히며 먼저 시비를 걸었고, 파렌손은 이대성을 밀어서 뿌리쳤다.
 
이대성은 이 장면에 대하여 "팀을 대표해서 에너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파울 직후 감독님께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의도된 행동이었음을 밝혔다. 양팀이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에서 일종의 기싸움으로 분위기를 가져오고 싶었다는 의미다.

이대성의 행동은 격렬한 농구경기에서 충분히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다만 심판의 눈앞에서 대놓고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은 결코 현명하지 못했다. 심판이 테크니컬 파울을 충분히 내릴만한 상황이었다.
 
문제는 두 번째 T파울 장면이었다. 이대성은 3쿼터 초반 수비 과정서 3번째 파울을 범했는데, 이때는 이대성이 상대를 자극하거나 심판에게 항의를 한 것도 아니고, 단지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으로 소리를 질렀을 뿐이었다.

하지만 심판은 또다시 T파울을 선언했다. 이대성과 한국 벤치 측이 항의하자, 심판의 답은 눈이 마주친 이대성의 반응이 "자신을 향한 표현"이라고 판단했다고 한다. 납득하기 어려운 해명이고 심판의 권한 남용에 가까운 판정이었다.
 
결과적으로 이 판정은 경기 흐름에 엄청난 나비효과를 가져왔다. 이대성의 퇴장이 아니었다면, 최준용 역시 심판 판정에 불만을 드러내다가 T파울로 허무하게 퇴장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국제대회에서 심판의 판정 하나가 승부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다만 여기서 뉴질랜드전의 패인을 두고 단지 심판 판정 탓으로만 초점을 맞춘다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수도 있다. 추일승 감독도 이대성-최준용의 퇴장 상황을 아쉬워하기는 했지만 심판 판정 자체를 승부의 결과와 직결시켜 크게 문제삼지는 않았다. 애초에 불리한 판정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우리가 자초한 측면도 있었고, 이는 국제대회에서의 '경험 부족'이라는 약점과 맞물려있기 때문이다.
 
뉴질랜드전 패배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판정이 아니라 '높이 열세'와 '다양성 부족'에 있었다. 한국은 대회 리바운드 1위팀인 뉴질랜드를 상대로 경기 내내 제공권에서 일방적으로 밀렸고 공격리바운드(12-24)에서는 정확히 2배나 격차가 났다. 또한 이는 뉴질랜드에게 3점슛을 14개나 허용하는 빌미로 이어졌다.
 
뉴질랜드전을 앞두고 허웅과 허훈의 부재가 큰 손실이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더 아쉬운 부분은 선수 구성단계에서부터 정통슈터와 포인트가드를 각각 1명 밖에 뽑지않았던 추일승 감독의 판단미스였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마땅히 대표팀의 주축이 되어야할 김선형-전성현-이현중 등의 합류가 모두 불발되면서 슈터와 가드진 보강이 필요했지만 추 감독은 오히려 그 자리를 대거 비슷한 장신 스윙맨들로 메웠다. 추 감독이 선호하는 '포워드 농구'를 구현하기 위한 라인업이었다.
 
송교창, 최준용, 강상재, 이대헌, 양홍석 등으로 구성된 포워드진은 조별리그까지는 대표팀의 장신화와 수비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문제는 포지션상 역할이 중복되는 선수가 너무 많았고 국제대회 기준으로 공격력이 애매하다는 약점도 분명했다.

조별리그에서 만난 중국은 전력누수가 심했고, 바레인과 대만은 한수 아래의 전력이었기에 이 문제점이 크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하지만 뉴질랜드전에서는 결국 추일승표 빅 라인업의 불안요소가 폭발하고 말았다.

한국을 상회하는 뉴질랜드의 장신 군단을 상대로 제공권에 크게 도움이 되었던 것도 아니고, 지역방어도 제대로 통하지 않아 외곽슛을 무더기로 허용했다. 오죽하면 답답해진 센터 라건아가 밖으로 나와 3점슛을 계속 던져야했을만큼, 외곽에서 활로를 열어주는 전문 슈터나 돌파에 능한 슬래셔의 부재가 두드러졌다.
 
과연 허웅과 허훈이 있었다면 상황이 크게 달라졌을까. 두 선수 모두 국제대회 기준으로 너무 신장이 낮고 수비가 약하다는 단점이 뚜렷한 선수들이었다. 상대가 높이가 월등한 뉴질랜드였기에, 두 선수가 건재했다고 해도 코트에서 오랜 시간을 투입하는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부재보다도 오히려 돌파가 뛰어난 김선형이나 장신슈터 이현중이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졌던 이유다.
 
이대성과 이우석은 듀얼가드, 최준용은 포인트포워드 스타일로 분류된다. 애초부터 국내 리그에서도 내구성이 최대 약점이었던 허훈의 부재를 염두에 두지않고, 안정적인 메인 볼핸들러 역할을 맡길만한 백업 포인트가드를 한명도 뽑지않은 것부터가 판단 착오였다.

또한 단신 슈터로 국제대회에서는 '조커' 이상의 역할 수행이 어려운 허웅을 제외하면 전문 3점슈터라고 할만한 선수는 아예 없었다. 이는 과거의 양동근-양희종처럼 공격은 물론이고 수비에서 상대 백코트의 에이스급 선수를 전담해줄수 있는 '수비 스페셜리스트'의 부재로도 드러났다.
 
애초에 추일승 농구의 강점으로 꼽힌 것이 빅포워드 농구(장신 라인업)와 무한 로테이션(12인 엔트리의 고른 활용)이었다. 그런데 뉴질랜드전처럼 플랜A가 먹히지 않았을 때 변화를 줄수 있는 다양한 카드가 부족하다보니, 두 가지 장점이 동시에 무력화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는 추 감독이 이번 대회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할 대목이다.
 
아시아컵은 이미 지나갔다. 문제는 이제 앞으로 대표팀을 어떻게 이끌어나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이다. 대표팀은 내년으로 연기된 항저우 아시안게임까지 별다른 국제대회 일정이 없는 상태다. 평가전이나 전지훈련 등을 통하여 꾸준히 손발을 맞추면서 대표팀의 연속성을 이어나갈 수 있는 운영방안이 마련되어야한다.
 
장기적으로는 세대교체가 중요한 화두다. 지난 5년간 대표팀의 골밑을 든든하게 지켜왔던 라건아는 내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끝으로 대표팀 은퇴를 시사했다. 붙박이 대표팀 빅맨이던 김종규-이승현-장재석 등도 30대에 접어들며 서서히 기량이 하락세를 드러내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현중-여준석-송교창-최준용 등 추일승 농구에 어울리는 우수한 신체조건과 농구센스를 겸비한 장신포워드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추일승 감독은 지난 5월에 대표팀 지휘봉을 잡은 이후 불과 두달밖에 나선 첫 국제대회에서 나름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아시아컵은 부상 악재도 많았고 운도 따르지않았지만, 짧은 준비기간에도 불구하고 아시아 강호들에게 크게 밀리지않는 경기력을 보여준 것은 평가받아야한다.

대표팀의 경쟁력 강화는 단지 감독 개인의 능력과 노력을 넘어 체계적인 시스템을 통한 지원을 요구한다. 추일승호는 지금보다 앞으로 훨씬 더 발전할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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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대표팀 추일승감독 이대성 항저우AG FIBA아시아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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