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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햐흐로 초뷰카(VUCA) 시대다. 불안속에, 다들 종종걸음을 친다. 외모든 능력이든 지위든 남에게 뒤처지지 않을 무언가를 가져야 살아남는다고 믿는다. 하지만 갈수록 불행하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능하고 멋진 누군가와 끊임없이 비교하며, 쉴새없이 노력하지만 내면의 열등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더 안타까운 것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차별과 혐오의 분위기가 함께 커진다는 점이다. 기후위기 역시 이런 시스템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 경쟁과 소유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생각은 어쩌면 20세기가 만든 거대한 착각인지도 모른다.

10대의 입장에서는 어떨까. 마주한 세상이 버겁고 힘들지만, 문제발생에 직접 기여한 바는 없다. 게다가 어른들보다, 더 오래 이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민주주의는 10대로부터 고민되어야 한다. 그들은, 교육받아야 마땅한 미성숙한 존재로 대상화되기보다, 자기 삶의 주인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진짜 시민교육은 거기서부터 시작되야 하는게 아닐까.

오는 8월 4일부터 6일까지, 충남 금산 간디학교에서 페미니즘 캠프가 열린다. 10대들이 직접 기획하여, 관심 있는 다른 10대들을 모집하여 진행한다(자세한 일정은 하단 이미지 참고). 2019년부터 해마다 여름에 진행된 이 캠프는 올해로 4번째다. 2019년에 시작한 페미니즘 캠프가, 2020년 젠더&퀴어캠프로, 2021년 에코페미니즘 캠프로 이어졌다. 충남문화재단의 지원도 받았다.

10대들의 행사답게 전혀 일사불란하지 않았다. 일정표는 있지만, 세부 시간 순서는 합의하에 변화가 가능하고, 즉흥적인 제안도 대환영이다. 참가자들이 캠프진행의 약속도 함께 만들었다. 존칭을 생략하고 서로 별칭을 지어 부른다. 나이와 성별 그리고 위계의 구분이 자연스레 사라진다. 존중은 있으되, 권력이 없다. 요청은 있지만, 통제가 없다.

해마다 다양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함께 공부하고 놀았다. 또래들뿐 아니라. 주제에 맞는 활동가와 예술가들을 초청하여 대화와 공연을 나누었다. 2박 3일 일정 전체가 상호 대화, 퍼레이드, 요리, 영상 제작 등 기획 활동으로 채워진다. 그러다보니, 가르치고 배우는 자의 구분이 없다, 하지만 매순간 고민해볼만한 주제들이 쏟아진다는 점이 가장 흥미로웠다.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끊임없이 재구성과 통합이 일어나는 상호작용은 늘 감격스러웠다. 어찌보면, 그렇게 10대들이 스스로 배움의 미래를 만들어 온 게 아닐까.

서로의 다른 경험에서 온 질문과 문제의식이 얽혀 학습을 일으키는 것이다. 다름을 만나며, 나의 세계에서 당연하다 여기던 것들이 흔들리고,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이 낯설어진다. 게다가 서로 다른 의견들은 전혀 '일치'를 추구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아무도 가르치지 않지만 모두가 배운다. 옳고 그름을 규정하기 앞서, 다양한 각도의 관찰과 다른 입장에 서보기가 더 중요함을 배운다.

돌아보면, 일상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갈라치기를 해왔던가. 남자와 여자, 생각이 같은 자와 다른자, 나이가 어린 자와 많은 자, 개념이 있는 자와 없는 자.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일상에는, 다채로운 지향과 생각 그리고 다양한 믿음과 정체성이 공존하며 얽혀있다. 서로를 대상화하지 않고, 프레임을 벗어나,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는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렇다. 배움의 또 다른 중요한 재료는 '현실'이다. 현실을 만나며, 겪어온 서로 다른 경험과 관계는, 배움의 훌륭한 재료다. 무엇이 문제이고, 왜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대안은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만난다. 옳고 그름으로 격돌하거나, 가르쳐 일깨우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서로 무엇이 중요하고, 어떤 걸 알아주길 바라는지 궁금해한다. 감정과 생각 밑에 깔린 서로 다른 배경과 믿음을 만난다. 다른 사람이 아닌, 자신을 돌아본다. 공감과 경청속에 서로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추어보며, 자신을 재구성해간다.

이렇게 해마다 색다른 감동을 주던 페미니즘 캠프가 올해 4번째로 열린다. 이름하여 '페미니즘 게더링 캠프'. 올해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주제에, 서로가 서로를 초대하는 게더링의 방식을 더했다. 야외 캠핑 형태의 야영방식으로 기획되어, 지난 3번의 캠프보다 더 새로워질 예정이다. 거기에 더해 올해에는 지난 캠프보다 더 많은 예술가와 활동가들이 모여, 상호작용이 더 풍성해질 전망이다.

늘, 처음에는 떨림으로 만났다. 2박 3일을 함께 하며, 헤어질때는 다시 만나고 싶은 따뜻한 사이가 되어 헤어졌다. 올해도 떨림으로 만나는 새로운 캠프를 기대한다. 서로를 조심스럽게 존중하고 다름을 통해 배우는 시간이 될게다. 나와 이웃의 모습을 돌아보게 하고, 각자 삶속의 실천도 결단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배움의 미래는 이런 모습이어야 하지 않을까. 10대들의 더 많은 페미니즘&게더링 캠프가 열릴 수는 없는 걸까.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주제로 각자의 삶을 안전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더 많이 열리기를 빈다. 상호작용과 서로의 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살아 있는 배움들이, 우리사회의 살아 뛰는 전환으로 연결되길 간절히 바래본다.
 
10대들이 직접 기획하고 초대한 예술가와 활동가들입니다. 함께 토론하고 공연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페미니즘 게더링 캠프에 초대된 예술가와 활동가들 10대들이 직접 기획하고 초대한 예술가와 활동가들입니다. 함께 토론하고 공연하며 의미있는 시간을 함께 만들어갈 예정입니다
ⓒ 유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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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게더링 캠프의 일정표입니다. 2박 3일이 상호작용과 기획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 페미니즘게더링캠프일정표 페미니즘 게더링 캠프의 일정표입니다. 2박 3일이 상호작용과 기획활동으로 이루어집니다
ⓒ 유준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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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페미니즘, #게더링, #10대, #미래교육,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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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금산 간디학교 교사입니다. 자기 성찰의 스위치를 켜는(ON) 질문과 대화를 사랑합니다. 따뜻하게(溫) 서로를 북돋는 활동과, 모두가 온전한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온,WHOLE)을 자각하며 사는 삶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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