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밖의 여정> 윤여정

<뜻밖의 여정> 윤여정 ⓒ tvN


같은 손짓이었지만 반응은 천지차이였다. 윤여정의 서툰 '수어'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진심어린 축하로 감동을 안겼다면, 크리스 록의 과도한 입방정에서 비롯된 윌 스미스의 분노어린 '따귀'는 전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차이는 결국 상대에 대한 존중의 유무였다.
 
5일 방송된 tvN 예능프로그램 <뜻밖의 여정> 최종회에서는 윤여정과 이서진의 '2022 제94회 미국 오스카 시상식' 후일담과 LA에서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하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나영석 PD는 아카데미 시상식(2022년 3월 27일)을 마치고 나오는 윤여정과 이서진을 픽업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현장에서 직관한 시상식 뒷이야기였다. 윤여정은 미국 배우 웨슬리 스나입스와 같은 테이블에서 만난 이야기를 꺼냈다. 스나입스는 한국인 여성과 결혼했고 그의 장인이 바로 박철 전 MBC PD로 윤여정과 함께 드라마 작업을 많이 하여 친분이 있었다. 이서진은 "스나입스가 먼저 한국말로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말을 잘하더라."고 밝혔다.
 
나PD가 "배우들을 많이 아니까 재미있었겠다."며 부러워하자, 이서진은 "진짜 재미있는 일이 있었다. 싸움난 거"라고 웃으며, 바로 그 유명한 '윌 스미스의 크리스 록 폭행 사건'의 현장직관기를 공개했다.

시상자로 나선 배우 겸 코미디언 록이 여배우 제이다 핀켓의 삭발을 소재로 농담을 하자 제이다의 남편인 스미스가 격분하여 생방송중에 무대로 난입하여 록의 뺨을 때리고 욕설까지 퍼부은 사건이다. 이 장면은 미국은 물론 전세계에 생중계되며 큰 논란을 불러왔다. 공교롭게도 스미스가 이날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까지 수상했기에 파문은 일파만파 커졌다.
 
숙소에서 TV로 아카데미 시상식을 지켜봤던 나 PD와 제작진은 뭔가 심상치않은 분위기을 느끼고 방송인들의 직감으로 '사고'임을 단박에 눈치챘다. 이서진은 "스미스가 자리로 돌아와서도 '내 아내 이름 입에 담지말라.'고 두 번을 이야기했다. 우리 자리에 있던 스나입스와 조슈 브롤린도 놀랐다. 스나입스는 나한테 '이거 진짜야?'하고 물어보더라."면서 웃었다.
 
이서진은 "후보 소개 영상이 나갈 때 록이 스미스 앞으로 내려왔다. 그런데 대화가 잘 안풀리는 분위기였다. 그러니까 덴젤 워싱턴이 다가와서 두 사람을 중재했다. 이어서 시상자로 나선 퍼프 대디가 '윌, 크리스, 있다가 다시 풀자 이거는, 지금은 분위기를 좀 띄우자.'라고 달래더라."고 흥미진진했던 무대 직관기를 전했다. 나PD는 "호주 방송에서는 스미스의 욕설이 묵음처리되지않고 그대로 송출됐다더라. 그래서 현재 전세계 검색어 1위가 '호주 오스카'다."라고 이야기했다.
 
아카데미 뒷풀이 파티 초청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온 윤여정 일행은 긴장감에서 벗어나 라면을 즐기며 허기를 달랬다. 윌 스미스의 이야기가 다시 화제로 떠올랐다.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이 건강이 좋지않아 탈모가 와서 삭발을 했는데 록이 이를 농담의 소재를 삼은 것을 두고 남편인 스미스가 격분했던 내용이 밝혀지자 윤여정은 "남의 상처를 건드린거다."며 안타까워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여기서도 한국과 미국의 문화적 차이를 느낄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서구권에서는 스미스의 폭력적인 행동을 비판하는 여론이 훨씬 우세하다면, 한국과 동양권에서는 가족을 농담의 소재로 삼은 록을 비판하는 반응도 적지않다.

이 사건 이후 스미스는 결국 비난 여론을 이기지못하고 사과했고 아카데미 회원 자격을 자진반납했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이사회를 열고 스미스에게 10년간 아카데미 참석-출연을 금지당하는 징계를 내렸다.
 
윤여정과 이서진은 아카데미에서 좋아하는 배우들을 만났던 일화를 밝혔다. 올리비아 콜먼, 주디 덴치, 조슈 브롤린, 커스틴 던스트, 라미 말렉 등과 함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은 모습을 공개했다.
 
특히 두 사람이 동시에 감탄한 배우는 바로 케빈 코스트너였다. "윤여정은 "웰 에이지드(Well-aged)라는 말이 정말로 영어로 있냐고 물었다. 정말 멋있게 늙었더라."며 감탄했다. 이서진은 가장 좋아하는 배우였던 코스트너를 바로 시상식 앞자리에서 만났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본인들도 유명한 배우지만 동시에 또다른 누군가를 좋아하는 팬심을 드러닐때의 모습은 다 똑같다는 것을 보여준 장면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윤여정은 남우조연상 시상자로 나서서 수상자인 <코다>의 트로이 코처를 만난 일화를 밝혔다. 윤여정은 이미 시상식 며칠 전부터 코처의 수상을 응원하며 선천적 청각장애를 지닌 배우에 대한한 존중과 배려의 의미를 담아 수어로 깜짝 축하를 준비했다.
 
시상자로 오른 윤여정은 코처의 이름을 확인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윤여정이 수상자 이름을 호명하기 전에 먼저 수어로 축하를 전하자 코처가 가장 먼저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처음엔 어리둥절했던 객석에서도 뒤늦게 의미를 깨닫고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또한 윤여정은 수어로 수상소감을 해야하는 코처를 배려하여 수상 트로피를 잠시 돌려받아 들고 있어주며 그의 수상소감을 진지하게 경청했다. 사소하지만 시종일관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던 윤여정의 모습은 전세계 팬들을 감동시켰다.
 
윤여정과 코처는 시상 이후 팔짱을 끼고 함께 내려와 무대 뒤편에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윤여정은 "영화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당신이 꼭 수상하기 바랬다. 제 예상이 맞아서 너무 기쁘다"며 진심어린 축하인사를 전했다. 코처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큰 기대를 안하고 싶었는데 이 상을 받고 이 자리에 오게되서 영광이다."라며 화답했다. 윤여정과 코처의 대화를 옆에서 전해주던 통역도 감동받아 눈시울을 글썽였다. 코처와 <코다> 팀 모두 무대 뒤에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고.
 
윤여정은 코처의 모습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이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던 지난해의 추억을 떠올렸다. 윤여정은 당시 시상자로 나선 브래드 피트가 후보자를 소개할 당시 자신의 이름을 제일 먼저 언급하는 것을 듣고 '나는 아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기대를 전혀 안하고 있던 윤여정은 여우조연상 수상자로 이름이 호명되자 처음엔 본인인줄 모르고 박수를 치다가 뒤늦게 깜짝 놀라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무대로 걸어나갔다.
 
윤여정은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올라가기 불편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영광스러운 수상의 순간에도 "'세트 드럽게 못짓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아카데미를 디스하는 반전 고백으로 웃음을 자아냈다. 수상 이후에는 나가는 길을 못찾아서 반대편으로 나가는 해프닝도 있었다. 나PD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번도 똑바로 나가시질 않는다."는 팩트폭행으로 윤여정을 머쓱하게 했다.
 
윤여정은 아들의 친구이자 리포터와 가수로 활동중인 에릭남, 파친코 총괄프로듀서 테레사 강, 절친 정자, 여울씨 등 특별한 인연들을 잇달아 만났다. "지인들과 함께하는 유쾌한 홈파티를 끝으로 LA에서의 여정이 모두 마감됐다.

작은 인연과 추억들도 소중하게 여길줄 아는 윤여정과, 그런 윤여정의 인간적인 매력들을 증언하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누구보다 오랜 친구인 정자씨는 윤여정의 매력을 배짱(Guts)-순수함(Pure)-유쾌함(Funny)-다정함(Sweet), 그리고 솔직함(Honest)이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뜻밖의 여정>은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명배우 윤여정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이서진과 나영석 PD가 동행하여 2022 아카데미 시상자 겸 출연 드라마 홍보를 위한 윤여정의 미국에서의 스케쥴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70대 중반의 나이에 뒤늦은 인생의 전성기를 맞이한 윤여정의 위상과 현지 반응, 인간적인 진솔한 일상과 카메라 밖 인간관계를 보여주는 다큐예능을 표방했다.
 
현지의 중심에서 직접 체험한 윤여정의 시선으로 바라본 미국 엔터테인먼트 시스템과 아카데미의 뒷이야기 등은 소소하면서도 색다른 재미를 전했다. 무엇보다 윤여정이 미국에서도 대배우로 존중받는 모습을 통하여 현지에서 느낀 'K-문화'의 높아진 위상은 국내 팬들에게도 자부심의 대리만족을 안겨줬다.
 
다만 급조된 기획과 해외 촬영의 한계 때문인지 전체적으로 익숙한 출연자들의 케미에 의존했다는 것이나, 볼거리에 비하여 다소 산만한 구성과 편집은 아쉬움을 남겼다.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윤여정의 매니저 역할로 참석했던 이서진에게 초면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가 가방을 맡기는 장면은 뜻밖의 '인종차별' 논란을 불러오며 국내 누리꾼들 사이에서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뜻밖의 여정>은 프로그램 제목처럼 '윤식당-윤스테이 시리즈'등을 오랫동안 함께했던 윤여정-이서진과 나영석 사단 멤버들이 함께하는 일종의 번외여행같은 프로그램에 가까웠다. 나PD는 마지막 홈파티에서 "이 프로그램에 관계된 사람들이 여기 다있다.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의 여정이긴 했다."며 의미를 부여했다.

윤여정은 특유의 시니컬한 화법으로 "인생은 항상 배신이 기다리고 있다."고 일갈하면서도 다음 날에는 "그렇게 매일매일 사는 거다. 죽을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인생이 바로 언익스펙티트 저니(Unexpected journey,뜻밖의 여정)인 것."라며 쿨한 듯하면서도 연륜이 느껴지는 통찰로 인생의 의미를 정리하며 여정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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