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몇 년간 필자가 소망했던 일이 약간의 부족함으로 물거품이 돼 버려서 큰 실의에 빠진 시기가 있었다. 그저 시쳇말로 힐링이 필요하다고 영화계에 몸 담고 있는 지인에게 넋두리를 조금했더니, 바로 날라온 타이틀 글자가 바로 영화 '후라이드 그린 토마토'(원제 : Fried Green Tomatoes At The Whistle Stop Cafe, 1992년 개봉작)였다.

그저 통쾌한 액션이 당겼던 나는 이 영화의 따분한 분위기의 포스터를 보고 별 감흥이 없었다. 그러나 다소 생소한 제목과, 지인이 채팅창에 띄운 '엄지척' 이모티콘을 보며, 그저 속는 셈 치고 영화를 보기로 했다. 

영화 속 주인공 에블린은, 갓 50에 들어선 여성이다. 열심히 여성 클리닉도 다녀보지만, 번번이 남편과의 관계 회복에 실패하면서 자존감이 바닥 난 상태다. 어느 날 양로원에 외숙모를 보러 갔다가 우연히 만난 할머니 닌니로부터 아낌없는 위로와 함께 옛 추억에 관한 이야기를 접한다. 그 안에는 결코 녹록지 않은 사회를 당당하게 살아가는 두 여인의 동화 같은 얘기가 있었다. 덕분에 에블린은 많은 용기와 희망을 얻게 된다는 것이 영화의 줄거리다. 

나를 눈물 젖게 한 장면

영화 속엔 4인 4색 캐릭터가 등장한다. 작년에서야 챙겨 본 영화 <미져리>의 이미지가 진하게 남아 있는, 케시베이츠가 에블린 역을 맞았는데, 시종일관 풍부한 연기를 펼쳐서 다시 감탄했다. 또한 상대역이자 양로원 할머니역을 맡은 제시카 탠디의 포근한 담요 같은 연기도 훌륭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둘 다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로서, 두 베테랑이 흐트러짐 없이 이어가는 완벽한 연기는 뭐라 형용할 수 없는 포만감까지 느끼게 했다.
 
 양로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에블린과 닌니

양로원에서 담소를 나누는 에블린과 닌니 ⓒ 유니버설

 
할머니 닌니의 이야기엔 반항아이자 능동적인 성격의 잇지라는 여주인공과 그의 언니 벌이자 섬세한 성격의 기독교도 루스가 등장한다. 잇지의 오빠이자 루스의 애인인 버디는 비극적인 기차사고로 목숨을 잃게 되고, 묘한 인연으로 엮인 둘은 끈끈한 우정을 이어 나가면서 여러 슬프고 아름다운 에피소드를 일구게 된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신 하나를 꼽자면 루스의 임종 장면이다.

잇지가 읊어주는 '오리 떼 스토리'를 들으며 조용히 숨을 거두는 루스의 모습은 필자의 눈물샘을 터트릴 만했다. 버디에 대한 루스의 그리움과, 오빠였던 버디에 대한 잇지의 그리움이 공존했기 때문이다. 또한 얼음으로 변한 호수에 속박되지 않고 날아오른 오리 떼처럼, 주체적으로 인생의 역경을 이겨낸 두 여인의 서사가 떠오르기도 했다.

나를 통쾌하게 한 장면

부모님의 뜻에 따라 결혼했던 루스는 남편의 지독한 폭력에 시달려야 했다. 분개한 잇지는 그 집을 박차고 들어와 루스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멀리 떠나, 역 정류장 근처에 카페를 열고 커피와 풋토마토 튀김을 팔면서 루스와 함께 일상의 행복을 꾸리게 된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백인 우월주의자였던 루스의 전 남편은 KKK일당들과 함께 잇지의 카페에 쳐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루스의 아이까지 빼앗아 간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불의의 마차 사고로 강물 속에서 행방불명 된다. 잇지의 범행이라고 여겼던 보안관은 손님인척 잇지의 카페에 매일 드나들며 증거를 캐내려 하지만 헛수고였다. 

놀랍게도 루스의  전남편 시체는 스테이크로 재탄생되어 보안관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잇지의 대범한 요리로 증거는 없어졌고, 재판정에서 오랜 인연을 쌓은 목사의 적절한 알리바이 증언으로 잇지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잇지와 루지는 다시 평온한 일상을 되찾게 됐다. 
 
 잇지와 루스의 우정어린 꿀벌신

잇지와 루스의 우정어린 꿀벌신 ⓒ Universal

 
마치며

사실 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사회 풍자적인 메시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 기아에 시달리는 약자를 위해 달리는 기차 화물칸에서 몰래 식료품을 빼돌리거나,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흑인들을 보살피는 잇지의 모습이 주는 메시지가 있었다. 

'힐링'이든 '킬링'이든, 이 엄청난 영화는 실의에 빠진 나에게 따뜻한 위로와 용기를 안겨주었다. 인생의 후반전에 다다른 에블린과 닌니의 관계가 동화 속 주인공 같은 잇지와 루스의 이야기와 교차하면서, 독특한 재미와 감동을 자아냈다. 이 글을 마칠 때까지도 감동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다. 이 영화를 소개해 준 지인과 함께 카모바일 한 잔 하면서 마저 후기를 풀어야겠다.
 
 결국 얘기 속 잇지가 자신임을 고백한 할머니 닌니는 에블린과 함께 살게 된다

결국 얘기 속 잇지가 자신임을 고백한 할머니 닌니는 에블린과 함께 살게 된다 ⓒ Universal

후라이드 그린토마토 명작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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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작가 김진수입니다. 게임,일상다반사 등 가슴에 맺힌 여러 생각들을 재밌게 써볼랍니다. 블로그 '소금불' 운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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