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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는 불평등이 심각하다. 불평등을 해소해야 한다는 말은 무성하지만 20대 대선에서 노동자들은 배제되거나 혐오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 운동 기간 주 120시간, 최저임금 한시적 유보,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며 노동에 대한 혐오를 드러냈다. 노동에 대한 혐오로는 한국사회 불평등을 해소할 수 없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비정규 노동자들은 3월 19일부터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간 동안 매주 토요일 전태일 다리부터 인수위까지 비정규직 철폐, 차별 철폐를 요구하며 행진한다. 이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좋은 일자리’를 확대해야 코로나 팬데믹과 맞물린 고착된 불평등이 조금이나마 해소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부를 사용자로 공공부분에서 국민을 위해 노동하지만 여전히 일터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대상으로 낙인찍힌 비정규직 현장의 목소리를 싣는다.[편집자말]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인수위에 국정과제 선정 요구안과 4.23일 꽃길행진을 발표하고 있다.
▲ 인수위 앞 기자회견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소속 조합원들이 인수위에 국정과제 선정 요구안과 4.23일 꽃길행진을 발표하고 있다.
ⓒ 박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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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3일, 학교비정규직노동자(방학 중 무임금 노동자) 수백 명이 교육복지와 비정규직 정책 수립을 촉구하며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를 향해 행진한다. 행진 투쟁에 나서는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지난 11일 이미 '국가 책임 교육복지 강화'와 '(학교)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핵심으로 한 8대 국정과제 요구를 인수위에 전달하며 투쟁을 예고했다.

최근 인수위 앞에는 정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봇물을 이룬다. 전국교육공무직본부가 국정과제 요구 기자회견을 개최한 날도 인수위 주변 경호를 담당하는 경찰은 "기자회견이 같은 시간에 여러 건이 겹치는 등 정신이 없다"고 토로했다. 

새로운 정권이 출범하는 만큼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전과 다른 특징이 있다. 시민들은 인수위가 밝힌 정책방향에 대한 찬반을 다투기 보다는 없는 정책을 제발 만들라며 요구하는 양상이다. 즉 인수위가 갖추지 못한 정책 내용을 시민들의 자발적인 정치 행렬로 채우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인수위는 어떠한 답변도 없다.

이를 반영하듯 국정 과제 숙고에 들어갔다는 인수위의 현재를 평가하는 다수 언론의 보도에서도 이전과 다른 결이 느껴진다. 인수위는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고 정책 참모의 존재감도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의제는 철학이나 비전도 없다. 정책이 실종된 비호감 경쟁 대선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의 인수위이기 때문인지 정책논쟁 또한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 인수위가 만들어내는 이슈는 '어쩌다 대통령'의 텅 빈 어리숙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신정부의 정책방향과 비전을 놓고 백가쟁명 토론을 벌여야 할 인수위 기간은 소중하다. 그런데 민생과 관련 없는 대통령 직무실의 정치적 풍수 따위의 논란을 벌인다거나 야당 발 검찰개혁, 선거제도개혁 의제만 불거질 뿐, 대통령 당선자의 국정 철학과 비전은 오리무중이다.

처우개선을 넘어 사회적 역할을 자각하기 시작한 교육공무직
 
교육공무직노동자들이 교육복지 강화 등을 담은 국정과제 요구안을 인수위에 전달하고 있다.
▲ 국정과제 요구 전달하는 모습 교육공무직노동자들이 교육복지 강화 등을 담은 국정과제 요구안을 인수위에 전달하고 있다.
ⓒ 박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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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노동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불안하다. 윤석열 정부가 뭘 하려고 하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대로라면 3개월에 이르는 인수위기간 동안 비정규직 노동자와 단 하루, 단 한 시간도 만나는 일은 없을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여당인 국민의힘 대선 공약집에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조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을 정도니,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고, 비정규직노동자들은 존재 자체가 삭제당할 형국이니 "우리가 여기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을 수 없다.

윤석열 당선자는 비정규직 정책뿐만 아니라 교육정책에 있어서도 이렇다 할 방향성이 없으며, 진정성 없는 '쪽 대본' 공약만 내놓았다. 코로나 시대를 경과하며 한국 사회는 우리 사회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존재로서 학교의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었다. 교실 문이 닫히고 수업은 중단돼도 돌봄교실은 더 팽팽 돌아가야 했으며, 급식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식생활 불균형을 걱정해야 했다.

관계가 단절된 아이들은 '코로나 우울증'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정신건강이 악화됐고, 관리와 지원이 더욱 필요한 특수아동 등 취약계층의 아이들은 더욱 깊게 단절과 소외에 방치됐다. 어쩌다 교문이 열려도 방역기능이 학교에 투입돼야 했으며, 전에 없던 역할과 그에 따른 학교의 변화는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를 놓고 혼란을 겪으며 학교 구성원 간 갈등으로 비화되기도 했다.

교육 이전에 일상이 흔들렸으며, 학습능력 이전에 성장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망과 평등이 흔들렸다. 이를 지켜주는 학교의 기능이 교육복지다. 학교는 학습능력의 우열을 다투고 평가하기 이전에 학생들이 일상을 유지하고 평등한 성장을 추구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그것이 교육복지다. 학생 누구라도 기본적인 식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하고 돌봄의 손길 밖에 방치되지 않아야 하며, 사회적 관계의 형성, 소외로부터의 보호 등 학생의 삶 전반을 보살피고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학교가 돼야 한다.

교육당국은 교육복지의 거점으로써 학교의 기능을 재인식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자각하기 시작했으며, 비정규직 처우개선 요구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교육복지의 가치를 함께 외치기 시작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 11일 전국교육공무직본부는 '국가책임 교육복지'와 '비정규직 차별 해소'를 골자로 한 국정과제 요구를 밝힌 바 있으며, 이를 행동으로 외치기 위해 행진 투쟁에 나선다.

아이들의 교육복지, 비정규직 일할 권리를 위한 '꽃길 행진'
 
교육공무직본부 소속 특수교육지도사들이 특수교육 강화와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특수교육지도사 기자회견 교육공무직본부 소속 특수교육지도사들이 특수교육 강화와 인력 충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있다.
ⓒ 박성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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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인수위에선 학교에 대한 발전적 비전도, 노사관계와 양극화의 핵심 문제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명확한 철학이나 인식도 찾아볼 수 없다. 미래에 대한 전망도 현재의 고통에 대한 대책도 없는 것이다. 반면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으로서 자신의 차별해소 요구에 머물지 않고 더 나아가 교육복지 확대를 통한 사회적 기여 방안을 찾고자 한다. 때문에 학교비정규직노동자들의 행진 투쟁을 스스로 '꽃길 행진'이라 부르며, 더 나은 학교를 위한 더 나은 노동을 촉구하고자 한다. 코로나 시대에도 방학 중에도 학생들의 일상은 계속된다. 이 일상을 지키기 위해 우리 사회와 학교가 책임져야 할 일이 있음을 정치는 알아야 한다.

방학 중에도 학생들을 위해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학교급식 노동자들과 특수교육 지원 노동자(특수교육지도사), 사서, 교무행정 등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 무임금에 따른 생계의 문제를 호소하는 한편, 방학 중에도 계속돼야 할 교육복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자 한다.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방학 중에도 고용관계를 유지한다. 정규직도 마찬가지인데, 정규직은 자율연수를 통해 출근하지 않고 자신을 역량을 키우는 시간을 보장받는다. 이러한 기회를 똑같이 달라는 것이 교육공무직의 요구가 아니다. 교육복지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을 위해 방학 중에도 일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것이고, 일한 만큼 임금을 받아 생계를 꾸려갈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다.

학교비정규직은 숙련이나 교육이 필요 없는 허드렛일을 하는 하찮은 존재가 아니다. 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필요하고, 어쩌면 더 기본이 되는 일상지원, 교육복지의 기능을 담당한다. 이들은 해묵은 학교비정규직의 고충을 외치며 시위에 나서지만, 활짝 핀 봄꽃처럼 밝게 행진할 것이다.

윤석열 인수위는 학교의 미래를 무시하고 비정규직의 현재를 외면하지만, 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은 학교의 미래를 위한 자신의 역할을 찾고, 노동자의 현재를 위한 생계의 권리를 찾고자 한다. 23일 청계천 전태일 다리에서 통인동 인수위까지 학교비정규직(교육공무직) 노동자들의 꽃길 행진이 시작된다.

태그:#교육공무직, #특수교육지도사, #교육복지, #꽃길행진,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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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안의 낮은 목소리, 조력자. 자유로운 공동체를 생각하는 사람. 금지가 없는 사유의 항해. 소속되지 않으려는 집단주의자. 부의 근본은 노동이며, 인류의 시작도 노동하는 손에서 시작됐다는 믿음. 그러나 신념을 회의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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