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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여성 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었다
ⓒ 유튜브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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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기자에 관한 괴롭힘' 문제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이 괴롭힘이 일상화돼 있다는 것입니다. 언제 있었다가 언제 사라지는 문제가 아니고 매일매일 존재하는 수준이며, 인터뷰이(기자)들은 괴롭힘의 경험이 기자일의 '공기'처럼 존재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여성 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연구한 김창욱 한동대 글로벌리더십학부 교수는 여성 기자들이 겪는 온라인 폭력의 빈도와 정도의 심각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젠더화된 언론 혐오, 즉 여성을 향한 적대감과 기자를 향한 적대감에 여성 기자들이 이중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온라인 괴롭힘'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이 커졌음에도 여성 기자 개인을 공격하는 사례는 오히려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성평등위원회는 17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여성기자를 향한 온라인 괴롭힘, 이대로 괜찮은가' 토론회를 열고 관련 연구 결과와 언론인들의 의견을 수렴해 온라인 괴롭힘 해결 방안을 모색했다.

살해 협박에 성적 모욕 다반사... 여성 기자들 고통 극심

언론에 대한 온라인 상의 불신과 부정적 여론이 커지면서, 기자에게 적대감을 표출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기자들은 독자들 생각과 다른 목소리를 기사에 담았다는 이유만으로 욕설과 비하에 시달리기도 한다.

특히 여성 기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괴롭힘의 수준은 더욱 심각하다. 언론진흥재단이 2021년 언론인 40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여성 기자들은 남성 기자들에 비해 온라인 상에서 성희롱·성차별적 발언, 외모 평가를 더 자주 경험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토론회에서 발표된 김창욱 교수와 신우열 경남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의 '여성기자 온라인 괴롭힘에 관한 저널리즘 사회학적 연구'는 20명의 기자와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통해, 여성 기자들이 겪는 온라인 괴롭힘에 대해 심층 분석한 결과다. 

이 연구에 따르면 여성 기자들에 대한 괴롭힘은 '연차' '부서' 나이' 불문하고 존재한다. 연차가 높은 기자들은 여성 기자들에 대한 괴롭힘이 과거보다 양적인 면에서 증가했다고 증언했다. 특히 정치·법조 기자들의 경우 극렬 지지자들로부터 심각한 괴롭힘을 당하고, 난민 등 소수자 이슈를 다루는 사회부 기자들도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젠더 이슈를 쓰는 경우는 아예 악플이 '기본값'이었다.

기자들이 경험한 괴롭힘의 유형도 다양했다. 성희롱성 댓글, 강간이나 살해 등의 협박, 음란 사진이 담겨 있는 쪽지·이메일, 전화를 통한 욕설이나 스토킹, 개인 SNS 계정이나 블로그 등을 통한 혐오성 메시지 등이다. 

이번 연구에서 기자들이 증언한 '혐오성 메시지' 유형을 살펴보면 대부분 기사에 대한 비난을 넘어선 수준이었다. "생긴 것 좀 봐라", "기자야 밤길 조심해라"는 굉장히 수위가 낮은 축에 속할 정도였다.  

또한 온라인 상에서 신상 및 얼굴 공개와 조리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기사 주소를 특정 커뮤니티에 올려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소위 '좌표찍기'가 행해지면, 이때 기자의 이름, 얼굴, 개인 정보 등이 함께 공개되기도 한다. 이것은 누군가가 알아보고 실제로 해칠 수도 있는 것이라 훨씬 더 강력한 공포를 느끼는 지점이기도 하다.

같은 기사를 작성해도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가 경험하는 혐오의 유형, 빈도, 정도가 달랐다. 여성 기자에게는 남성 기자가 겪지 않은 외모 비하와 강간 협박 등의 괴롭힘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A언론사에서 젠더 관련 기사를 여성 기자와 남성 기자가 함께 작성해도 여성 기자에게만 협박성 메일이 오는가 하면, 남성적인 이름을 가진 여성 기자가 자신의 프로필란에 사진을 올린 이후 갑자기 여성을 비하하는 악플이 늘어났다고 한다.

그 밖에도 여성 기자들은 "어린 여기자X이" 같은 나이에 따른 차별적 표현, "세상 물정도 모르는" "글도 제대로 못 쓰는"과 같은 능력에 대한 공격 등을 겪고 있었다.

취재 활동 위축시키고 '번아웃'까지... 언론사는 문제 심각성 못 느껴
   
김 교수와 신 교수는 이러한 괴롭힘을 경험하는 기자들의 심리·정서적인 단계는 불쾌감→ 분노→무력감→두려움/불안 순으로 진행이 되고, 결국 세 가지 감정 후에 남는 두려움/불안은 기사를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기자일을 하는 것 자체에 일상적인 불안을 느끼는 단계라고 분석한다. 괴롭힘이 결과적으로 취재활동과 기사 작성에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두 교수는 이러한 온라인 괴롭힘이 반복되다 보면 여성 기자들은 '젠더 이슈'를 쓸 때 어떠한 작은 공격도 받지 않기 위해 자기 검열을 하게 되거나 자신의 얼굴이나 개인적인 신상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현상이 발생하게 된다고 진단한다. 문제는 이런 경우 번아웃 증후군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특정 주제나 부서를 회피하는 경우도 생겨나는데, 이는 여성 기자의 커리어에 악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언론 전체로 봤을 때도 기자들이 특정 이슈에 관한 취재를 꺼리게 되는 효과를 만들어내게 된다고 지적했다.

연구에 인터뷰이로 참여한 기자들은 포털을 중심으로 한 현재의 뉴스·유통 소비 시스템이 괴롭힘이 더 잘 일어나게 만들고 있다고 밝혔다. 회사는 기자들이 스스로 브랜딩하기를 유도하다 보니 신상이 조금 더 공개되고, 신문사의 경우에도 뉴스레터나 온라인 뉴스 콘텐츠 제작 등으로 얼굴이 노출될 경우 성적인 괴롭힘을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 언론사들의 경우 온라인 괴롭힘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지 않아 개인적인 대응을 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명확한 기자 보호 가이드라인과 기자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부서나 조직을 가진 언론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일상화된 괴롭힘을 기자 개인이 감내하거나 회피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연구를 진행한 두 교수는 온라인 괴롭힘을 오프라인 괴롭힘과 동일한 폭력으로 규정하고 적극적으로 대응할 것을 주문했다. "구성원들이 온라인 괴롭힘을 보고하도록 장려하고, 비난받거나 희생당하지 않도록 조직 문화를 개선하고,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과 이를 뒷받침할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모든 언론사의 필수 과제라고 제언하며 발표를 마쳤다.

"여성 혐오에 기반한 공격... 언론사 조직이 성평등 해져야 문제 해결 가능"
     
류란 언론노조 SBS본부 성평등위원장은 "이번 연구의 첫 번째 의미는 이런 경험이 드디어 발화되고 공유됐다는 점에서 찾고 싶다"라며 "여성 기자들의 온라인 괴롭힘이라는 명명이 시작됐다는 것만으로도 현장에서 많은 여성 기자들이 도움을 얻기 시작할 거다"라고 밝혔다.

류 위원장은 "이런 일(온라인 괴롭힘)이 반복되면 기자들이 스스로를 비하하게 되고 위축되고 정말 번아웃이 온다. 번아웃이 결코 개인이 나약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공유되어야 할 것 같다"라며 "전 세대에는 겪지 않는 것이라 조언도 구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공론장에 이 건이 등장하는 것만으로 임팩트가 있을 것이다. 연대를 하고, 커뮤니티도 만들어질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정연 <한겨레> 젠더데스크는 "여성 기자에 대한 언어폭력은 여성혐오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성 기자는 언제든 성적 대상화할 수 있고 물화해서 욕을 할 수 있다는 그런 사고에 기반한 문화 때문에 (폭력의 수위가) 더 거칠고 강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이정연 젠더데스크는 "3일 전에 욕 메일을 받았다. 'XXX아 양심 좀 있어라, 너 중국X이냐'였다. 세계은행에서 나온 보고서를 가지고 쓴, 의견도 덧붙이지 않은 스트레이트 기사였다"라며 "앞으로 여성 혐오/배제 정치가 힘을 더 발휘하게 되고, 앞으로 이런 괴롭힘이 더 강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은사자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조직은 괴롭힘으로부터 원인을 파악해 구성원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하는데 이에 선행해야 할 것은 성평등한 문화"라며 "여성에 대한 외모 평가가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언론사에서 성희롱적 메시지를 받았다고 조직에 공유할 수 있을까? 피해를 입었을 때 자신의 어려움을 꺼내 놓을 수 있는 성인지 감수성을 가진 조직이 되어야 한다"라고 언론사에게 당부했다.

이어 그는 "여성이 겪는 차별이 공론장에 꺼내지면 '남성들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여성 기자가 겪는 괴롭힘을 토론하는 것은 '남성 기자는 힘들지 않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구조적으로 보다 취약한 위치에 있는 여성 기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때 모든 구성원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태그:#여성혐오, #온라인괴롭힘, #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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