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사랑은 인간의 삶을 충만하게 하는 소중한 가치다. 권력은 항상 예술과 사랑을 통제하거나 도구화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인간의 자유의지를 장악하려는 모든 부질없는 시도들은 끝내 실패하곤 했다.

3월 11일 방송된 JTBC <방구석 1열 확장판>에서는 영화 <타인의 삶>과 <색, 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배우 연우진이 게스트로 출연했다. 영화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드라마 <서른 아홉> 등을 통하여 멜로 장인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연우진은, '샤워 키스' 등 자신의 연기한 명장면들이 거론되자 쑥쓰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연우진은 최근 역사를 소재로 한 작품들을 시청했던 자신의 OTT 취향을 공개하며 "역사를 바탕으로 한 작품에 감정이입이 더 잘된다"고 고백했다.
 
 JTBC <방구석 1열 확장판>의 한 장면.

JTBC <방구석 1열 확장판>의 한 장면. ⓒ JTBC

 
첫 영화인 <타인의 삶>은 1980년대 독일 분단시기, 동독의 비밀경찰(슈타지)이었던 비즐러가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연인 크리스타를 감시하면서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이야기를 그려낸 명작이다.

당시 동독의 독재정권은 수많은 감청요원과 스파이를 통하여 국민들을 불법으로 감시하고 인권을 탄압했다. 불순분자를 색출하여 사회주의 체제를 공고하게 하려는 목표였다. 통일이후 민간에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회유-압박-살인-사찰 등 공산당 집권기에 감시기록 문서량은 약 111Km 길이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민주화가 된 이후에도 정권교체마다 정권의 비리를 은폐하려는 공문서 파기 논란으로 해외의 사료에 의존해야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홍지영 감독은 독일이 2차대전의 부끄러운 상흔마저 보존하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계속 상기하고 있는 성숙한 자세에 감탄했다. 배순탁 작가는 "부끄러운 역사도 인정할 수 있느냐가 국격을 좌우한다"는 소신을 밝혔다. 

비밀경찰 비즐러 역을 맡은 울리히 뮤흐는 안타깝게 영화 개봉 1년 후 세상을 떠났다고. 영화는 놀랍게도 뮤흐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했다. 뮤흐의 전 아내 제니 그롤만은 실제 슈타지의 정보원으로 남편을 10년간 비밀리에 감시했던 것. 극중 드라이만의 모습이 바로 실제 뮤흐의 실제 경험담이었다.

냉혹한 비밀경찰이었던 비즐러가 점점 타인의 삶에 영향을 받아 점점 변화해가는 모습은 깊은 울림을 남겼다. 홍지영은 비즐러가 한 소년과 엘리베이터에서 대화하는 장면, 브레히트의 시집을 읽는 장면을, 장도연은 비즐러가 드라이먼의 피아노 연주에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결정적인 순간으로 꼽았다. 
 
연우진은 영화를 보면서 "비즐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라는 의문을 가졌다고 고백하며, 감시자가 삭막하고 각박한 삶과, 예술가의 감성충만한 삶 사이에서 "극과 극의 상황이 주는 엄청난 감정의 파동이 관객들에게도 크게 다가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지영은 비즐러를 "국가가 제시한 이념이 자신의 신념이 된 사람"이라고 규정했다. 

배순탁은 여기서 창의적인 예술과 통제하는 권력 사이의 미묘한 긴장 관계를 주목했다. "예술이라는 작업 자체가 인간이 얼마나 복합적이고 모순적인지 이해하는 일"이라고 규정하며 "국가의 입장에서는 이데올로기를 통하여 통치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역사적으로 모든 독재국가들이 예술을 탄압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완벽히 성공한 경우는 없다. 항상 예술이 이겼다"고 설명했다.

엔딩 장면은 잔잔하면서도 진한 여운을 남겼다. 드라이만은 자신이 몰래 도와준 비즐러를 위하여 집필한 책속에 두 사람만이 알아볼수 있는 비밀스러운 코드명(HGW XX/7)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내내 차가운 표정을 짓고있던 비즐러의 얼굴에 처음으로 은은하게 미소가 피어날 듯하면서 변화한 비즐러의 앞날을 기대하게 만드는 엔딩이었다.

박상영은 작가의 심정에 이입하며 "자신의 삶을 기록한 사람의 기록을 작품으로 만들어 다시 되돌려주는 과정이, 타인의 삶을 대하는 예술의 소통 방식"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양조위와 탕웨이의 매력 빛난 <색, 계>
 
 JTBC <방구석 1열 확장판>의 한 장면.

JTBC <방구석 1열 확장판>의 한 장면. ⓒ JTBC

 
두 번째 영화로 이안 감독의 <색, 계>가 소개됐다. 출연자들은 두 배우 양조위와 탕웨이의 매력에 초점을 맞췄다. 양조위가 연기했던 남주인공 '이 선생'역은 원래는 중국의 거장 장예모를 고려했으나 거절하면서 양조위가 맡게 되었다고 한다. 캐스팅은 무산되었지만 실제 이 선생의 극중 외모도 장예모의 이미지를 참고했다고.

봉태규는 "양조위의 연기도 훌륭했지만 장예모가 했다면 시대적 분위기가 더 살아났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주성철은 이 선생이 강렬함과 유약함을 겸비한 인물이라는 점에서 장국영의 연기를 상상하기도 했다. 

이 선생은 극중 권력자이자 폭력적이면서도 비겁한 인물이다. 박상영은 "비호감 캐릭터에 설득력을 불어넣은 것은 양조위의 눈빛과 연기였다"고 평했다. 연우진은 양조위를 실제로 만났던 일화를 공개하며 "악수를 했는데 따뜻한 온기가 손에서 눈빛으로 다시 나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주성철은 기자회견에서 질문의 통역을 듣고 있을 때도 시선을 돌리지 않고 기자와 아이컨택트를 했다고 밝히며 "양조위의 눈빛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고 고백했다.

탕웨이는 약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색, 계>의 여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신인급이었던 탕웨이는 이 영화를 통하여 세계가 주목하는 배우도 올라섰다. 무명의 탕웨이를 과감하게 캐스팅한 이안 감독은 그녀가 대본에서 여주인공 왕치아즈 역에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영화 개봉 이후 중국에서는 정사 장면과 친일파 미화 논란으로 검열을 피하지 못했고 탕웨이는 중국에서 활동금지 처분을 받는 등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했다.

다행히 탕웨이는 이후 <크로싱 헤네시> <만추>를 통하여 성공적으로 재기했다. <만추>에서 인연을 맺은 김태용 감독과는 결혼하여 가정을 꾸렸다. 홍지영은 탕웨이를 사적으로 만났던 일화를 언급하며 "<색, 계>의 그 탕웨이더라. 눈에서 자존감과 쾌활함, 내공이 느껴졌다. 그냥 매력적인 여자"라고 회상했다.     
   
영화에서 가장 화제가 된 세 번의 베드신은 무려 11일 동안  촬영했다. 첫 번째 베드씬은 이 선생의 가학적인 행동에 초점을 맞춰 관계의 우위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주성철은 특히 정사가 끝난 후 묘하게 웃는 왕치아즈의 표정을 통하여 "극중인물이자 실제 배우로서 자신의 임무(연기)에 만족한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영화의 제목인 색, 계는 '인간의 욕망이 경계를 넘어선다'는 주제를 담고 있다. 두 번째 베드신을 두 사람의 멈출 수 없는 욕망이 서로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이라면, 세 번째 베드신은 서로를 완전히 사랑하게 되어 내적 갈등에 빠지게 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탕웨이는 마지막 베드신에서 우는 연기를 펼쳤지만 정작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자신의 연기가 실패한 것이 아닐까 고민하는 탕웨이에게 양조위는 "연극배우 왕치아즈와 신인배우 탕웨이는 같은 사람이다. 탕웨이가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면 왕치아즈도 그랬을 것"이라며 후배를 따뜻하는 격려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는 감동을 자아냈다. 

출연자들은 "멋진 선배"라며 감탄했다. 봉태규는 베드신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가루지기> 출연 당시 곰과 베드신을 연기해야했던 난감했던 순간을 고백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이 선생이 과연 왕치아즈의 정체를 얼마나 눈치채고 있었는지는 지금도 해석이 저마다 엇갈리는 대목이다. 박상영은 "(진작에 스파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녀를 믿고 싶어서 자기 자신을 속인 것은 아닐까?"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 선생이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만큼은 모두가 공감했다. 

홍지영은 이 영화를 여러 가지 사회적 의미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랑이야기"라고 결론을 내렸다. 두 사람은 서로를 경계했지만 결국 거부할 수 없는 사랑에 빠졌다. 베드신은 적이었던 남녀가 서로에게 이끌리며 욕망을 드러내는 모습을 본능적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개봉 당시에는 노출에 지나치게 포커스가 맞춰져 오해를 받았지만 <색, 계>가 지금까지도 최고의 정치 멜로 영화로 평가받을 수 있었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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