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나이에 갑작스럽게 부모가 되어야했던 10대들에게, 누군가의 인생과 생명을 책임져야한다는 의미의 무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3월 6일 방송된 MBN 신규 예능 <어른들은 모르는 고딩엄빠>에서는 '대한민국 청소년 부모들의 현실'이라는 파격적인 소재를 다루며 첫 회부터 시선을 사로잡았다.
 
MC를 맡은 방송인 박미선, 하하, 배우 인교진은 사전 인터뷰에서부터 '만약 내 아이가 고딩엄빠가 된다면'이라는 질문을 받고 하나같이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박미선은 "방송에서 (10대 부모를) 보여준다는 자체가 파격이다. 시대가 정말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정말 어렵다"며 고민을 드러냈다.
 
실제 고딩엄마 3인방이 공개됐다. 11개월 봄이 엄마인 고3 김지우, 19살에 출산하여 22개월이 된 유준이 엄마 이루시아, 3월 출산 예정인 34주차 예비맘 박서현 양이 함께 등장했다. 아이 엄마라는 사실을 모르고 보면 그 또래의 풋풋하고 평범한 소녀들의 모습에 MC들은 놀라움을 금하지 못했다.
 
박재연 심리상담가와 이시훈 성교육 강사가 도우미로 함께했다. 박재연 상담가는 "방송 기획을 듣고 신선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혼모는 많이 접해봤지만 청소년 부모는 만날 기회가 별로 없다. 굉장히 의미있고 중요한 시점에 시작되는 방송이다"라고 평했다.
 
고딩엄마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는 방송출연을 수락한 이유에 대하여, 김지우는 "청소년 부모도 잘할 수 있는데 안 좋은 시선이 많다. 우리도 한 아이의 부모로서 열심히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이루시아는 "굳이 (고딩엄마라는 사실을)숨겨야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아이에게 '엄마는 널 낳은 게 부끄럽지 않았다'는 것을 당당하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고백했다.
 
박서현은 출산을 앞둔 상황임에도 친정부모님이 아직 반대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실을 밝히며 "남편하고 제가 어리지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밝혔다. 또한 "출산 준비해야 하는데 돈이 부족하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도 출연을 승낙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박미선은 "고딩엄빠는 이 친구들의 모든 행동을 지지하거나 정당화하자는 취지는 결코 아니다"라면서 "어찌됐든 미성년자가 출산을 하게되는 현실이 있고, 태어난 생명은 마땅히 보호받아야 한다. 이들의 일상과 사연을 통하여 고딩엄빠들의 현실을 파악하자는 것"이라고 방송의 취지를 설명했다.
 
통계청의 2020년 인구조사에 따르면 고딩엄빠는 한해 918명 정도가 탄생하고, 이중 15세 미만의 부모도 11명이나 있었다. 초등학생인 10-11세때 첫 성경험을 하여 임신과 출산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있다는 데 MC들은 큰 충격을 받았다.
 
청소년들이 첫 성경험을 하는 시기는 언제쯤일까. MC와 고딩엄마들은 시대적 경험담을 토대로 15세에서 20세 전후까지 다양한 추측을 내놓았다. 그런데 2018년 교육부-보건복지부-질병관리본부 등이 함께 실시한 청소년 건강실태 조사에 따르면, 첫 성관계 경험 나이는 놀랍게도 '13.6세'였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로 올라가면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SNS 등을 통하여 이성에 본격적으로 눈을 뜨는 시작하는 시기라는 것.
 
요즘 10대들에게 성 경험은 더 이상 어른들의 신세계가 아니라 이제 '익숙한' 경험의 일부가 됐다. 고딩엄마들은 주변 친구들에서도 미성년자 커플들의 성관계 경험들을 간접적으로 들은 경우가 많다고 밝히며 MC들을 또한번 문화충격에 빠뜨렸다.

또한 2020년 발표된 청소년건강실태조사에 따르면 피임없이 성관계를 하는 경우가 전체의 33.2%에 이르렀다고. 하지만 박재연은 "수치화된 통계보다 고딩엄빠 각자의 사연을 들어봐야 우리가 뭘 도와줄 것인지, 어떻게 이해하고 저들의 선택을 존중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모가 된다고 해도 10대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다. 갑작스럽게 부모가 된 10대들은 부모로서의 역할과 자신의 꿈과 진로 사이에서 극심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박미선은 조심스럽게 고딩엄마들에게 "아이를 지울 생각을 안해봤냐"는 민감한 질문을 던졌다. 이루시아는 나름 피임을 철저히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임신 소식을 듣게 되자 "그런데도 아이가 내게 왔다면 '뭔가 이유가 있지않을까?'라는 생각에 못지우겠더라"고 밝혔다.
 
전문적인 성교육의 부재도 문제로 지적됐다. 성에 대한 주제를 드러내놓고 이야기하기 꺼리는 한국의 보수적인 성문화 때문에 청소년들이 제대로된 성교육을 받지못하고 어설프거나 잘못된 성지식을 접하는 경우도 많았다.
 
청소년 임신의 경우, 부모들이 대신 나서서 임신중절 합의서를 작성하고 금액을 협의하는 경우도 있다고. 부모의 욕심과 사회적 체면치레 때문에 그 과정에서 상처를 받는 청소년들도 많았다. 인교진은 그에 비하여 끝까지 소중한 생명을 책임지려했던 고딩엄마 3인의 용기에 대하여 "예쁘다. 대견하다"며 칭찬했다.
 
고딩엄마들의 사연과 일상이 공개됐다. 김지우 양은 미혼모로 자신을 홀로 키운 엄마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강압적인 엄마의 통제와 외로움에 지친 김지우는 두 번이나 극단적인 선택까지 했다가 겨우 생명을 건졌고, 심지어 엄마에 의하여 정신병원까지 입원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했다. 김지우가 병원에 입원한 사이 엄마는 다른 남자를 만나 재혼을 했다고.
 
다행히 김지우는 "지금은 마음이 엄청 많이 단단해진 편"이라고 고백하며 극단적 선택을 했을 때 생긴 목의 흉터를 공개하기도 했다. 김지우는 이제는 상처를 가리지 않는다며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한편으로 박재연은 지우 엄마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며 "불안한 삶속에서 가장의 역할까지 해야한다는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아이들은 부모의 나이를 아직 살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입장을 바꿔서 생각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다만 청소년기의 정신병원 입원에 대해서는 "청소년기에 사회적 관계의 단절은 곧 사회적 죽음을 의미하기에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청소년 상담은 부모와 아이가 같이 받아야 한다. 관계 회복의 시작은 대화"라고 당부했다.
 
고3때 가출 후 생업에 뛰어든 김지우는 고깃집 알바를 하다가 만나게 된 7살 연상의 남자와 사랑에 빠졌고 아이를 가지게 됐다. 김지우는 친정과 시댁으로부터 모두 낙태 권유를 받았지만 고민 끝에 아이를 지키기로 결심했고 미혼모 센터의 도움을 받아 아이를 출산했다. 아이 아빠는 출산 이후 잠시 돌아왔지만 현재는 헤어지고 결국 김지우 혼자서 아이를 키우고있는 상태라고. 같은 미혼모였던 엄마와의 관계회복도 여전히 쉽지않다고 밝혔다.
 
박재연은 여기서 '자기 대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내 곁에 온전히 편이 되어주고 내 이야기를 되어줄 상대만 있어도 사람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김지우의 자기대상은 딸인 봄이였다. 출산과 낙태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김지우같은 고등엄빠들에게는 '아이가 자기대상이 되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고단한 길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드는 용기의 원동력이 된다.
 
다만 박재연은 "아직 10대에 불과한 김지우에게는 자기대상의 존재가 불안정하다"고 진단했다. "봄이가 있지만 김지우가 보살펴야 하는 존재"라면서 "불안정한 고3맘을 위한 제도적-정서적 지원이 있어야만 봄이에게도 건강한 엄마가 될 수 있다"라며 어른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MC와 다른 고딩엄마들도 김지우의 사연에 깊이 공감하며 눈물을 보였다.
 
그나마 김지우는 딸 채봄양과 둘이서 미혼모를 위한 주거지원사업과 기초생활 수급, 국민행복카드 등의 혜택을 받으며 어렵게 생활을 꾸려가고 있었다. 김지우는 "제가 뭘해야할지 모를 때 봄이가 생겼다. 선물같기도 하고 (지난 과거에 대한)벌같기도 하다"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밝혔다.
 
다행히 봄이는 건강하게 잘 크고 있었고 김지우 역시 서툰 듯 하면서도 정성과 사랑을 다하여 아이를 키우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이를 안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5층 계단을 오르내리며 육아 후유증과 척추측만증 등으로 고생하는 김지우의 현실은 지켜보는 이들에게 안스러움을 자아냈다. 고딩엄마들은 청소년 부모를 위하여 국가에서 지원하는 각종 사회적 혜택에 대한 정보들을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의 여유는 여전히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청소년 부모들은 법적으로 아직 미성년이라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기가 어렵다. 나 하나도 챙기기 힘든데 아이까지 돌봐야하니까 학업을 중단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또한 수입이 조금이라도 발생하면 바로 제도적 지원이 대부분 끊겨버리는 문제점도 있다.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 너무 어린 나이에 부모라는 무게를 짊어진 아이들에게 버거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을 피하지않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려는 청소년 부모들은 존중받고 보호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우리가 사회가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 부모 가정의 문제점과 지원책에 대하여 더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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